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6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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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雙溪里 遺蹟 |
영어공식명칭 | The Ancient Site at Ssanggye-ri, Dals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 247-2 |
시대 | 선사/석기,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창국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에 있던 신석기 시대와 삼국 시대의 유적.
[위치 및 현황]
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과 달성군 유가읍 대구 테크노폴리스로 통하는 도로 구간 중 초곡 터널을 통과하여 조금 가다 보면 우측 편에 쌍계리 고양내 마을과 좌측 편에 동부 마을이 나타난다. 쌍계리 유적(雙溪里遺蹟)은 고양내 마을과 동부 마을 사이의 성토되어 조성된 도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쌍계리 유적은 기존의 공장 부지로 인해 도로 공사 구간 중 마지막으로 조사가 완료되었다. 마을 진입로를 사이에 두고 초곡리 유적(草谷里遺蹟)이 북쪽에 있는데, 동 시기[신석기 시대 말기]의 생활 유구가 조사되어 동일 유적에 해당된다. 초곡리 유적에서는 신석기 시대 수혈 3기와 부석 유구 2기, 주혈군 1기[48개] 등 총 6기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유물은 이중 구연 토기 발 1점, 단사 선문 토기 1점, 사격자문 토기 1점 등 총 3점이 출토되었다. 유적은 기존 공장 부지와 농로가 포함되며, 북쪽에 위치하는 섯밭등[389.7m]에서 남쪽으로 뻗어 해발 170.9m로 낮아진 산지의 동쪽 말단부이고, '초곡지'에서 발원하여 북에서 남으로 흘러 현풍천으로 유입되는 세천의 동안에 위치한 해발 64m 내외의 계단식 경작지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쌍계리 유적은 대구 테크노폴리스~달서구 대곡동 도로 건설 사업으로 인해 삼한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 일대까지의 대구 테크노폴리스 진입 도로 건설로 인해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조사 결과 유구나 유물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양리 고분군(陽里古墳群)과 인접해 있어 이와 관련된 생활 유적이 유존할 가능성이 높은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 구간 8,311㎡ 가운데 공장 부지로 인해 조사가 불가능한 부분을 제외한 6,549㎡에 대해서 2011년 3월 14일부터 그해 4월 5일까지 1차로 매장 문화재 분포 확인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일부[440㎡, 초곡리 유적]에서 신석기 시대의 부석 유구와 주혈 등이 확인되어 발굴 조사로 전환되었다.
이후 공장 부지[1,762㎡] 철거가 완료된 2012년 6월 11일부터 동년 6월 22일까지 2차 조사를 실시하여 삼국 시대의 수혈과 화덕 자리[노지], 문화층 등이 확인된 1,577㎡에 대해 2013년 3월 26일부터 같은 해 5월 23일까지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신석기 시대의 화덕 자리 4기와 구상 유구 1기·주혈군 1기, 삼국 시대의 부석 유구 1기와 화덕 자리 1기·수혈 2기·구상 유구 2기·수레바퀴흔 2기 등 총 14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유구 내부와 주변에서 신석기 시대 빗금무늬 토기[단사선문 토기]와 퇴화침선문 토기, 삼국 시대의 굽다리 접시와 목 짧은 항아리[단경호]·장동옹·파수·대각·그물추 등 토도류 17점이 출토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화덕 자리는 4기가 확인되었으며, 평면 평태는 대부분 원형을 띠고 있다. 이 가운데 2호는 소결면이 잘 남아 있고, 나머지 3기는 내부에 소토와 목탄이 일부 채워진 원형 수혈의 형태를 띠며 소결면은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크기는 직경 47~130㎝이다.
지금까지 대구광역시 지역에서 발굴 조사된 신석기 시대 유적은 하천 주변의 천변 충적지와 얕은 구릉 사이의 곡간 충적지에 대부분 입지하고 있어 쌍계리 유적과도 입지상 유사한 점을 보인다. 그리고 수혈 집자리가 조사된 사례를 보면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와 주혈[수혈] 등이 있으며, 주혈은 다소 정형성 없이 배치된 양상을 보인다. 화덕 자리는 위석식과 수혈식[상면식] 등이 확인되는데,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쌍계리 유적의 화덕 자리와 그 주변의 주혈 일부는 상부가 유실되고 바닥의 내부 시설만 남은 집자리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쌍계리 유적에서는 2호를 제외하고는 화덕 자리의 소결면이 거의 확인되지 않는 점과 유물의 출토량이 빈약한 점으로 보아 사냥과 채집 등의 이동이나 이주 시에 잠시 머물며 이용하였던 장소로 추정된다. 영남 지역의 신석기 시대 토기는 후기에 접어들면서 크기는 점차 소형화되고, 이중 구연 토기가 등장한다. 퇴화침선문 토기와 사격자문 토기가 주를 이루며, 말기에 와서는 문양을 간략하게 처리한 빗금무늬, 점렬문, 톱니무늬 등으로 대부분 시문된다. 이로 보아 쌍계리 유적의 유물 편년은 신석기 시대 후기에서 신석기 시대 말기로 볼 수 있다.
삼국 시대의 유구는 2개의 층에서 조사되었다. Ⅱ층[하층]에서는 부석 유구와 화덕 자리가, Ⅰ층[상층]에서는 수혈과 구상 유구, 수레바퀴흔이 확인되었다. 유구의 상부는 대부분 유실되어 잔존 상태는 불량한 편이며, 유물은 장동옹 구연부와 목 짧은 항아리 구연부 등 2점[부석·1호 수혈]만 출토되었다. 수레바퀴흔[2기]은 조사 지역 북쪽의 삼국 시대 Ⅰ층을 일부 덮고 있는 층에서 확인되었으며, 진행 방향은 남북 방향이다. 관로 매설로 인해 양분되어 전체적인 형태가 명확하지 않다.
[의의와 평가]
쌍계리 유적은 도로 부지의 한정된 범위에서 조사되어 유적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으나, 신석기 시대 유적이 조사 지역 일원에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은 큰 성과라 하겠다. 이후 고고학적 조사가 더 진행되어 자료가 축적된다면 대구광역시 지역의 신석기 시대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