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763 |
---|---|
한자 | 居昌霞城 |
영어공식명칭 | Haseong Fortess |
이칭/별칭 | 여성(女城),치마성,거창 하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한기리 산6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시균 |
조성|건립 시기/일시 | 삼국 시대 - 거창 하성 축성 |
---|---|
개축|증축 시기/일시 | 임진왜란 시기 - 거창 하성 왜군에 대항하기 위해 다시 수축 |
훼손 시기/일시 | 1970년대 - 거창 하성 마을 길을 만들면서 성 돌을 사용하여 훼손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12월 20일 - 거창 하성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2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거창 하성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거창 하성 -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한기리 산6 |
성격 | 유적|산성 |
양식 | 포곡식 산성 |
관련 인물 | 이일 |
크기(높이,길이,둘레) | 2m[높이]|1.5㎞[길이]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한기리에 있는 삼국 시대 때 쌓은 백제 산성.
[개설]
거창 하성은 삼국 시대 백제가 신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처음 쌓았으나, 후일 임진왜란 때 왜군의 침범을 방비하기 위하여 다시 수축하였다. 정유재란 때 이일(李鎰)[1538~1601]이 카토 키요마사[加籐淸正]의 군사와 거창 하성에서 싸웠으나 끝내 함락되고 말았다고 한다. 거창 하성은 산의 정상부를 성내로 하는 포곡식 산성이고, 성벽은 자연석으로 쌓아 올린 협축 수법을 취하고 있다. 성의 주변 곳곳에 돌을 쌓아 두고 성내로 침범하는 왜적에게 던졌던 돌무더기가 있다. 이것은 남매가 성을 쌓다 남은 돌이라 하고, 누이동생이 치마에 싸서 돌을 운반하였다고 하여 ‘여성(女城)’ 또는 ‘치마성’이라고도 한다. 대부분 성벽은 무너져 있으며, 성의 길이는 1.5㎞에 높이는 2m 정도이다.
[위치]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한기리 산6에 있는 포곡식 산성이며, 경상북도 김천시와 경계에 있다.
[형태]
해발 590m 야산의 정상부를 돌아 넓게 서쪽으로 트인 계곡을 가로질러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의 대부분이 붕괴되었으며 동쪽 능선은 협축으로 쌓았으나 대개는 내탁에 의한 판축 기법으로 쌓았다. 자연석으로 쌓아 올린 성벽의 길이는 1.5㎞이며 높이는 2m 정도이다.
[현황]
토석 혼축성인 거창 하성은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며 남아 있었으나, 1970년대 마을 길을 만들 때 가까이 있는 성 돌을 활용하며 많이 훼손하였다. 지금은 능선을 따라서 부분적으로 흔적만 남아 있고, 마을에서 먼 북쪽 봉우리에는 석축으로 된 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83년 12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거창 하성은 축성 역사도 오래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적과 맞선 기록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성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치마에 싸서 돌을 운반했다는 것은 호국과 외세를 격퇴하기 위해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성을 쌓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부근에 있는 거말흘산 봉수대와 우척현 전적지를 아우르는 호국의 유적으로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