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677
한자 居昌慕賢亭
영어공식명칭 Mohyunjeong Pavilion
이칭/별칭 수포대 정자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도리4길 349[도리 5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기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98년연표보기 - 거창 모현정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7년 - 거창 모현정 중수
문화재 지정 일시 2004년 3월 18일연표보기 - 거창 모현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46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거창 모현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재지 거창 모현정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도리 58 지도보기
성격 정자/재실
양식 익공 양식
정면 칸수 3칸[정자]|2칸[재실]
측면 칸수 2칸[정자]|2칸[재실]
소유자 흥해 최씨 평촌공파 종중
관리자 흥해 최씨 평촌공파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동방 5현에 속하는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평촌 최숙량이 거창의 가조 대학동에서 만난 것을 추모하기 위하여 평촌의 후손과 유림 1천여 명이 1898년에 건립한 정자.

[개설]

거창 모현정은 흥해 최씨 후손과 30개 고을 유림 1천여 명의 성금으로 1898년(광무 2)에 세웠다. 조선 전기 1494년(성종 25)경 합천 숭산에 머물고 있던 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안음현에 있던 정여창(鄭汝昌)[1450~1504]이 그 중간 지점인 가조 대학동에서 만나 함께 머물면서 김굉필의 동서인 평촌 최숙량과 학문을 닦았다. 김굉필은 무오사화에 평안도로 유배되었다가 갑자사화에 극형을 당했으며, 정여창은 무오사화 때에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서거하고 갑자사화에 부관 참시되었다. 최숙량 역시 두 사화 때 화를 입고 세상을 떠났으니, 16세기 영남 사림파의 일원이었던 그들을 따르며 존경하던 유림들은 세 현인이 수포대(水瀑臺)에서 노닐던 일을 추모하였다. 300년이 지나 1898년 최숙량의 후손 최경한(崔瓊漢)이 여러 후손들과 힘을 모으고 30개 고을의 유림 1천여 명의 성금을 모아 창건하였다.

[위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도리4길 349[도리 58]에 있다. 가조면 소재지에서 합천 가야로 가는 지방도를 따라 가다보면 화곡에서 오른쪽 길로 1.8㎞ 이동하면 가조면 도리 대학동 거창 모현정이 있다. 정자 뒤편에 오도재와 흥해 최공 유적비가 있다. 수포대 가는 길목에 위치한 정자 앞으로는 오도산[1,134m]에서 내려온 개울물이 가조천으로 흐른다. 정자에서 50m 정도 오도산 쪽으로 올라가면 길 왼편 작은 바위면에 ‘흥해 최씨 세장지지(興海崔氏世葬之地)’라고 새겨 놓은 붉은 글씨가 보인다. 흥해 최씨의 선조들이 대대로 묻힌 곳이라는 뜻이다. 흥해 최씨 후손들이 쌓은 수포대 바위 왼쪽에는 ‘훤두 양 선생 장구지소(暄蠹兩先生杖屨之所)’와 ‘평촌 최공 강마지소(坪村崔公講磨之所)’라는 글귀가 두 줄로 새겨 있다.

[변천]

거창 모현정은 창건한 뒤로 기와갈이를 하고 간간히 건물을 수리하였다. 세 세대를 지나면서 세월이 오래 되어 건물이 퇴락하자, 1987년에 후손과 고을 유림들이 의논을 하고, 거창군에서 힘을 보태어 중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흥해 최씨 평촌공파 종중에서 건물을 관리하고 있으며, 유림과 고을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선현을 추모하고 휴식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1833년에 발간된 『경상도 읍지』 속의 ‘거창부 읍지’에는 "오도산 아래 수석(水石)의 형승이 빼어난 곳이 있어 문경공 김굉필문헌공 정여창이 서로 만나 강론하였다."고 하였다. 그곳이 거창 모현정 위쪽에 있는 수포대이다. 근대에는 인근 학교에서 소풍 장소로 이용을 하였으나 요즘은 관광객이 찾아 작은 폭포를 보고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심신을 회복한다.

[형태]

정자는 거창 모현정과 최씨 재실인 오도재(吾道齋)와 평촌 최공 유적비(坪村崔公遺蹟碑) 등 부속 건물과 비석 등의 유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창 모현정은 정면 3칸과 측면 2칸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의 중층 누각 형태 기와집이다. 마루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마루 끝에 계자 난간을 둘렀다. 창방과 처마도리 장혀[도리 밑에서 도리를 받치고 있는 길고 모진 나무] 사이에는 4면에 모두 소로를 끼워 장식하였다. 공포[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양식은 초익공(初翼工) 양식이고 상부 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오량 구조이다. 천정은 우물 천정을 간결하게 시설하였다. 단청이나 내부에 그림이 없이 소박한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정자의 중방에는 1906년 관찰사 정태현(鄭泰鉉)[1858~1919]이 지은 ‘모현정기(慕賢亭記)’를 위시하여 4편의 기문, 중수기문, 상량문 등이 걸려 있고, 곽종석(郭鍾錫)·송병순(宋秉珣)을 위시한 21명의 유명 유림과 후손들의 시가 걸려 있다.

오도재는 정자 뒤편에 있다. 재실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의 기와집이다. 재실은 400년 전에 흥해 최씨가 건립하였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에 퇴락하자 후손들이 1863년(철종 14)에 다시 중건하여 편액을 ‘오도재’라고 하였으니 김굉필정여창의 두 현인이 강론한 연유로 까마귀 머리처럼 봉우리가 검다는 뜻의 ‘오두산(烏頭山)’ 이름을 유학을 진작시킨다는 뜻에서 ‘오도산(吾道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재실은 산 이름을 따라 ‘오도재’라고 명명하였다. 후손들이 힘을 모아 1992년 11월에 중수하였다.

평촌 최공 유적비는 거창 모현정 뒤편에 있다. 비문에는 평촌 최숙량의 학문 연원과 김굉필·정여창 등의 현인과 학문을 닦고 교유했던 일과 이곳이 흥해 최씨의 선영이 있는 곳이며, 현인의 유적이 있는 정자를 후손에게 길이 잘 보존하라는 당부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44년 진사 일족 후손 최호연(崔浩然)이 글을 짓고, 후학 김희설(金熙卨)이 글을 썼으며, 하동 정재홍(鄭在烘)이 전서를 썼다. 비석은 귀부와 비신·이수로 구성되어 있다.

[현황]

거창 모현정수포대에서 강론하던 세 현인의 유적을 추모하여 건립한 정자이다. 그 뒤로도 흥해 최씨 후손들과 향토 유림의 선현 추모를 위한 장소와 유림의 모임 장소로 사용하였다. 해방 뒤에는 가조면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현재는 마을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유림들의 방문도 끊이지 않는다. 건물은 흥해 최씨 종중에서 정자를 관리하고 있다. 2004년 3월 18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4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전기 현인들의 학문 교류사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건물에 단청이나 그림 채색 없이 소박하고 단정한 모습에서 조선 후기 건축물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어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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