항목 ID | GC40006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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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區] |
영어공식명칭 | Eosayong|Woodcutter’s Song |
이칭/별칭 | 「초부가」,「얼사영」,「가마구타령」,「나무꾼소리」,「들노래」,「어산용」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남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서은 |
채록 시기/일시 | 1987년 - 「어사용」[남구] 대구직할시 남구 월배3동 대곡마을에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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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어사용」[남구] 채록 추정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 |
가창권역 | 대구광역시 일대 - 대구광역시 |
성격 | 민요 |
기능 구분 | 노동요|유희요 |
가창자/시연자 | 박해술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노동요이자 유희요.
[개설]
「어사용」은 영남 지역 산간에서 불리던 나무꾼의 신세타령 노래로서 노동요와 유희요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다. 「초부가(樵父歌)」, 「얼사영」, 「가마구타령」, 「나무꾼소리」, 「들노래」, 「어산용」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일컬어진다. 대구광역시에서 채록된 「어사용」[남구] 역시 삶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채록/수집 상황]
1987년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민속예술』에 따르면, 1987년 대구직할시 남구 월배3동 대곡마을에서 가창자 박해술으로부터 「어사용」[남구]이 채록되었다. 다만, 당시 채록 장소에 관한 기록이 애매한 점이 있어 정확한 현재 위치를 특정하기는 어렵고 현재의 달서구 진천동에 속할 것으로 추정된다.
[구성 및 형식]
어사용은 독창 형식으로 부르는데, 형식이나 장단에서 자유롭다.
[내용]
대곡마을에서 채록된 「어사용」[남구]은 “열아홉살 먹은 과부가 스물 아홉살 묵은 딸을 잃고”라는 사설로 시작되는 「봉덕이노래」 유형의 일종이다. 사설은 다음과 같다.
“어~~/ 열아홉 살 먹은 과부가 스물아홉 살 묵은 딸을 잃고/ 금강산 엇바램이 떠나가다가 오줌이 누러워서/ 솟새피가 사이에 오줌을 누다가/ 거게를 찔렸다 아파도 울고/ 슬퍼도 울고 어데로 가꼬 니 딸 내 딸 봉덕아/ 지리산 갈가마구야 니 얼굴 검다고 한탄 마라/ 겉이 꺼머서 가무구지 속속털이 검을소냐/ 죽은 나무 철가지에 두 줄 속에 목을 여코/ 백팔염주 목에 걸고 고곡태산을 넘자니/ 없던 시매 절로 난다/ 이이~/ 오르막내르막 잔나 지침 소리~/ 우리 농부~ 지침 소리~/ 왜 호호호~.”
[현황]
현재는 나무를 하러 다니지 않기 때문에 「어사용」[남구]이 노동 현장에서 불리지는 않는다. 다만, 나이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단편으로나마 남아 있고, 각 농요보존회에서도 전승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어사용」[남구]는 1987년 77세 고령의 가창자가 비교적 온전한 사설로 구사한 내용이기에 그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