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036
한자 居昌縣
영어공식명칭 Geochang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배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685년 - 거열군 진주 지역인 청주에 편입
제정 시기/일시 757년 - 거열군에서 거창군으로 개칭
제정 시기/일시 1018년 - 거창현, 합주에 소속됨
제정 시기/일시 1414년 - 거제현과 거창현을 제창현으로 통합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의 고려 시대로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지명.

[개설]

거창현(居昌縣)은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의 고려 시대로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대표 지명에 해당한다. 이전 신라 시기에는 거열군(居烈郡)으로 불렸으며, ‘거창(居昌)’이라는 이름은 8세기 중엽 경덕왕(景德王)[742~765]이 ‘거열(居烈)’을 고쳐 부른 데서 비롯한다.

한편 한국 중세기 군현 체제(郡縣體制)로 대표되는 지방 행정 구조에서 거창현은 수차례의 읍격상(邑格上)의 변화가 일어난다. 거창현, 거창부(居昌府), 거창도호부(居昌都護府) 등이 그 변화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역 사회의 성장과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인접 군현과의 영속(領屬) 관계, 정치적 사건 등이 맞물린 경우가 다수 확인되고 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신라 경덕왕거열군을 ‘거창’으로 개칭하였다. 경덕왕은 중앙 관료의 칭호와 지방 군현의 이름을 중국식 한자 이름으로 바꾸어 왕권의 강화를 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의 연구에서 이는 경덕왕이 유교적·중국적 국가 체제로의 전환을 이루면서 중앙 집권적 관료 국가로 탈바꿈하려 한 정치적 시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경덕왕은 중앙 관료의 칭호와 전국 군현의 이름을 개칭하는 등의 조치로 지배 체제의 전환과 왕권의 강화를 도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권 57, 지리지 경상도 거창현조에 "본래 신라 거열군으로 달리 거타(居陁)라 부르기도 한다. 신라 경덕왕이 현재의 이름으로 고쳤다. 현종 9년(1018) 합주(陜州)에 속하게 하였고, 명종 2년(1172) 감무(監務)를 두었다."라고 하였고, 또한 같은 책 거제현조에는 "[거제현이] 원종(元宗) 12년(1271)에 왜구로 인하여 땅을 잃고 거창현의 가조현(加祚縣)에 임시로 터를 잡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31, 1379년(우왕 5) 9월조에는 "왜구가 또다시 단계현(丹溪縣)·거창현·야로현(冶爐縣) 등지를 노략질하고 가수현(嘉樹縣)에까지 이르렀다."라는 기사가 있어 이 시기 왜구의 피해가 컸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조선 전기 거창현의 모습을 싣고 있는 『세종실록(世宗實錄)』 권150, 지리지 경상도 거창현조에는 "호수가 505호, 인구가 1,640명이며,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47명, 진군(鎭軍)이 39명, 선군(船軍)이 268명이다."라는 대목이 있어 당시 거창현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외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권7에서는 왕비 신씨(愼氏)의 관향이라 하여 읍격을 올려 군(郡)으로 삼았다고 하며, 『중종실록(中宗實錄)』 권1에서는 1506년 9월 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읍격이 다시 현(縣)으로 강등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정조실록(正祖實錄)』 권51, 1799년(정조 23) 6월조에서는 "거창현단경 왕후(端敬王后)의 본향인데 연전에 고을의 무슨 폐단으로 인하여 부(府)를 현(縣)으로 강등시켰다."라고 하면서 다시 거창부로 복구시킨다.

[변천]

685년(신문왕 5) 전국을 9주(州)로 개편하면서 진주 지역에 청주(菁州)를 설치하였는데, 오늘의 거창 지역은 거열군으로 여기에 편입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는 군의 이름이 ‘거창(居昌)’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시대에 들어 1018년(현종 9) 합천이 주(州)로 승격되면서 거창군은 현으로 강등되어 가조현·감음현·이안현과 함께 합주에 소속되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414년(태종 14) 가조현에 머물던 거제현과 합쳐져 제창현(濟昌縣)으로 불리었으며 이듬해 원래대로 되돌려졌다. 1470년(성종 1) 왕비의 고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중종 초에 다시 거창현으로 환원되었다. 1728년 이른바 ‘무신란(戊申亂)’으로 폐현이 되었다가 이듬해 단경 왕후 신씨가 복위되면서 거창 도호부(居昌都護府)가 되었다. 1788년(정조 12) 한때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으나 1799년 다시 부로 환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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