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아림사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787
한자 居昌 娥林寺址
영어공식명칭 Site of Arimsa Temple
이칭/별칭 아림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중앙로 103[상림리 64-1]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구본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통일 신라 시기 - 거창 아림사지 아림사 건립 추정
폐지 시기/일시 1380년 - 아림사 소실 추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1년 - 거창 아림사지 경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1차, 2차 발굴 조사 실시
소재지 거창 아림사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64-1 지도보기
성격 절터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일대에 있었던 고려 시대 절터.

[개설]

거창의 지명은 옛 문헌상에 거열(居烈), 고타(古陀), 거타(居陀), 제창(濟昌), 아림(娥林) 등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들 지명 중 다른 지명과 달리 ‘아림’이라는 지명은 지금도 거창의 별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는 그만큼 거창 지역에서 그 유래와 의미가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림’은 한자로 ‘娥林’으로 표기하며, ‘고운 숲, 아름다운 숲’으로 풀이할 수 있다. 아름다운 큰 숲이 있었다는 의미로, 아마 최치원 선생이 호안림으로 만든 함양의 상림처럼 거창 일대에도 영천의 강 언덕 지리에 큰 숲을 형성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일대는 아마 생활의 중심지였을 것이며, 현재도 거창읍 상림리, 중앙리 일대이기도 하다. 또한 아림 안에 아림사라는 절과 9개의 암자가 주변에 산재하여 그 당시 거창 지역의 정치, 행정뿐만 아니라 거창 역사를 대변하는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절터 이름과 석조 유물 몇 점이 남아 있다.

[변천]

아림사는 통일 신라 때 거창 중심에 세워진 큰 사찰이었으나, 1380년(고려 우왕 6) 경신(庚申)년 왜구의 침입[홍무난]이나 몽고의 침입 때 소실되었다고 전해진다.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곳곳에 당시 아림사의 석조 문화재가 남아 있다.

[위치]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거창군청을 중심으로 현재의 거창 경찰서, 거창 세무서, 혜성 여자 중학교, 거창 초등학교 일대를 포함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한국 토지 공사[현 LH 한국 토지 주택 공사]에서 거창군 상림리 438번지 일원에 대한 택지 개발 공사 과정에서 2번에 걸쳐[1차 조사: 2001. 3. 27~2001. 7. 24, 2차 조사: 2001. 9. 24~2001. 12. 22] 경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발굴 결과 통일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의 건물 터를 비롯하여 가마를 굽던 가마터 등이 다수 확인되었지만 아림사와 직접적인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즈음 거창 지역에 불교가 활발히 전래되어 연수사, 고견사, 송계사, 송림사 등과 함께 아림사가 창건되었으며, 그중 아림사가 중심이었다는 것은 위치나 규모로 보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후 통일 신라 때와 고려 초기에 번창을 누리다가 전란을 맞아 소실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자료는 석재 수 기가 있을 뿐이지만 조각 솜씨나 규모로 보아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정확한 위치와 규모, 유물의 성격이 명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통일 신라 때 불교의 전파 과정을 알 수 있는 사찰로 주목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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