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658
한자 居昌褒忠祠
영어공식명칭 Geochang Pochoongsa Shrin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원촌3길 29[노현리 183-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하종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37년연표보기 - 거창 포충사 건립
이전 시기/일시 1777년 - 거창 포충사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에서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노현리로 이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83년 7월 20일연표보기 - 거창 포충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7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거창 포충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재지 거창 포충사 -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노현리 183-2 지도보기
성격 서원|사당
양식 익공 양식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5칸
소유자 연안 이씨 문중
관리자 연안 이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에 있는 화촌 이술원 장군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

[개설]

거창 포충사화촌(和村) 이술원(李述源)[1679~1728] 장군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1737년에 세웠다. 이술원 장군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1728년(영조 4)에 거창현 좌수(座首)로 있었다. 1728년에 이인좌가 난을 일으켜 서울로 북상하고, 안의현에서 정희량이 이에 합세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이술원은 좌수로서 거창 현감 신정모에게 현내의 군사권을 위임받아 끝까지 대적하다 결국 잡혀 죽었다. 그 뒤 이조 판서, 사헌부 대사헌에 추증되었고 충강공(忠剛公)의 시호를 받았다. 거창 포충사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경상남도의 세 개 서원 중 하나이다.

[위치]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원촌3길 29[노현리 183-2]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거창 포충사는 1737년(영조 13)에 ‘포충사(褒忠祠)’라는 사액을 받아 거창읍 대동리에 세웠지만, 1777년(정조 원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있었을 것이나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으며, 보수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최근의 것만 알 수 있다.

[형태]

거창 포충사는 누형식의 출입문인 자전루(紫電樓)와 서당인 경의당(景義堂), 양사당(養士堂), 그리고 사당인 거창 포충사(居昌褒忠祠)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의 배치는 자전루, 경의당, 거창 포충사가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경의당의 좌측면에 양사당이 다른 건물들과 같은 방향으로 놓여 있다. 건물들은 모두 평지에 세워졌으나 사당인 거창 포충사는 경사지에 세워져 다른 건물들에 비해 높이가 좀 더 높다. 사당인 거창 포충사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규모로 이익공 형식이며 상부 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오량가로 겹처마에 박공지붕 형식이다. 경의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규모이고 익공 양식, 홑처마, 합각지붕 형식이다. 양사당은 경의당과 형식이 같다. 문루인 자전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으로 초익공 양식, 겹처마, 합각지붕 형식이다.

[현황]

거창 포충사계수천의 우측 곡저 평야에 동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자전루에서부터 담장을 둘렀고 사당인 거창 포충사에는 따로 내부 담장을 두르고 내삼문을 시설하였다. 사당 담장에서 연속하여 내려오다가 중간쯤에서 끊어지는 담장으로 경의당과 양사당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자전루에 들어서기 전 좌측으로는 담장을 따라 여러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거창 포충사는 사당. 자전루, 경의당, 양사당, 고직사 등 조선 후기 서원 건축의 배치 형식 및 건축 기법을 잘 표현하고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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