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원 1리 원골마을에서는 마을 주민과 초대 작가가 함께 참여하는 '예술과 마을' 예술제를 해마다 개최하여, 마을의 개울가, 논과 밭 등에 자연과 농기구를 소재로 야외미술전이 펼쳐졌다. 2004년 예술제는 7월 30일 시작되어 8월 20일까지 이어졌다. 이 예술제 기간에는 조용한 농촌마을인 원골마을의 외관이 심상치 않게 변해 버린다. 마을의 입구, 마을로 이어지는 곧게 뻗...
-
곤충 목공예가로 유명한 한그루(어린이 목공예교실) 대표 채수범(67세)은 1941년 원골에서 출생하였다. 신풍초등학교를 다니다가 10살 때에 6·25전쟁이 일어나서 한문공부를 3년 정도 하였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초등학교 졸업이 좀 늦어졌다고 한다. 13살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유구중학교에 진학하여 16살에 졸업하였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가 고등학교를 진학하여 마치고, 곧바로...
-
해매다 여름이면 원골마을에서는 마을예술제인 ‘예술과 마을’을 개최하여 왔다. 그러나 2007년에는 마을 현지사정 등으로 예술제를 개최하지 못하였다. 예술제를 개최하지 못한 아쉬움과 그간 진행해온 예술제와 관련하여 원골마을 조학묵(61) 이장과의 면담을 통하여 정리해 보았다. 원골마을은 현재 76세대 156명 정도 살고 있는데, 근면 성실하게 열심히 논밭을 일구어서 소득을...
-
평범한 농촌과 예술의 만남은 한국 국제자연미술가협회(약칭 야투[野投])의 적극적인 노력과 마을주민의 호응이 있어 가능했다. 야투는 공주에서 국제자연미술전을 열고 있던 미술인 모임으로, 1980년 젊은 미술인들에 의해 결성된 작은 미술단체였다. 이 협회의 결성 취지는 ‘자연과 호흡을 같이하는 자연예술 미술운동으로 미술을 통한 자연환경 그리고 인간을 표방하여 공주 금강의 천...
-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충청남도 공주에서 금강 수계를 이용하여 발달했던 수운. 조선시대에 공주 지역은 충청도 일대의 수위 도시로서 금강과 주변의 산지들이 방어 기지가 되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금강수운의 주요 하천 항구였다. 공주시의 주요 도시 기능 가운데, 교육과 교통 기능의 원형은 대체로 일제강점기에 부여된 것인데, 이는 조선시대의 도시 기능과도 관련되어 있다. 조선시대...
-
원골 에 전해져 오는 금단지 설화는 내용은 비슷하면서도 여러 가지 형태로 전해져 오고 있다. 첫 번째 전설은 예전에 원님이 파묻어 놓았다고 전해지는 금단지가 가장골 밭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금단지 사건으로 마을사람들은 이곳에 원님이 살았다는 전설을 더욱 믿게 되었다고 한다. 가장골 금단지 전설의 내용을 자세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원골 의 ‘예술과 마을’ 행사는 매년 비슷한 내용의 취지문을 발표하는데, 마을회관 입구에 넓은 나무판을 세우고 취지문을 써서 내건다. 해마다 걸리는 취지문 내용은 ‘농사가 바로 예술이며, 농민이야말로 위대한 자연생명 미술가’라는 뜻으로 요약된다. 2000년도 주민들이 직접 준비하고 개최한 ‘예술과 마을’ 행사 당시부터 마을회관에서 볼 수 있었던 취지문의 내용부터...
-
원골마을 의 체험거리로는 예술체험, 예술개떡만들기, 알밤줍기, 표고버섯수확, 고구마캐기 등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계절별 원골마을 체험 프로그램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봄놀이로 나무곤충 만들기를 소개하고 있다. 곤충채집을 직접 곤충을 잡아서 하기보다는 더 귀엽고 앙증맞은 곤충채집 방법으로 나무로 직접 잡고 싶은 곤충을 만들어...
-
신풍면 동원1리 원골마을은 충청남도에서 ‘예술마을’로 소문이 자자한 마을이다. 마을에서 매년 초여름에 펼쳐지는 예술제는 ‘농촌과 예술’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보여준다. ‘마을과 예술’은 ‘한국국제자연미술가협회(약칭 야투[野投])’의 자연미술운동의 일환으로 1998년 원골에서 ‘마을과 예술’이란 주제로 작가의 작품을 비롯해 현지 주민들의 작품들도 전시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
현재 마을지도자이며, 그동안 예술제 행사가 열릴 때마다 총무를 맡아 많은 수고를 하였고, 그러면서도 틈틈이 작품을 매년 출품하여 예술제에 남다른 애정을 쏟아내었던 서정식(49세)이 도시생활에서 원골마을로 귀향하여 농촌생활에 정착해온 이야기를 통하여 현재 농촌생활의 즐거움을 정리해 보았다. 예전부터 원골마을의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초라해 보이질 않았고, 그렇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조금...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공주목사가 정무를 집행하고 공사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 동헌은 조선시대 지방 관아에서 고을의 원(員)이나 현감(縣監), 병사(兵使), 수사(水使), 감사(監司) 및 그 밖의 수령(守令)들이 주재하는 건물로 정무(政務)를 집행하고 공사(公事)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을 말하며, 대청을 이르기도 한다. 지방의 일반 행정 업무와 재판 등이 동헌에서...
-
“원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착하게 살아유.” 마을 입구에 소나무로 만든 익살스런 표정의 장승에 새겨진 문구이다. 따가운 초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은구들녘, 마을 입구에는 1백여 마리의 새하얀 백로 떼가 유유히 모이를 줍고 있었다. 동원 1리 원골마을. 마을 자체가 전래동화 속 배경이고, 주민 자체가 동화 속 주인공처럼 정겨운 마을이다. 70여세대가 모여...
-
현재 원골마을 동계장인 조창묵(70세) 할아버지는 원골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70년을 살아오신 분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이장직을 맡아 마을을 위하여 일하셨고, 현재는 동계장을 8년째 해오고 계신 조창묵 할아버지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할아버지의 살아온 일생을 정리해 본다. 조창묵 할아버지는 1938년(무인년)에 출생하였다. 할아버지는 원골마을의 대표적인 성씨인 풍양조씨...
-
동원1리는 마을의 면적이 넓지는 않지만, 은구들을 기반으로 한 풍성한 농작물과 예술마을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로 다른 농촌과 달리 풍요롭고 안정된 편이다. 그 덕분에 인구가 크게 줄지 않았으며, 마을은 활기찬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현재 마을의 공공시설로는 마을회관, 농산물 집하장, 저온저장고, 농기계보관창고 등이 있으며, 공동재산으로는 동답 1,000평을 비롯해 자산 5...
-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 공북루 앞 구 금강철교 동쪽에 있던 배를 엮어 만든 다리. 배다리는 과거에 하천에서 배를 엮어 다리로 이용하던 것이다. 배다리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 후기 정조의 화성(華城) 행차를 위해 한강에 설치한 경우가 있다. 일제강점기 공주는 시가지 정비·관청 시설 설치·교통 시설 설치 등 도시 기반 시설을 확충하여 근대 도시로...
-
2000년 8월 동원1리 원골마을에서 진행된 마을주민 주최의 예술제에 대한 첫마디는 경탄과 감동이었다. 사실 작품의 수준이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닌 소박하고 유치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탄과 감동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주민들이 준비하고 개최하기까지의 수고와 노력에 대한 그 열정과 순수함이 높게 평가되기 때문이다. 원래 원골마을의 예술제의 처음 시작은...
-
마을 주민과 야외미술 작가들이 한 마음이 되어 개최한 2001년 ‘예술과 마을’ 원골마을 자연미술전은 큰 인기를 얻었다. 8월 1일 개막되어 8월 말까지 펼쳐진 자연미술전에는 하루 평균 4백 명의 관람객이 찾아 자연속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였다. 자연미술전이 열렸던 원골마을에는 가족단위의 관람객 등이 찾아 작가와 주민들이 전시한 170여점의 작품을 감상하며 대자연과 호흡하였다. 그...
-
원골 에서는 성택(이성택, 55세)이 할머니로 불리우는 남씨 할머니가 여주이씨 종답에 있는 원골 3층 석탑에 평생 탑제를 모셨고, 이 집안에 20살에 시집을 온 이재란 할머니도 시어머님을 모시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50여년 탑제를 모셨다. 이재란(77세) 할머니는 20살에 친정은 청양군 목면 송양리에서 원골 여주이씨 집안의 이대형에게 시집을...
-
원골마을에 옛날 원님이 살았기 때문에 지명을 원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과 원님에 얽힌 전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해 주는 유적들을 원골마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골마을 내에 소재하고 있는 유적은 아니지만, 원골에서 바라보이는 현재 신풍면소재지인 산정리의 남쪽에 솟아 있는 나지막한 성재산 정상부에 테뫼식의 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
“올해는 짚을 소재로 물고기집을 만들었어유. 물고기들이 짚으로 엮은 집을 들락거리듯 사람들도 우리 마을에서 쉬고 교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예술을 주제로 열리는 2006년도 ‘예술과 마을’이 7월 25일 개막식을 열고 8월 21일까지 신풍면 동원리 원골마을에서 작품 전시를 하였다. ‘예술과 마을’ 예술제는 2006년이 10회째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
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야학을 통해 민족 실력 양성을 꾀했던 교육 운동. 야학은 3·1운동 이후 민족 실력 양성 운동이 전개되면서 교육열이 고조된 데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일제의 차별적인 식민지 교육 정책으로 인하여 교육 시설이 부족한 데다가 민족 교육이 온상지로 지목되어 사립 학교가 탄압을 받고 있어서 정규 사립 학교 설립이 어려웠다. 여기에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의무교...
-
농어촌에 ‘브랜드 마을’이 뜨고 있다. 농어촌에 ‘마을 관광상품화’ 바람이 불고, 시골 마을들이 ‘전통 브랜드화’를 앞세우기 시작하여 체험마을과 테마마을이란 이름으로 마을을 브랜드화하고 있다. 충청남도도 주5일 근무제 확산과 웰빙 바람에 발맞추어 농촌지역 특색을 살린 체험마을 조성사업에 집중 투자를 하고 나섰다. 충청남도에 따르면 도와 각 시·군이 추진하고 있는 체험마을...
-
어떻게 농사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예즉농(藝卽農), 농즉예(農卽藝)’는 신풍면의 한 작은 마을인 동원리 원골마을에서 마을예술제의 주제로 내건 문구이다. 이 마을예술제를 시작한 사람은 임동식이라는 한 자연미술가이다. 그는 공주 자연미술비엔날레를 발기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자연미술의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농사가 곧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공주 자연미술비엔날레의 모...
-
원골마을 은 특산물로 은구들에서 재배되는 밥맛 좋은 벼, 맑은 공기와 가을 햇살로 빨갛게 잘 익은 홍고추, 그리고 버섯재배사에서 재배되는 표고버섯 등을 마을의 특산물로 자랑하고 있다. 벼는 비옥한 토질과 농민들의 땀과 노력으로 벼농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공주 신풍면은 밥맛을 인정받은 일품벼를 재배하고 있으며, 1모작 기재배로 미질이 향상되었다. 특히 원골마을...
-
① 6시 내고향 - 3377회 (방송일 : 2005년 5월 2일) 백년가약 제44호 충남 공주시 신풍면 원골마을 ‘예즉농(藝卽農), 농즉예(農卽藝)’ 예술이 곧 농사요, 농사가 곧 예술인 마을 원골. 마을 주민은 모두 예술가가 되고, 그곳의 자연은 모두 예술작품이 된다. 1993년부터 젊은 예술인들이 마을을 찾아와 야외 미술제를 개최한 이래 2000년부터는 마을 주민들이 주최가 되...
-
과거 원골의 탑제는 마을 주민 전체가 아닌 개인 이대형의 조모님과 모친인 남씨 할머니에 의하여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90년대 초반경까지 지내졌다. 1945년 해방 직후 일본에서 귀국한 이대형씨 부친은 탑 근처의 집을 인수하고 개축 공사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탑을 위해야 좋다는 여론이 있어 지낸 탑제가 지금까지 확인된 내용이다. 탑 근처에 살아온 이대형씨의 모친 남씨 할머니...
-
원골 로 시집 와서 지금까지의 지내온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준 임형화(49세)씨는 원골마을 동계 총무인 조병동의 부인으로 원골에 살고 있는 얼마 안되는 40대 젊은 주부 가운데 한사람이다. 임형화는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고, 20대 시절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하던 중 충북 옥천으로 파견을 나가 근무하게 되었고,...
-
원골마을 의 한가운데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이 있다. 신풍면 동원리 380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3층 석탑은 1976년 1월 8일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다. 석탑이 있는 주변은 고려시대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지금은 주택이 들어서고 또한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예전 사찰의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고려시대...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평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이덕사와 이태연의 묘비. 이덕사와 이태연은 한산이씨 집안으로 부자간이다. 이덕사의 묘비는 1666년(현종 7년)에, 이태연의 묘비는 1725년(영조 1년)에 각각 세워졌는데, 특히 이덕사는 우암 송시열의 장인으로, 사위인 송시열이 직접 찬서(撰書)하였고, 이태연 묘비는 권상하(權尙夏)가 찬서(撰書)하였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이목과 아들인 이세장과 관련된 유적. 이목(李穆)[1471~1498]은 반포면 충현서원에도 제향된 인물로 조선 전기 호서의 사림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옹(仲雍), 호는 한재(寒齋),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19세로 진사에 합격하였으며, 1495년 25세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지역에 있던 고을을 일컫던 지명. 전막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주막거리가 있어서 마차들이 전부 쉬어 갔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구한말 청나라 사람들의 밭이 많았으며, 그 밭을 돌보는 작은 집들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천막을 오른다는 뜻으로 이곳에 빈촌이 많이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고려시대 사찰이 지역의 토착세력과 관련이 있다는 점, 그리고 건축양식이 지방적 특색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동원리 3층 석탑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하겠다. 즉 고려시대 신풍 지역의 위상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동원리에서 3층 석탑 외에는 사찰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3층 석탑을 중심으로 주위를 경작지와 민가로 둘러싸고 있는데, 일찍부터 경작지로 개간되었기...
-
마을신앙은 제사를 모시는 주체 및 대상 신격, 그리고 그 범위와 형태에 따라 종교적 신앙과 구분되는 한국 고유의 민속신앙의 한 유형이다. 동원1리의 원골탑제는 신풍면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사례이다. 동원1리에는 석탑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예부터 이곳은 풍수지리적으로 뒤쪽이 허하여 현감이 목숨을 잃고 마을에 질병이 잦을 것이라 하여 이 탑을 건립하였다는 이...
-
조분남(81) 할머니는 올해 81세로 청양에서 원골로 시집을 오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시집와서 시댁에 손으로 옷감을 짜는 수직기 기계가 2대 있었고, 직접 수직기를 이용하여 직조일을 하셨다고 한다. 당시 직조일을 많이 했던 집에서는 직조기계를 여러대 설치하고 공녀를 고용하여 옷감을 짰다고 한다. 기계가 많았던 집은 5대 이상 되는 집도 있었다고 한다. 엄기숙...
-
머리가 하얀 백발이지만 조창하(83세) 할아버지는 비교적 정정하신 모습으로 마을이야기와 집안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조창하 할아버님은 풍양조씨 회양공파 문중의 후손으로 원래는 부여군 장암면 덕림동(德林洞)에 집성촌을 형성하여 살다가 공주 이인으로 이거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조창하 할아버님의 증조부인 조운응(趙雲應)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 당시 농민군으로부터의 난을 피하여 공주군 이...
-
현재 동원1리 이장을 맡고 있는 조학묵(현재 61세) 이장님으로부터 동원리 원골마을에서 오래전에 공연하였던 마을연극에 대하여 그 자취를 더듬어 본다. 지금부터 50~60여년 전의 일이다. 원골마을 주변에 난장이 서면 씨름을 하여 동네사람들이 이겨서 매번 소라는 소는 모두 원골로 타왔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칠석행행사(오늘날의 사물놀이)는 큰 장대에 기를 매어달고 하였는데,...
-
동원리의 ‘마을과 예술’ 행사는 전국에 범람하는 비슷비슷한 축제의 홍수 속에서 단연 눈에 띄는 독특한 예술제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 왔다. 매년 행사가 시작되는 첫날에는 마을 곳곳에서 방송국의 카메라를 만날 수 있으며, 신문과 잡지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쉽게 검색이 가능하다. 동원리의 마을예술제는 매년 7월~8월 중에 시작되어 약 한 달간 마을 일대에 예술작품...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청년층에 의하여 조직되고 운영되었던 단체. 청년운동이란 청년들에 의해 수행되는 운동으로, 청년의 공통적인 세대적 특성에 기초해서 사회적 처지로 인해 고통 받는 각계각층 청년들이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하여 전개하는 운동이다. 이러한 사회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청년층들이 조직하고 운영해온 단체를 청년단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청년...
-
충청남도 공주시 금흥동에 있는 지역 역사 문화 연구 기관.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현대에 재조명하고 이를 정신적 유산으로 후세에 계승·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충청남도에서 출연하여 설립한 재단 법인의 연구 기관이다.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발굴·조사·연구로 이를 현대에 재조명하고, 전시·보존·홍보를 통하여 충청남도의 역사...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충현서원의 유적. 1581년(선조 14) 학자 서기(徐起)[1523~1591]가 주자(朱子)를 추모하기 위해 ‘박약재’라는 이름으로 처음 서원을 세웠다. 이후 이존오(李存吾)·성제원(成悌元)·이목(李穆)의 위패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복원하고, 1624년(인조 2) 조헌(趙憲)을 추가 배...
-
이성순(87세) 할머니는 원골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혼인해서 지금까지 87년 한평생을 원골에서만 살아온 할머니이다. 원골마을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이 경우 대부분 신풍면 인근마을이나 공주군 내, 멀게는 청양군 등지에서 원골마을로 시집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골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혼인까지 하여 지금까지 한평생을 살아오는 경우는 조금은 남다르고 특별한 경우라고 여겨진다....
-
‘동원리’라는 지명이 탄생하게 된 것은 1914년 일제강점기이다. 이때에 대대적인 행정개편 작업이 이루어졌고, ‘신하면’은 신상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신풍면’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신하면에 속해 있던 동막리, 화장리, 원동의 일부를 병합하면서 동막과 원동의 앞글자를 따서 ‘동원리’라 하게 된 것이다. 동원리의 지형은 유구천을 따라 동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모양이어서 원골과...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안동김씨의 열녀비. 향지리 열녀비는 지방 유림의 발의로 군수가 세운 열녀비이다. 안동김씨는 부안임씨인 임완수의 처로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죽는 슬픔을 맞았다. 그러나 흐트러짐 없이 지극 정성으로 3년간 남편의 묘소를 옆에서 보살폈다. 안동김씨는 남편의 3년상이 끝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