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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연초 공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183
한자 大邱 煙草工業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을 대표하는 제조업.

[연초 제조업 담당 기구]

1910년 대구 지역에는 탁지부 사세국 산하 연초시작장(煙草試作場)과 양조시험소가 설치되었다. 이때 전국 최초로 대전과 함께 대구에 대구연초시작장(大邱煙草試作場)이 설치되었다. 대구연초시작장은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에 적합한 연초 품종을 개발 및 생산하고, 연초 제반 업무를 관할하였다. 1912년 3월 사세국에 전매과가 신설되면서 대구에 설치된 대구연초시작장은 폐지되고, 탁지부 대구지방출장소가 설치되었다. 탁지부 대구지방출장소는 연초뿐 아니라 제염 사무, 홍삼 전매 등을 담당하였다. 일제는 1921년 3월 30일 전매국관제 개정에 근거하여 전매국 내 대구지방전매국을 설립하였고, 1921년 7월 1일 연초전매령을 공포하였다.

대구지방전매국은 동아연초주식회사(東亞煙草株式會社)의 대구공장을 인수하여 궐련 제조를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대구지방전매국은 기존 소금[鹽], 홍삼(紅蔘), 아편(阿片)의 전매 업무와 연초(煙草)[담배] 전매 업무까지 담당하였다. 대구지방전매국은 1921년부터 경상북도, 경상남도, 전라북도 무주군, 전라남도 구례군·광양군·여수군·순천군·고흥군·보성군, 강원도 강릉군·삼척군·울진군을 관할하였다.

[연초 제조업에 적합한 자연 환경]

대구와 경상북도의 토성(土性)은 연초[담배] 생산에 적합한 환경이었다. 서북부에는 편마암, 중부 이남에는 중생층이 여러 겹으로 겹쳐져 있고, 낙동강 중앙을 관류하는 충적층이 적어 연초 생산에 유리하였다. 대구와 대구 부근의 토양이 사질토양이고, 표토는 5촌 내외이고, 저토(底土)는 사력이 풍부한 충적층이라 배수가 잘되었다. 이처럼 대구와 경상북도는 연초를 생산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일본인들은 1906년부터 대구와 경상북도 일대에서 잎담배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 한인과 일본인은 재배하는 연초 품종이 달랐다. 1910년대 초 한인은 주로 서초(西草), 국초(國草)[일본산 연초], 토관초(土官草), 본초(本草), 권초(卷草), 백화초(白花草), 포초(浦草) 등을 생산하였다. 지역별로 보면, 김산[김천시]은 서초(西草), 상주는 기안초(奇安草), 문경은 국초(國草)[일본산 연초]·토관초(土官草), 신녕[영천시 신녕면]은 본초(本草)·서초, 영천은 권초(卷草), 경주는 백화초(白花草)·포초(浦草), 청도는 서초, 함양·예천은 본초(本草), 지례[김천시 지례면]는 이복초(耳覆草), 예안[안동]은 상초(常草), 진보·청송·의성은 장초(長草)를 생산하였다. 일본인은 대구, 동촌, 왜관, 함양, 청도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연초 생산지의 담배 품종인 수부(水府), 지숙(指宿), 진야(秦野) 등을 생산하였다. 1910년대 초 한인이 경작하는 연초 규모는 681정이고, 수확량은 22만 1000관이었다. 일본인이 경작하는 규모는 150정이고, 수확량은 4만 2200관이었다.

[연초공업의 중심지, 대구]

대구 지역에서는 1908년 6월 남한연초제조주식회사(南韓煙草製造株式會社), 1908년 마에조노[前之園], 1910년 오이시상회[大石商會] 등 담배회사가 연이어 설립될 정도로 연초업이 호황을 이루었다. 인천의 마에조노와 서울의 오이시상회가 대구에 공장을 지을 정도로 대구는 연초를 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나 생육환경과 기후에 따라 연초 생산량이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연초를 공급 받기 어려웠다. 특히 연초 공장이 대구 지역에 밀접하면서 원료인 엽연초 가격이 폭등하였다. 수급 불균형과 원료 가격의 불안정으로 인하여 연초업의 호황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마에조노의 공장은 자금난으로 폐업하였고, 오이시상회의 공장도 운영난으로 동아연초주식회사에 경영권을 넘겼다. 동아연초주식회사조차 1919년 11월 12일 폐쇄되었다.

대구 지역에서 여전히 전통적인 잎담배 위주로 소비되던 것도 연초 공장이 문을 닫는 데 일조를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제는 연초업이나 제사업과 같은 이식 산업에 대한 보호조치를 실시하였다. 1921년 7월 1일 연초전매령이 공포되면서 전매제도가 실시되었다. 전매국은 기존 연초 공장을 인수하고 대구에 대공장을 세웠다. 1910년대를 거치면서 궐련초 소비시장이 확충던 것도 대구 지역 연초공업의 발달에 일정 정도 기여하였다. 1920년대가 되면서 조선총독부 전매국 산하 대구연초장은 전국 생산량의 33%를 차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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