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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항, 전창익, 전창정 형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367
한자 全昌恒, 全昌益, 全昌鼎 兄弟
영어공식명칭 Brothers Jeon Changhang, Jeon Changik, and Jeon Changjung
이칭/별칭 우봉(友峯),영모재(永慕齋)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성별 남성
본관 옥천(沃川)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효자 삼형제.

[개설]

전창항(全昌恒)[?~?]·전창익(全昌益)[?~?]·전창정(全昌鼎)[?~?] 삼형제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살았던 효자이다.

[가계]

전창항·전창익·전창정의 본관은 옥천(沃川)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전유경(全有慶)이다. 할아버지는 전극명(全克明)이고, 아버지는 전숙(全璹)이다.

[활동 사항]

전창항의 호는 우봉(友峯)이다. 정성과 효성을 하늘로부터 타고나 아버지가 병들자 하늘에 기도하여 자신이 대신하기를 빌었으며, 병을 낫게 하려고 대변을 맛보고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기도 하였다. 초상을 당하자 시묘하며 울부짖었고, 상복과 띠를 벗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어머니가 사망하였을 때는 어려서 상복을 입지 못하였기 때문에 어머니의 무덤 아래에 여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 계모의 초상에도 시묘하며 예를 다하기를 한결같이 했다고 하여 ‘영모재(永慕齋)’라 불렸다고 한다. 경상도관찰사 이기진(李箕鎭)[1738년 9월~1739년 4월 재임]이 조정에 장계를 올려 호조정랑에 추증되었다.

전창항의 동생 전창익전창정 또한 아버지의 병이 심해지자 목욕재계하고 기도했으며, 형과 같이 대변을 맛보며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기도 하였다. 장례를 치른 뒤에도 시묘하면서 땅을 치며 통곡함이 형 전창항과 다를 바 없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전창항·전창익·전창정 삼형제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복호(復戶)[특정한 대상자에게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하여 주던 일]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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