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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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민속학연구소와 박순호가 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에서 전해 오는 구비문학을 조사하여 편찬한 책. 『고창군구비문학대계』는 원광대학교 민속학연구소에서 고창군의 전설과 민담, 민요를 직접 조사하고, 조사한 자료 가운데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을 간추려 설화 515편, 민요 158편을 제보자가 구술한 대로 정리하여 편찬한 책이다. 고창군의 구비문학 자료 조사 사업은 1990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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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문화원에서 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에서 전해 오는 고창농악 고깔소고춤과 마을굿에 대한 면담 내용을 담아 간행한 자료집. 『고창의 마을굿』은 고창농악 고깔소고춤과 고창의 마을굿을 현지에 있는 주민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실은 면담 자료집이다. 고창농악 기능 보유자인 황규언, 유만종, 박용하, 정창환으로부터 직접 고창농악 및 고깔소고춤의 연행 방법 및 특징 등에 대해 들은 내용을 면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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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고창군은 전주와 광주의 중간 지점인 전라북도 서남부에 위치하며, 호남 서해안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지만 생활권이 전주시, 정읍시 및 광주광역시 권으로 분산되어 그 중심성이 약화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전체적으로 비교적 완만한 평야지로 이루어져 있어 전통적인 농업 지역이지만, 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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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구·최응시·최문회·최문세·최기순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경주최씨는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고창군의 경주최씨는 충렬공파(忠烈公派), 문밀공파(文密公派)가 알려져 있다. 경주최씨 고창군 입향조 최구(崔嶇)는 충렬공 최광위(崔光位)의 15대손으로 1570년(선조 3) 전라남도 장성에서 최홍립(崔弘立)의 둘째 아들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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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계당리는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의 지형이 용이 잠긴 형국이라 ‘용계(龍溪)’로 불렸다. 진주정씨(晉州鄭氏) 정회찬(鄭悔燦)이 이주한 뒤 호를 따 ‘계당(溪堂)’이라고 불렀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고려 말 신천강씨(信川康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한, 조선 중기 진주정씨 정회찬이 괴치마을에서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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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상금리와 성송면 무송리,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와 경계를 이루는 백제 시대 석성. 고창군 대산면과 성송면 일원은 백제 시대 송미지현[현 성송면, 대산면, 무장면 일원]에 속하다가 무송현으로 개칭되었고, 1417년(태종 17) 무송현이 장사현과 병합하면서 무장현이 되었다. 고산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무장 고적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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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상평리에 있는 당산. 당산 신체는 마을 주민들이 인위적으로 배치하는 것을 말하는데, 고창군 곳곳의 마을에서 12당산을 갖춘 마을을 볼 수 있다. 12당산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12지 방위에 나무나 선돌을 배치하여 당산 신체로 삼는 풍속에서 나왔다. 이 풍속은 당산 신체를 마을을 중심으로 12 방위에 배치하여 둘러싸는 방식으로 조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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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서남부에 위치한 군. 전라북도 고창군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이며, 고인돌·판소리·농악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한 고창갯벌은 2020년 8월 현재 세계자연유산 등재 여부를 심사 중에 있다. 고창갯벌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면 고창군은 유형·무형·자연 등의 모든 세계유산을 가진 한국 유일의 생태·문화·관광 도시가 된다. 또한 고창군은 고인돌과 같은 거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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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지방 자치 단체의 사무를 심의·의결하는 기구. 고창군민의 의사를 대표하여 고창군의 예산 및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기관으로 고창 지역 주민들이 선출한 지방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고창군 의회는 자유·평등·정의를 이념으로 하는 의회 민주주의를 지방 단위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지방 자치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지방 정치의 민주화를 기하고 균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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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고창군 관할 행정 기관. 1914년 3월 1일 부군(府郡) 폐합령에 따라 무장군과 흥덕군을 병합하였고, 비능률적인 행정 단위를 통폐합하여 천북면·천남면·오동면·산내면·고사면 일부를 병합하여 고창면, 고사면·수곡면을 병합하여 고수면, 오동면·오서면을 병합하여 오산면, 대아면·산내면을 병합하여 아산면, 일동면·이동면을 병합하여 무장면, 와공면·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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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고창군 관할 소방 행정 기관. 고창소방서는 화재의 예방·진압, 재난·재해 및 그 밖의 인명 구조·구급 활동을 통하여 군민의 생명과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함으로써 군민의 안전과 복리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1년 6월 14일 고창군 고창파출소가 개소하였다. 1992년 1월 12일 정읍소방서 관할로 편입되었다. 1995년 2월 3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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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고창문화원 부설 향토 문화 연구 기관. 고창향토문화연구소는 향토 사료를 발굴·조사·영구 보전하고 전통문화를 통해 지역 사회 개발과 향토 문화 창달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76년 12월 30일 8명의 회원으로 고창향토문화보존회를 발족하였다. 1986년 12월 22일 고창향토문화연구소로 개칭하고 회장에 정익환, 부회장에 임주성·신사범,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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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광승리에서 정월 대보름날에 편을 나누어 공을 치는 놀이. 공치기는 해리면 광승리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편을 갈라 당산나무가 있는 마당에서 행하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꿩치기’, ‘꿩방’ 등이라고도 한다. 공치기를 겨뤄 마을의 풍년과 논에 물을 대는 순서를 결정하였다. 공치기에서 이긴 마을이 풍년을 기원하며 논에 먼저 물대기를 할 수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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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인우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신라 신무왕의 셋째 아들 김흥광(金興光)이 장차 있을 국난을 예감하고 전라도 광산[지금의 광주광역시] 서일동에 자리를 잡고 은거하면서 후손들이 광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12대손 김인우(金仁雨)는 양간공 김연(金璉)의 현손으로 1329년(충숙왕 16) 송도에서 태어나 공민왕 대에 홍건적을 물리쳐 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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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괴치리는 괴목숲이 우거진 산으로 회화나무[槐]와 재[고개, 峙]가 많은 것을 본 따 ‘괴치(槐峙)’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괴칫재 밑이라 ‘괴치’라고도 했다고 한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피해 진주정씨(晉州鄭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성동면(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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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용반리에서 대산면 갈마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23호선은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에서 충청남도 천안시에 이르는 국도이다. 총 길이 370.64㎞로, 왕복 2차선은 184.23㎞, 4차선은 186.41㎞이고, 도로 포장률은 100%이다. 각 지방국토관리청에서 관리한다. 이중 전라북도 구간은 전체 120.45㎞이며, 2차선은 36.03㎞, 4차선은 84.42㎞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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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지역에는 약 2,000기에 가까운 고인돌이 있다. 고창읍을 중심으로 아산면, 성송면, 대산면, 고수면 등에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어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을 정도다. 고인돌은 옛 사람들의 장례 방식을 보여 주는 것이기에, 여러 유형의 고인돌은 곧 청동기 시대부터 고창 지역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문화권이 다양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학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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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장두리에 있는 개항기 광산김씨 김기두(金箕斗)의 정려. 광산김씨(光山金氏) 김기두의 부모에 대한 효성이 조정에 알려졌다. 김기두의 자는 경칠(景七)이며, 호는 장계(章溪)이다. 고창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김경희(金景熹)의 후손이다. 김기두는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학식이 높았다. 부친이 병에 걸리자 눈 속에서 싱싱한 채소를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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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평지리에 있는 현대의 효열녀 창녕조씨 정려 비각. 창녕조씨(昌寧曺氏)는 직제학 청간(淸澗) 조서(曺庶)의 후손인 조영환(曺永煥)의 딸이다. 창녕조씨는 청도김씨 김도일(金道一)에게 시집와 삼종지도를 깨달아 시부모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였고, 남편 받들기를 손님같이 했다. 나이 20세에 남편이 병에 걸리자 지성으로 공궤하고 정화수를 길어 북두칠성에 빌었으며,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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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장구 명인. 191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용대리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소고 명인으로 알려진 김양술(金良述)이다. 김만식은 당골[무당]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소고를 배웠다.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에 사는 김학준으로부터 장구를 배웠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다.”는 평판이 자자할 정도로 장구를 잘 쳤다. 김만식패를 꾸려 활동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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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김수학은 1896년 5월 2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일본의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호남은행 목포지부장, 상공부 차관, 대한무진금융주식회사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2년 고창군 갑구[고창면, 고수면, 무장면, 공음면, 상하면, 성송면, 대산면]에서 무소속으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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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소고 명인. 191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용대리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장구 명인으로 알려진 김만식(金萬植)의 동생으로, 무계(巫系) 출신이다. 김양술은 박성근(朴成根), 신두옥, 신영찬, 김학준, 김성락, 김만식(金萬植), 김상구(金相九) 등과 함께 전라도 일대에서 소고를 쳤다. 고창 지역에서는 이모질 다음으로 이름난 소고잽이로 통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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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본관은 광산(光山), 190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김영동은 1921년 정읍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9년부터 북간도, 연길, 용정,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2년 후 출옥하였다. 만주 봉천에서 제철제강업과 자동차연료제작소 사업을 하였으며, 그 운영 이익금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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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순명(舜命), 호는 후석(後石)이다. 1882년 5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장두리에서 김기락(金箕洛)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재관은 지은(智隱) 최전구(崔銓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8년 동문인 정휴직(鄭休直)·정건도(鄭建燾)·정휴익(鄭休益)·이병중(李秉重) 등과 함께 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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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에 대한 뚜렷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행정명칭은 ‘낙양(洛陽)’이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마을 형국이 ‘소라[螺]’ 모양과 같다하여 ‘나형기(螺形基)’라 불렀는데, 변음되어 ‘냉기’라고 불렸다 한다. 설립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고려 후기 무송유씨(茂松庾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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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서 발원하여 대산면을 지나 와탄천에 합류되는 하천. 대산천 은 성송면 무송리·암치리 등에서 발원하여 대산면 덕암리에 이르러서 공음면 건동리와 선동리·용수리 등에서 흘러온 물과 합수한 뒤,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와탄천에 합류되어 서해로 흘러든다. 대산천은 대산면을 관통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대산면은 대제면에서 대(大)자와 장자산면에서 산(山)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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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진실한 사람, 유능한 사람, 봉사하는 사람을 기저로 한 교육 활동을 통해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예의바른 사람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48년 5월 1일 대산고등공민학교로 설립하여 1951년 대산중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1954년 5월 1일 대산면, 대아면, 성송면 3개 면을 상징하는 대성중학교로 개칭하고, 3학급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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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무송리는 옛 무송현(茂松縣)의 터라서 ‘무송(茂松)’이라고 하였다 한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광산김씨(光山金氏), 진주강씨(晋州姜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원송면(元松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용두리(龍頭里)·금사리(金沙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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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필을 시조로 하고 유녹숭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무송유씨(茂松庾氏)는 고려 시대 정1품인 태사(太師) 충절공 유금필(庾黔弼)을 시조로 한다. 유금필은 고려 때 태조를 도와 삼한 통일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통합삼한익찬공신에 봉해지고 태사에 오른 인물이다. 4세 유장신은 평산유씨(平山庾氏)의 중시조가 되었고, 5세 유녹숭(庾祿崇)은 무송유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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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낙양리에 있는 개항기 무송유씨 가문의 정려각. 무송유씨(茂松庾氏) 가문의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표가 내려져, 합동으로 무송유씨 삼강문을 건립하였다. 충신인 유영룡(庾泳龍)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산을 털어 의병을 이끌고 근왕(勤王)하다가 청주에 이르러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고 돌아왔다. 유영룡이 죽은 후에 조정은 통훈대부 사헌부감찰(贈通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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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고창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 무령군조에 "본디 백제의 송미지현(松彌知縣)이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 이를 그대로 쓰고 있다[茂松縣 本百濟松彌知縣 景德王改名 今因之]."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무장현조에 "무송현(茂松縣)은 본래 백제의 송미지현(松彌知縣)이었는데, 신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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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행정구역. 1417년 무송현과 장사현을 합병할 때 두개의 현의 중간 지점에 해당된 곳에 무장현이 자리를 잡으면서 생긴 지명이다. 백제 시대에 송미지현과 상노현에 속하였고, 757년(경덕왕 16) 송미지현을 무송현으로, 상노현을 장사현으로 각각 개칭하였으며, 1417년(태종 17) 무송현과 장사현을 무장현으로 통합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무장군 이동면(二東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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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무장면 관할 행정 기관. 무장면사무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과 관련된 지방 행정의 기초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무장면은 백제 시대에 지금의 성송면, 대산면, 무장면의 일부였던 송미지현(松彌知縣)에 속해 있었으며 신라 시대에 무송현(茂松縣)으로 개칭되었다. 조선 시대인 1417년(태종 17)에 이웃 장사현(長沙縣)과 합하여 무장현(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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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지역에 설치된 조선 전기의 행정구역. 조선 시대에 현(縣)은 지방 행정구역인 주부군현(州府郡縣) 가운데 가장 낮은 단위의 행정구역이다. 현은 지방 행정구역상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도 군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는데 군현제도가 그것이다. 군과 현은 군이 현을 거느리는 행정적 상급 단위라기보다는 병렬적 관계였다. 군현제도는 지방을 통치하기 위한 행정 체계이고, 이는 중앙 집권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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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서 보호 및 증식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여 특별 관리하는 수목. 특정 목적에 따라 보호 조치가 되고 있는 나무를 보호수라 하는데, 노목, 거목, 희귀목(稀貴木) 중에서 명목, 보목, 당산목, 정자목, 호안목, 기형목, 풍치목 등이 이에 해당한다. 목적에 따라서 식물의 유전자와 종 보전, 학술 목적 등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지정하여 관리한다. 지정과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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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서 보호 및 증식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여 특별 관리하는 수목. 특정 목적에 따라 보호 조치가 되고 있는 나무를 보호수라 하는데, 노목, 거목, 희귀목(稀貴木) 중에서 명목, 보목, 당산목, 정자목, 호안목, 기형목, 풍치목 등이 이에 해당한다. 목적에 따라서 식물의 유전자와 종 보전, 학술 목적 등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지정하여 관리한다. 지정과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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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곡리는 지형이 가마처럼 생겨 ‘가마골’ 또는 ‘부곡(芙谷)’이라 하였다고 한다. 1400년대 연안이씨(延安李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수곡면(水谷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장암리(場岩里)·연동(連洞)·신평리(新平里)·증산리(甑山里)와 고사면(古沙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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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내리는 새가 숲으로 날아드는 형국이라 하여 ‘새나리’·‘조비리’·‘새내’·‘초내’·‘사내(沙乃)’라고 하였다 한다. 설립 시기가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에 여러 성씨들이 모여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성동면(星洞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포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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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사찰은 절, 사원(寺院), 정사(精舍), 가람(伽藍)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우기를 피해 한 곳에 모여 생활을 하는 공동 주거지의 성격을 띠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교 의례를 행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변모하였다. 전라북도 고창군의 주요 사찰과 사찰 터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선운사(禪雲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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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수리는 산수가 좋으므로 ‘산수매’ 또는 ‘산수(山水)’라고 하였다 한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임진왜란 이후 진주정씨(晉州鄭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원송면(元松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외원리(外院里)·삼태리(三台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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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금리는 마을 앞에 있는 개천에 쇠가 많이 난다고 하여 쇠내[金川]라고 했고, 그 위에 상금리가 있어서 ‘상금(上金)’이라고 하였다 한다. 1600년경 경주김씨(慶州金氏) 김익수(金益壽)가 마을 터를 이루고 안터골[현, 남산]이라 하였고, 1610년경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진방(趙鎭邦)은 쇠내 중간에 마을 터를 이루고 중금(中金)이라고 불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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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지역 주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선거는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에 있어서 특정의 지위에 취임할 사람을 그 조직이나 집단 구성원들이 집합적인 의사 표시를 통하여 선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수인이 일정한 직에 취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는 반드시 국가 기관의 선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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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 속하는 행정면. 성송면은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성동면(星洞面)과 원송면(元松面)에서 ‘성(星)’자와 ‘송(松)’자를 따 성송면(星松面)이 되었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지역으로, 성동면이라 하여 관동리(冠洞里)·호동리(虎洞里)·낙양리(洛陽里) 등 2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원송면의 상고리(上古里)·하고리(下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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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판정리에 있는 풍물 단체. 성송면 구황산농악단은 2001년 전라북도민체육대회 개막 공연의 참가를 위해 설립되었다. 2001년 설립되어 꾸준한 활동과 함께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각종 체육 행사 및 마을 행사에 참여하여 공연하면서 흥을 돕는 촉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01년 제38회 전라북도민체육대회 개막식에서 ‘고창의 소리’를 공연하였다. 2002년 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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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판정리에 있는 성송면 관할 행정 기관. 성송면사무소는 성송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성송면사무소가 설치되었다. 2009년 1월 제26대 면장이 취임하여 현재에 이르며, 산수리·하고리·무송리·암치리·계당리·판정리·괴치리·향산리·학천리·사내리·낙양리 등 11개의 리로 이루어진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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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같은 성과 같은 본관을 가지고 살아 온 성씨.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은 한국 성씨의 보급 시기를 고려 전기로 잡고 있다. 후삼국이 쇠퇴하면서 일찍부터 지방에 내려가 정착하기 시작한 중앙 귀족의 후예와 재래의 토착 촌주층(村主層)이 중심이 된 호족(豪族)들은 실질적으로 군현(郡縣)을 장악하고 스스로 관반(官班)을 형성하여 지역을 통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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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의 거석문화를 상징하는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무덤이자 거석 기념물로서 전 세계에 분포하는 석조 유물이다. 그런 고인돌이 현재 고창 지역에는 총 1,500여 기가 분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고인돌의 조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고창 지역인 것이다. 고인돌이 거석 기념물 또는 무덤이라는 점에서 청동기 시대부터 고창 지역은 인구 밀도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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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2월 고창 지역의 신인동맹 회원이 일제에 검거된 사건. 신인동맹은 1938년 당시 전라북도 정읍군 신태인면에서 조직한 비밀 결사 조직이다. 군자금 모집과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조직원 대부분은 지금의 고창군 대산면과 성송면, 그리고 정읍군 출신이었다.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이들은 일경에 발각되어 모두 체포·구금되어 복역하였다. 신인동맹은 보천교(普天敎) 신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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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행정구역. 아산면은 대아(大雅)의 ‘아’자와 산내(山內)의 ‘산’자를 따서 아산(雅山)이라 하였다. 마한 시대에 모이부곡현, 백제 시대에 모양부리현, 통일 신라 시대에 모양현·고창현, 조선 시대에 고창현이었다. 조선 말기에는 고창군 대아면 지역으로 회진(會津)·쌍천(雙川)·추동(秋洞)·선동(仙洞)·동촌(東村)·사동(寺洞)·양정(良丁)·대야(大也)·서당(書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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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암치리는 암치마을 뒷산 칠성산의 고개를 넘어면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으로 갈 수 있는데, 이 고개에 바위가 많이 깔려 있어 ‘암치(岩峙)’라고 했다 한다. 입조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고려 후기 청주한씨(淸州韓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성동면(星洞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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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성송면 암치리 암치마을은 성송면에서 전라남도 지방으로 넘어가는 고개 입구에 속한다. 마을 일원에는 30여 기의 고인돌이 있었다고 보고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멸실되고 암치리 암치마을 옆 진등에 5기, 마을 남쪽에 2기가 있으며, 발굴 조사된 대형의 고인돌 1기가 남아 있다. 1999년 고창농지개량조합에서 농촌 용수 개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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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지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예동(禮洞)과 지촌(智村)에서 ‘예(禮)’자와 ‘지(智)’자를 따 ‘예지(禮智)’가 되었다. 1700년대에 소씨(蘇氏)가 입향하여 마을을 일으켰다고 전래된다. 그러나 조선 영조 초에 경주이씨가 낙향하여 유교의 근본인 예와 효를 펴서 본격적으로 마을을 이루었다 한다. 본래 고창군 오서면(五西面)의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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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고창농악 고깔 소고춤 명인. 유만종은 192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에서 태어났다. 성송면 암치리로 이사한 후 당시 고깔소고춤의 명인 이모질의 고깔 소고춤을 보고 독학으로 익혔다. 그의 고깔 소고춤의 특기는 한 장단에 두 바퀴를 도는 연풍대이다. 같은 마을에 살았던 황규언(黃圭彦)·강대홍(姜大洪)·김영태·이종환과 함께 1985년에 고창농악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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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또는 집단. 고창군의 인구는 1959년 16만여 명에서 1969년 18만여 명, 1979년 15만여 명, 1989년 11만여 명 1999년 7만여 명, 2009년 6만여 명으로 지속적으로 급격한 감소세를 보여 왔다. 고창군에서 인구가 가장 많았던 때는 1966년으로 총 19만여 명을 기록했으나 1980년대 들어 인구 감소폭이 커지기 시작하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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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의 인구, 산업, 교통 등의 인문지리 요소. 고창 지역 사람들이 고창의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만들어 놓은 고창 지역만의 독특한 인문지리적 결과다. 고창 지역에서는 중기 구석기인 5만 2000년부터 고수천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심원면의 대죽도에서는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 편이 출토되었고,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인 고인돌은 전 세계 최고의 밀집도와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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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이루어지는 산림을 유지·조성하고 임목을 보육하며 이것을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산업. 임업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천되어왔다. 초기에는 천연림(天然林)을 벌채하여 생산된 목재를 이용하는 것에 국한된 원시적인 약탈 행위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중기에는 산림을 인공적으로 조성 및 보육하여 임산물의 영속적인 수확을 꾀하는 육성적인 토지 생산 활동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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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의 지질, 지형, 기후 등의 지리적 조건. 고창 지역은 지리적으로 전라북도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북부는 서해, 북서쪽으로는 선운산 도립공원과 접하며, 동남쪽은 노령산맥의 서쪽 기슭에 놓여 있다. 노령산맥은 고창 지역의 등마루를 이루는데, 방장산[734m]에서 시작하여 고산을 지나 장성군의 고성산[546.7m]에 이른다. 등마루 구실을 하는 원줄기는 방장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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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인공 저수 시설. 저수지란 일반적으로 상수도용, 수력 발전용 또는 관개용의 물을 하천이나 계류에서 끌어들여 저장할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커다란 못을 지칭한다. 하천 다음으로 중요한 지표수 용수원으로 하천에서 충분한 용수를 확보할 수 없을 때 중요하게 이용된다. 하천 용수보다 시설비가 비싸고 수질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으나 풍부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고 수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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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배·이호·이문량·이현·이총·이후명·이형덕·이종정·이득진·이경기·이소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시대 사공공(司空公)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고창군의 전주이씨는 완풍대군파(完豊大君派), 양도공파(襄度公派), 장천군파(長川君派),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 경녕군파(敬寧君派), 의창군파(義昌君派), 익양군파(益陽君派) 등이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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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공동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 사회에는 다양한 이해 관계로 인하여 항상 희소 자원의 획득과 배분을 둘러싼 대립이나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대립이나 투쟁을 조정하여 통일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정치라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며, 정치는 주로 국가나 정부라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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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의 지형 특성과 지각 구성 암상, 지층 및 지질 구조. 고창군은 한반도 남서부에 해당되며, 전라북도의 서남단에서 서해안을 끼고 있는 지역이다. 동북으로는 전라북도 정읍군과 부안군에, 동남으로는 전라남도 장성군과 영광군과 접하며, 경위도상으로는 동경 126°26‘에서 126°46’, 북위 35°18‘에서 35°34’에 달한다. 고창군의 지형 형태는 동서간이나 남북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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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계오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진주강씨(晉州姜氏) 시조 강이식(姜以式)은 고구려의 도원수로서 수나라 침략군을 여러 차례 토벌한 공을 세웠고, 후손 강진(姜縉)은 신라인으로 숭인전 사운과(崇仁殿四韻科)에 장원을 하여 판중의령(判中議令)을 지내고 진양후(晉陽侯)에 봉해졌다. 이에 후손들이 진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강학손(姜鶴孫)이 평양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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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를 시조로 하고 정종순·정택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진주정씨는 고려 때 영절공 정예(鄭藝)를 시조로 하고, 문익공 정시양(鄭時陽)을 중시조로 한다. 고창군의 진주정씨는 충장공파(忠壯公派)와 참판공파(叅判公派)가 알려져 있다. 진주정씨 고창군 입향조 정종순(鄭宗舜)은 충장공 정황(鄭璜)의 7대손으로 1515년(중종 10)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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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本)이 같은 부계의 혈족들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마을을 주도하는 성씨가 상대적으로 결속하면서 토성과 세거성씨가 중심이 된 동족 마을이 발달하게 되었다. 1.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수록된 성씨 『세종실록지리지』에 실린 고창 지역의 세거성씨를 보면 고창현의 토성은 오(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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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충준·황석기·황양충 등을 시조로 하고 황호·황인청·황두연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창원 황씨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도 계보를 달리하는 3파가 있다. 이른바 ‘토황(土黃)’이라 하여 고려조에서 문하시중을 지낸 황충준(黃忠俊) 시조로 하고, 그의 후손 황신(黃信)을 1세조로 하는 시중공파(侍中公派)와 공희공(恭僖公) 황석기(黃石奇)를 시조로 하고 ‘당황(唐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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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산수리·무송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원(院)이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 시대부터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사신의 왕래처에 관(館)을 두었던 점으로 미루어 삼국 시대부터 설치되었다고 여겨진다. 원은 공공의 임무를 띤 여행자뿐만 아니라 때때로 일반 행인에게 제공되기도 하였다. 역과 함께 설치된 시설이어서 흔히 역원제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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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고창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驛)은 교통 통신 기관으로 우역(郵驛)·역관(驛館)·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으며, 군사·외교뿐만 아니라 행정적인 측면에서도 중앙 집권 사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육상에는 육참(陸站)을 설치하여 주로 역참이라 하였고, 해상이나 강변에는 수참(水站)을 설치하여 수로와 육로를 연결하였으며, 때로는 통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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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가축을 사육하고 그 생산물을 가공하는 산업. 예로부터 축산업은 어업과 함께 인류의 담백질 공급원의 역할을 주로 수행했지만 가축 사육의 경우 특히 농경시대에는 단백질의 공급원으로서만이 아닌 인간 노동을 보조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역할도 담당하였다. 그러나 산업화와 더불어 농업 생산의 기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가축 사육도 축력보다는 단백질 공급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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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춘산리에 관한 뚜렷한 지명 유래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춘산리(春山里) 명칭과 함께 마을 뒷산에 서 있는 바위를 상징하여 ‘입암(笠岩)’이라 하였고, 현재는 ‘입암(立岩)’으로 고쳐 쓰고 있다고 한다. 1550년경 신천강씨(信川康氏)가 입암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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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제가 식민지적 토지 소유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시행한 사업. 토지 조사 사업은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본이 조선에서의 식민지적 토지 소유 관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시행한 대규모의 조사 사업이다. 근대적 토지 소유권의 확립을 목표로 일본은 이미 1905년 통감부 정치의 출현과 더불어 그 기초 사업을 착수하는 한편, 이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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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재배, 생산되는 특색 있는 농수산물과 가공품. 고창군은 3,000년 전 농업이 시작되었을 정도로 산지보다 평지가 많아 농업에 유리한 지형을 갖고 있다. 특히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황토 지형에 서해와 맞닿은 지역이라 농작물이 해풍을 맞고 자라 우수한 작물 생산지로 각광받아 왔다. 또 청정 바다와 갯벌에서 생산되는 소금과 조개, 김, 장어 등 수산물의 산지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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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판정리는 ‘통시암’·‘통샘’·‘판정(板井)’이라 불렸다. 널빤지로 통을 짠 샘이 있었다는 의견과 마을이 우물에 띄어놓은 널빤지와 같은 지형이라 ‘판정’이라는 설도 있다. 형성 시기가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전기 광산김씨(光山金氏)가 안방죽골에 터를 잡았으나, 200년 후 역수(逆水)와 화재 등을 피해 현재의 축동마을 자리에 새터를 잡아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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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고리는 고현(古縣) 아래쪽이라 ‘하고(下古)’라고 하였다고 한다. 형성 시기와 성씨가 뚜렷하지 않으나, 고려 후기 여러 성씨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원송면(元松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상고리(上古里)·양사리(良士里)·삼태리(三台里)의 일부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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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학천리는 마을 지형이 학이 하늘로 나는 모양의 비학상천(飛鶴上天) 형국이라 ‘학천(鶴天)’이라고 불렀다 한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전기에 광산김씨(光山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성동면(星洞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조동리(釣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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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의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된 지방 자치 단체의 제반 활동과 상호 작용. 현대의 행정은 국민 또는 주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 외에도 수도·전기·교통·통신 등 사회 간접 시설의 제공, 학교·도서관·공원 등 문화 시설의 확충, 사회적 약자 보호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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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향산리는 마을 뒷산이 구릉으로 넓게 보여 ‘박산(博山)’으로 불렸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지형이 ‘난(蘭)’자 형국이라 난의 향기(香氣), 박산의 산(山)자를 따 ‘향산(香山)’이라고 개칭했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창녕장씨(昌寧張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성동면(星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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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 역사. 일제의 무조건 항복과 패망으로 1910년에 강탈당한 국가의 주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이남은 미군이, 이북은 소련군이 진입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완전한 주권 회복은 힘들게 되었다. 이후 1948년 8월과 9월 남북에서 별도의 정치 세력들이 각각의 단독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결국 한민족은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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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고창농악 상쇠 명인. 황규언은 1920년 1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덕천리에서 태어났다. 9세 때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양사동으로 이사한 뒤 15세 때부터 동네 어른들을 따라 다니며 매굿·풍장굿·당산굿 등을 두루 섭렵하였다. 25세 때 고창의 유명한 굿패였던 박성근(朴成根)과 김만식(金萬植)패에 합류한 뒤 김만식에게는 장구 가락을 배우고,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