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
1899년 전국 읍지 상송령에 의해 편찬된 전라북도 고창군의 읍지. 읍지는 지리지와 함께 지방사에 대한 유일한 기록물로서, 편찬 당시의 정치·경제·사회·역사·문화·군사 등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바탕으로 편찬된 인문지리서로 각 고을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고창군읍지(高敞郡邑誌)』는 정조 대 펴낸 『고창현읍지(高敞縣邑誌)』를 수정 보완하여 편찬한 것으로, 작자 미상...
-
일제 강점기에 정조 연간 고창현[현 전라북도 고창읍·고수면·아산면 일대]에서 편찬된 『고창현읍지(高敞縣邑誌)』를 필사한 읍지. 읍지는 조선 전기에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전국적인 관찬 지지(地志)의 편찬을 위한 1차 자료로서 작성되었으나, 조선 후기 들어 지방 각 읍의 현황 파악 및 각종 행정 자료 수집을 위하여 편찬되었다. 『고창현...
-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서(名瑞), 호는 물기재(勿欺齋). 1447년(세종 29) 문과에 급제하여 세종에서 세조 조에 이르기까지의 명신으로 이름난 강희맹(姜希孟)의 11세손이다. 강희맹의 둘째 아들 강학손(姜鶴孫)의 여섯째 아들 강흔수(姜欣壽)가 강응환(姜膺煥)의 9대조인데, 그의 6대조 강계오(姜繼吳)가 전라남도 영광에서 외가인 무송유씨(茂松庾...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 전해지는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 금석문은 보통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를 뜻하며, 넓게는 나무·토기·그릇·직물·전돌·기와 등에 기록된 문자를 포괄하여 부르기도 한다. 역사 연구에 있어 고문서 등의 기록과 함께 특히 주목되는 자료이다. 고창 지역의 금석문은 공적비와 묘비 중심으로 조사되었고, 그밖에 효열비와 각종의 기념비가 추가로 확인된다. 특히 공적비는...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에서 전승되어 온 공예품. 무장상자(茂長箱子)는 전통적인 색지 공예를 고장의 토산품으로 만든 대표적인 가내 수공업이다. 조선 말 고종 연간의 무장읍 내에 살았던 김영운(金永運), 김영휘, 김영보, 김열려 등의 형제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후손들의 말에 따르면, 김영운의 고조인 김세홍(金世泓)은 어린 시절부터 손재주가 뛰어나 무엇이든 잘 만들었다고 한다....
-
조선 후기 흥덕현감을 역임한 무신. 민후기(閔厚基)는 무과 출신으로 1727년(영조 3) 10월 흥덕현감으로 임명되었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햇수로 무려 4년간이나 흥덕현감으로 재직했는데, 거기에는 까닭이 있었다. 1728년(영조 4) 7월 22일, 동경연(同經筵) 송인명(宋寅明)이 말하기를, “흥덕현감 민후기는 부임한 뒤로 치적(治績)이 현저하고 군비(軍備)를 보완하였습니다....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전해지는 4음보 율격 3장 6구 형식의 정형시. 시조는 고려 말부터 발달해 온 정형시를 말한다. 시조는 형태에 따라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로 나뉘는데 이중 평시조가 가장 흔한 형태이다. 평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으로 되어 있으며 각 장은 다시 2구씩, 모두 6구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3·4조나 4·4조의 기본 운율에 4음보 율격으로 되어 있다....
-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황국재(篁菊齋). 호조좌랑을 지낸 안복(安福)의 7세손이다. 안건(安建)은 부모가 병이 나자, 자신을 비롯해 세 동생으로 하여금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부모에게 먹여 생명을 연장케 하였는데, 이것이 세상에 알려지자 한 집안에 효자가 넷이나 났다[一門四孝]는 칭찬이 자자하였다. 상(喪)을 당하자 예법에 따라 하고, 초하루와 보...
-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배경으로 촬영되는 영화. 사람들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라지는 옛것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옛날 모습을 간직한 지역일수록 각광을 받는다. 이에 발맞추어 영화와 텔레비전 등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처녀지와 같은 모습들을 많이 찾아다닌다. 고창군은 산업화에 뒤늦은 지역이라 비교적 그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이 때문에 문화유적이 많은 고창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에 있는 김시흥(金時興), 김문기(金文起), 김현석(金玄錫), 김영년(金永年)을 기리기는 사당. 왕산사는 김녕김씨(金寧金氏)의 사우로 김시흥(金時興), 김문기(金文起), 김현석(金玄錫), 김영년(金永年)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시흥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송악(松岳), 시호는 문열(文烈)이며, 김녕김씨의 시조이다...
-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운학자(韻學者) 황윤석(黃胤錫)의 문집. 황윤석[1729~1791]은 조선 후기의 운학자(韻學者)이다.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영수(永叟), 호는 이재(頤齋)·서명산인(西溟散人)·운포주인(雲浦主人)·월송외사(越松外史)이다. 김원행(金元行)의 문인으로, 당대의 실학 대가들로 알려진 정경순(鄭景淳), 김이안(金履安), 홍계희(洪啓禧), 신경준(申景濬), 홍대...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송현리에 있는 김문기(金文起), 김영년(金永年), 김헌을 기리는 일제 강점기 단비. 장절단은 원래 단종 때의 절신(節臣)인 김문기(金文起)와 임진왜란 때 창의한 김영년(金永年) 및 김헌을 기리기 위하여 1942년에 세운 사당이었는데, 지금은 사당 건물은 사라지고 단비만이 남아 있다. 김문기는 조선 세조 때에 순절(殉節)한 문신으로 초명은 효기(孝起), 자는...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에 있는 개항기 죽산안씨 가문의 효자 정려. 안건(安建)은 호조좌랑(戶曹佐郞) 안복(安福)의 7세손이다. 안건은 부친이 위독하자 동생 안정(安廷), 안형(安逈), 안근(安近)과 함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 아버지를 살려내자 세상이 그들을 일문사효(一門四孝)라 했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예절을 다하고 삭망마다 성묘하자 전라감사 박기수(朴綺壽)가 쌀, 고기,...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에 있는 개항기 죽산안씨 가문의 효자 정려. 안건(安建)은 호조좌랑(戶曹佐郞) 안복(安福)의 7세손이다. 안건은 부친이 위독하자 동생 안정(安廷), 안형(安逈), 안근(安近)과 함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 아버지를 살려내자 세상이 그들을 일문사효(一門四孝)라 했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예절을 다하고 삭망마다 성묘하자 전라감사 박기수(朴綺壽)가 쌀, 고기,...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황산리는 마을에 누렁산이 있어 ‘누렁산’ 또는 ‘황산(黃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1470년 경에 남평문씨(南平文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고사면(古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예지리(禮支里), 수곡면(水谷面)의 평지리(平支里) 일부가 병합되어 황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