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에 있는 거석 기념물. 가척리 선돌이 위치한 탄천면 가척리 2구는 공주시에서 남서 방향으로 19.8㎞ 정도 떨어져 있다. 가척분교에서 북쪽 방향으로 250m 정도 떨어진 가척리 2구 초입에 느티나무가 있다. 그 왼쪽 뒤편으로 10m 정도 떨어져 있는 논 가운데에 선돌이 위치한다. 선돌은 자연석을 둥그렇게 쌓아 올린 자연괴석층 기단의...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 터. 탄천면소재지에서 남서 방향으로 약 10㎞ 지점인 가척리의 뒷산 중상단 지역에 있다. 가척리 청림사지 내에는 건물의 초석과 석탑 및 부도 3기가 남아 있다. 건물 터는 현존 건물을 중심으로 주변에 남아 있는 초석에 의해 확인되는데, 이들은 탑을 중심으로 뒷면 및 왼쪽에 있다. 이중 왼쪽의 건물 터는 지름...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 청림사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종형 부도. 부도는 승려가 입적한 후 문도들이 세워주는 기념적인 조형물로 일종의 묘탑(墓塔)이다. 부도에는 입적한 승려를 화장하고 남은 유골이나 사리가 봉안된다. 가척리 청림사지 석조 부도도 조선 후기 청림사에 오랫동안 머물렀거나 청림사에서 입적한 승려를 기념하여 만든 조형물인 듯하다. 탄천면 가척리...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삼층석탑. 탑은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인 스투파(Stupa)를 한자로 음역하면서 솔도파(率堵波)·솔탑파(率塔婆)라 부르다가 탑파·탑이라고 줄여서 부르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원의 중심에 하나의 탑을 세워 불사리를 봉안하였으나, 이후 탑을 두 개로 나누어 세우기도 하고, 사원의 중심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 세우기도 하였다. 세월이...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동종. 갑사 동종은 크게 용뉴부(龍鈕部)와 종신부(鐘身部)로 구성되어 신라시대 이래 제작된 우리나라 범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용뉴부에는 두 마리의 용이 좌우로 용두를 힘차게 뻗치고 있으며, 입은 크게 벌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범종만의 특징인 용통(龍筒)은 마련되지 않았다. 어깨 부분에는...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사적비. 공주에서 논산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0㎞를 가면 계룡면소재지로 빠지는 길목이 있고, 이곳에서 계룡저수지를 지나 6㎞ 거리에 갑사 입구가 있다. 갑사 일주문을 통과해 사천왕문에 이르러 왼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갑사 부도군 옆에 갑사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화강석 자연 암반을 좌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삼층석탑. 원래 갑사의 부속 암자인 중사자암에 건립되었으나 암자가 폐허되면서 갑사로 이건하여 현재의 위치에 세워지게 되었다. 지면에 4매의 장대석으로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갑석을 올렸다. 지대석에는 4면에 안상이 새겨져 있으며, 갑석에는 우동(隅棟)이 성형되어 있다. 몸체[옥신] 받침은 곡선으로 처리하고, 몸체...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견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절 터. 미암사(米巖寺) 근처에는 쌀구멍이라 불리는 구멍이 있었는데, 암벽의 구멍에서 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양식으로 사용할 만큼의 쌀이 정기적으로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 중 하나가 한꺼번에 많은 양을 취하려 하자 갑자기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근거로 절 명칭이 정해졌다고 한다....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북계리 봉화산에 세워진 조선시대 봉수. 고등산 봉수대는 공주시 옥룡동의 월산성 봉수대에서 연결받은 봉화를 북쪽에 있는 인풍리 쌍봉 봉수대로 연결하는 봉수이다. 정안면 북계리와 의당면 두만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해발 184m의 봉화산 정상에 있다. 봉수대는 둘레 78m의 둥근 석축의 형태이며, 석축 북쪽에 원형의 고대가 설치되...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학자 서기의 묘갈. 고청 서기 묘갈은 서기의 무덤 앞에 세운 작은 돌비석이다. 서기(徐起)[1523~1591]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자는 대가(大可), 호는 고청(孤靑)·귀당(龜堂)이다. 서경덕(徐敬德)·이중호(李仲虎)·이지함(李之函)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전념하여 제...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안에 있는 조선 중기 공주 공산성의 북문루(北門樓). 공주시청에서 웅진로를 타고 공주시외버스터미널 쪽으로 약 2.33㎞ 가면 공산성 주차장이 나온다. 공북루는 금강에 인접하여 있다. 공주 공산성의 북문루인 공북루가 있었던 곳에는 원래 망북루(望北樓)가 있었다. 1530년(중종 25)에 증보(增補)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각. 일반적인 누정들이 주변 풍광을 고려하거나, 강학 위주로 건립되었다면 공산성 만하루는 공산성 동쪽 누대에 있는 군사적 기능이 중심이 된 누정이다. 공주시청에서 공주고등학교를 지나 옛 공주시내버스터미널 방면으로 약 3㎞ 정도 가면 공산성의 입구가 나온다. 만하루는 공산성 동편에 있는 깊이 9m의 연지와...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백제시대로 추정되는 왕궁 터. 공산성 왕궁지는 충청남도 공주시의 산성동과 금성동에 있는 공산성(사적 12호) 안에 있다. 공산성은 북쪽에 금강과 접해 있어 군사적 방어지점으로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공산성내 서쪽의 해발 85m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종래 쌍수정 광장으로 불려 왔던 추정 왕궁 터이...
-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금동여래입상. 독존의 금동여래입상이다. 상호는 살이 올라 방형으로 보이며, 뚜렷한 이목구비에 입가에는 미소가 감돈다. 대의가 불신에 달라붙어 세장한 신체를 보여주고 있다. 대의는 통견(通絹)이며, 앞가슴이 훤히 드러나 있고, 물고기 지느러미 형태의 의문(衣紋)이 양옆으로 날렵하게 뻗어 있다. 목은 짧으며 이도만이...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공주시청 정문에서 웅진로를 타고 공주시외버스터미널 방향으로 약 2.3㎞ 정도 가면 공주 공산성 입구가 나온다. 공산성 쌍수정은 진남루 부근의 서쪽 고지대에 있다. 1734년(영조 10)에 창건되었는데, 창건 당시의 이름은 삼가정(三架亭)이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중건하였으며, 1903년(고종 40)에 수...
-
이천일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공주의 세거 성씨. 시조 이천일은 기원전 53년(신라 박혁거세왕 5) 중국 한나라로 가서 뛰어난 문명으로 대장군에 올라 흉노적을 정벌한 공훈으로 요동백에 봉해졌다. 환국 후 공산군에 봉해진 이천일은 그때부터 공산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조선 전기 지리지에는...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승탑.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석조 승탑[浮屠]과 탑비(塔碑)는 국사(國師)나 왕사(王師)를 역임하였거나, 그러한 지위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았을 경우 세워졌다. 승탑은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한 무덤의 기능도 있었지만 사찰의 위상을 대내외에 알리는 기능도 있었다. 원래는 중사자암이라는 암자에 있었는데, 1917년경...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통일신라의 철당간. 통일신라 이후 사원에서 행사가 있을 때,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었는데, 이러한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한편 당은 사원의 종파를 알리기도 한다. 기단과 철당간, 당간지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석은 장대석 2매를 철정으로 고정...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 통일신라 때 대통사의 당간지주. 통일신라 이후 사원에서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러한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당은 한편으로 사원의 종파를 알리기도 한다. 네모꼴의 지주가 동서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지주 상단 바깥 면이 호형으로 치석되어...
-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시대 사찰에서 사용하던 석조 유물. 석조(石槽)는 돌을 그릇처럼 가운데를 파내고, 그곳에 물을 담아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던 것이다. 주로 사찰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물을 담아 식수로 사용하기도 하고 연을 심어 조경 시설물로 사용하기도 한다. 깎는 모양에 따라 정방형, 장방형, 원형, 부정형 등 다양하게 제작해 쓴...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송정리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시대의 금동보살입상. 머리에 삼면관이 올려져 있고, 보관(寶冠) 정면에서 좌상의 화불이 확인된다. 본래 보관의 좌우면에도 화불이 있었던 듯하나 오른쪽 부분의 경우 멸실되어 확인할 수 없고 왼쪽의 것은 불감만 남아 있다. 보관의 아래위로 보발이 표현되어 있다. 상호에는 살이 올라 있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입가에는 미...
-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시대 사찰에서 사용하던 석조 유물. 석조(石槽)는 돌을 그릇처럼 가운데를 파내고, 그곳에 물을 담아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던 것이다. 주로 사찰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물을 담아 식수로 사용하기도 하고 연을 심어 조경 시설물로 사용하기도 한다. 깎는 모양에 따라 정방형, 장방형, 원형, 부정형 등 다양하게 제작해...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청량사 폐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오층 석탑. 건립 연혁과 관련된 기록이나 변천 내용이 자세히 전해오지 않는다. 전체적인 탑의 조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낮은 단층 기단에 5층 탑신으로 만들었으나 현재 4층까지만 남아 있다. 지대석 위에 올린 기단에는 면석과 우주석을 각각 별도의 석재로 만들어 세웠고, 그...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청량사 폐사지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칠층석탑. 건립 연혁과 관련된 기록이나 변천 내용이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탑의 조형으로 보아 통일신라 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50년대에 무너진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계룡산 동학사 뒤편 비로봉 아래 산 중턱에 공주 청량사지 오층 석탑과 남북으로 나란히 있...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 청림사 터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공주가척리석탑은 청림사 건립과 관련이 있어 보이나 정확한 연혁은 알려지지 않았다. 공주가척리석탑은 지면에 맞추어 지대석을 설치하였고, 지대석 네 면에는 안상을 새겨두었다. 기단부는 1매의 화강석으로 만들었고, 모서리에는 우주를 양각으로 새겨두었다. 갑석 역시 화강석 1매로 치석하여 올...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귀산리에 있는 노응환·노응탁·노응호 3형제의 생가 터. 노응환(盧應皖)[1555~1592], 노응탁(盧應晫)[1560~1592], 노응호(盧應皓)[1574~1592] 등은 본관이 만경이다. 이들은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아들로서 일찍이 공주목사였던 중봉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공부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이...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삼층석탑. 공주동원리석탑은 동원리의 절터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절의 이름이나 연혁을 포함하여 탑의 건립 경위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2층의 기단부와 3층의 탑신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현재 3층 탑신과 지붕돌[옥개석], 상륜부는 상실되고 없다. 기단은 2중 기단이고 기단 아래는 6매의 장대석으로 지대석을...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구룡사지 입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당간지주. 통일신라 이후 사원에서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 당(幢)이라는 기를 달아두는데, 이를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당은 한편으로 사원의 종파를 알리기도 한다.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지주 위쪽에는 장방형의 간구가 마련되어 있고,...
-
충청남도 공주시 태봉동 태봉산에 있는 조선 중기 숙종대왕의 태실비 2기. 1661년 숙종이 태어났을 때 풍수지리적으로 명산을 찾은 끝에 현 위치에 태를 묻고, 훗날 왕위에 즉위하자 왕의 태실로 승격하여 새롭게 조성하였다. 그 과정을 기록한 2기의 태실비가 1661년(현종 2)과 1683년(숙종 9)에 각각 건립되었다. 그 후 고종 때에 숙종의 태는 경기도 양주로 이장되었...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동으로 제작된 범종. 공주 영은사 청동 범종은 크게 용뉴부(龍鈕部)와 종신부(鐘身部)로 구성되어 있어, 신라시대 이래 제작된 우리나라 범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용뉴부는 용이 네 개의 발을 힘차게 아래로 뻗쳐 발가락으로 동종의 천판을 강하게 짚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어 역동적으로 보인다. 볼록한 용...
-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에 위치한 고려와 조선시대의 국립 중등 교육기관. 공주향교는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며, 지방민을 교화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공주향교의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공주시청에서 무령로를 따라 약 2㎞ 거리에 있는 공주 교동성당 앞에서 왼쪽으로 2㎞를 가면 충남통일관이 있다. 그 앞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2㎞...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구암리 1구 작은말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구암리 고인돌군은 이인면소재지의 북쪽에 있는 구암리 1구 작은말의 안쪽에 위치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형성된 구릉의 남사면 하단부에 3기가 자리한다. 구암리 고인돌군은 1986년 공주사범대학 박물관에서 진행한 공주 지역문화재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당시 고인돌은 마을...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구암리 1구 윗말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 구암리 돌방무덤은 이인면 소재지의 북쪽에 있는 구암리 1구 윗말에 위치한다. 고분은 마을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형성된 구릉의 남동사면 중하단부에 자리한다. 구암리 돌방무덤은 1975년에 알려져 조사되었다. 이후 지표 조사 과정에서 고분군의 존재를 확인했으나, 전체 고분군을 대상으로...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국곡리에 있던 청동기시대의 거석 기념물. 세종특별자치시에서 동쪽 방향으로 13.8㎞ 정도 거리에 있는 금남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2㎞ 정도 들어가면 국곡리가 나온다. 국곡리는 행정구역상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하나 이곳에 이르는 교통은 금남면 소재지에서 연결된다. 국곡리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100m 정도 가면 마을회관이 있으며, 마을회관...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발견된 철이나 청동 등 쇠붙이나 석재에 기록한 글씨나 그림. 금석문은 보통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를 뜻하며, 넓게는 나무·토기·그릇·직물·전돌·기와 등에 기록된 문자를 포괄하여 부르기도 한다. 역사 연구에 있어 고문서 등의 기록과 함께 특히 주목되는 자료이다. 금석문의 기록을 통해 지역의 지명·인명(행적)·연대 및 건립 경위와 주체 등을 확인할 수...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절 터 공주시 금성동 정지산, 무령왕릉이 있는 구릉이 북향하여 금강에 잇대어져 있는 곳에 있다. 금강에 연한 경사면에 작은 건물지가 있고, 부근에서 소탑 1기가 발견되어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현재 사지로 추정되는 지역은 전답으로 이용되다가 완전히 황폐해져 유구나 유물의 확인이 어렵다....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 터. 금학동 탑골 일대인 공주교육대학교와 공주여자고등학교의 북쪽 지역에 있다. 1970년 공주교육대학교의 대운동장에서 공사 중 동서 길이 11m, 남북 너비 6m 규모의 건물 터가 발견되었고, 이곳에서 통일신라 때의 양식인 2단으로 조각된 원형 기둥자리[圓形柱座]를 가진 사각형의 초석편이 출토되었다....
-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문신. 순천김씨는 원래 순천에 세거하였던 성씨였으나 김종서의 조부 김태영(金台泳) 때에 이르러 공주에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世宗實錄)』과 『단종실록(端宗實錄)』의 여러 기사를 통해 공주에 김종서의 집과 농장이 있었으며 선대의 묘도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관은 순천(順天). 아버지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명장인 절재(...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재(節齋)이다. 할아버지는 지평 김태영(金台泳)이고, 아버지는 공주에서 도총제(都摠制)를 지낸 김추(金錘)이며, 어머니는 성주 배씨로 대사헌 배규(裵規)의 딸이다. 3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1405년(태종 5) 식년시(式年試)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김종서(金宗瑞)[1383~1453]는 여러...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대학리 굴덕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인 김충수의 처 금성나씨의 정려. 공주에서 부여로 가는 국도 651호선 ‘백제큰길’을 따라 약 23㎞ 가다 보면 96번 도로와의 연결 지점이 있다. 이때 96번 도로로 들어가면 대학리 입구가 있는데 대학리 굴덕 안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구릉지에 있다. 김충수 처 금성나씨 정려는 원래 전라...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사회(士晦), 호는 설송(雪松)이다. 아버지는 행영흥도호부사(行永興都護府使)를 지낸 김반천(金半千)이다. 1558년(명종 13)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후 벼슬길에 올랐고, 1564년 식년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삼사의 관직을 두루 거쳤다. 1592년(선조 25) 상주목사로 부임하던 해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 2리 송정골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거석 기념물. 공주시에서 국도 40호선으로 부여 방향으로 가다가 탄천면 삼각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지방도 799번을 따라 4.2㎞ 남짓 가다 보면 남산리로 진입하는 소로가 나온다. 남산리 선돌은 공주시에서 남서 방향으로 18.6㎞ 정도 떨어진 공주시와 부여군의 경계에 인접한 남산 2리에 위치한다. 농...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충신.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문백(文伯), 호는 관류당(觀流堂)이다.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노응환(盧應晥)[1555~1592]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노숙(盧璛)[1587~1655]은 1624년(인조 2) 인조가 이괄(李适)의 난(亂)을 피하여 공산성 쌍수정에 파천하여 있을 때, 군량...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계회(季晦), 호는 국재(菊齋)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삼의사(三義士) 중 한 명인 노응탁(盧應晫)[1555~1592]은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진사과(進士科)에...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시회(時晦), 호는 체헌(棣軒)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삼의사(三義士) 중 한 명인 노응호(盧應皓)[1574~1592]는 임진왜란 때에 조헌(趙憲)이 일으킨 의병을 따라 두...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명원(明遠), 호는 수암(守庵)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삼의사(三義士) 중 한 명인 노응환(盧應皖)[1555~1592]은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는데,...
-
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절 터. 공주-논산 간 국도변 오른쪽의 공주시 월성산이 남쪽으로 흐르는 신기동 뒷산 해발 160m 지점 계곡 사이에 있다. 현재 능엄사지로 알려진 곳에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능엄사(陵奄寺)라는 암자가 있는데, 이 사찰의 건립 과정에서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작은 불상 3구가 발견되었고,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이...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도신리에 있는 거석 기념물. 공주시에서 동혈사 방향으로 가다가 동혈사 안내판이 서 있는 언덕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의 604번 도로를 타고 1㎞ 정도 가다가 우회전하여 덕학리 방향으로 간다. 덕학리 마을회관 앞에서 우회전하면 도신리가 나온다. 도신리 마을회관을 지나 다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도신...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 터. 동원리 사지는 오래전부터 경작지로 이용되어 왔으며 사찰과 관련된 별다른 유구는 남아 있지 않지만 기와편과 석재 일부가 발견되었다. 기와편은 회갈색, 황갈색, 회색 계통으로 기와 등면에 선조문이 있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동원리 사지 내에는 현재 공주 동원리 석탑이 남아 있...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동학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교 사원의 사당식 목조 건축물. 삼성각은 칠성(七星), 산신(山神), 독성(獨聖)의 삼성(三聖)을 봉안하고 있는 사당 형태의 건축물이다. 대개 이 삼성을 따로 봉안하는 경우가 많은데, 동학사에서는 가운데 칠성탱(七星幀)을 중심으로 왼쪽에 「산신도」, 오른쪽에 나반존자상을 봉안하고 있다. 동학사 경내 대웅전...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동학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또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 탑은 고대 인도 산스크리트어인 스투파(Stupa)를 한자로 음역하면서 솔도파(率堵波), 솔탑파(率塔婆)로 부르다가 탑파, 또는 탑이라는 줄임말로 부르게 되었다. 스투파의 원래 뜻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묘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사원의 중심에 탑 하나를 세워...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백제시대 절터. 동혈사는 백제 때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로, 1481년(성종 12)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사찰 이름이 보이나, 1799년(정조 23)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폐사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폐사의 이유는 전하지 않고 있으며, 이후 1859년(철종 10) 임정회(林挺會) 등이...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 동혈사지 동쪽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조 부도. 동혈사(東穴寺)는 백제시대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근래에 다시 동혈사가 세워져 법등을 잇고 있는데, 원래의 동혈사 자리로 보이는 건물 터가 입구에 있다. 또한 사찰 주변에 많은 수행굴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동혈사는 오래전부터 중요한 수행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부도는 승려가 입적...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 동혈사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 탑은 고대 인도 산스크리트어인 스투파(Stupa)를 한자로 음역하면서 솔도파(率堵波), 솔탑파(率塔婆)라 하다가 탑파(塔婆), 탑이라는 줄임말로 부르게 되었다. 스투파의 원래 뜻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묘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사원의 중심에 탑을 하나 세워 불사리를 봉안하였으나 나중에는 탑을 두 개...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두만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 터. 의당면 두만리에 이르기 직전, 탑산골이라 부르는 계곡에 있다. 두만리 사지는 약 1,190㎡ 정도 규모이며, 동서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만리 사지 내에서 발견된 유구는 자연 초석 형태의 석재와 와편 및 토기편 등으로, 산포된 초석형의 석재 가운데 3매는 금당지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부도군. 부도는 입적한 승려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문도들이 세워주는 기념물로서, 일종의 무덤이었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상당한 지위를 누렸거나 그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았던 고승들의 부도를 세웠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살아생전의 법계(法階) 및 지위와는 상관없이 문도들이 승려의 입적을 추모하고 명복을 빌...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만수리 고분군은 이인면 만수리 아랫만수동 북쪽에 위치한 산의 남사면 일대에 위치한다. 주변으로는 서북쪽에 금강이 있으며, 북서쪽 정상부에는 해발 172m의 개숭산에 백제시대 만수리 산성이 위치한다. 만수리 고분군은 1987년 백제문화개발연구원의 지원으로 공주사범대학 박물관에서 진행한 공주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公山城) 안에 있는 명나라 장수의 송덕비.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선조 31) 가을 공주에 주둔하면서 군기를 엄히 단속하고, 주민을 정성껏 보살핌으로써, 왜군의 위협 하에서도 안전하게 생업에 안주할 수 있게 하였던 명나라의 장수 제독(提督) 이공(李公), 위관(委官) 임제(林濟), 유격장(遊擊將) 남방위(藍芳威)의 업적을...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공주목사 김효성의 선정비. 공주목사 김효성은 청렴 결백하고, 백성을 잘 다스렸으며, 군대 통솔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칭송하기 위하여 목사 김효성의 비가 세워졌다. 공주시청에서 공주고등학교를 지나 구 터미널 방면으로 약 3㎞ 정도 가면 공산성 입구가 나온다. 공산성 서문 입구에는 43기의 조선시대 비석이 모여 있는데...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옛사람들이 남겨놓은 유·무형의 자산. 공주 지역은 60여 년간 백제의 왕도로서 역사상 특별히 부각되고 있고, 공주 공산성이나 무령왕릉 같은 유적들이 그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공주의 역사는 비단 백제시대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백제의 왕도였다는 사실에 비해 더 길고 오랜, 그리고 복잡한 역사의 흔적들이 공주 지역에 남아 있...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 백제시대에 공주 제민천 돌다리 교각 밑에 받쳐두었던 초석.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원래 초석이 있던 자리가 대통사지의 남동쪽으로, 인근에 당간지주가 있어 대통사로 통하는 다리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처음 만든 시기는 대통사가 건립된 백제 때였을 것으로 보인다. 가로, 세로 각각 1m 정도의 화강석 위에 교...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보흥리 2구 수옥동에 있는 거석 기념물. 공주시에서 북서 방향으로 6.8㎞ 정도 가면 우성면소재지가 나온다. 여기서 남쪽으로 약 3.2㎞ 정도 가면 보흥리 2구의 수옥동이 있다. 보흥리 선돌은 수옥동 입구 왼쪽 도로변에 위치한다. 본래는 마을 입구 노변인 논둑에 쓰러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50여 년 전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이...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보흥리 안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보흥리 안골 고분군은 우성면소재지에서 청양 방면으로 약 2.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형성된 능선의 동남사면 하단부에 해당하며, 현재는 산림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흥리 안골 고분군은 1986년 문화재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이후 구체적인...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봉곡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 터. 반포면 봉곡리 1구 마을, 해발 392m의 국사봉 남쪽 말단부에 있다. 봉곡리 사지로 추정되는 면적은 약 2,644㎡ 정도이다. 현재 이곳에서는 사원 건축에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초석형 자연석과 다수의 기와편 및 자기편이 산재되어 있다. 초석형 자연석은 대체로 지름 1m 가량의 판석형으로,...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조선시대의 통신 수단. 봉수제도는 변방의 다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군사적 목적으로만 사용하였다. 봉수대는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횃불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횃불 3개, 국경을 침범하면 횃불 4개, 전...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공주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 석재로 만든 사자 모양의 조각품. 사자는 호랑이와 더불어 맹수의 왕이다. 강인한 남성을 상징하기도 하고, 온갖 잡귀를 막아주는 수호의 상징물로서, 문양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사자를 응용하여 조각물이나 문양을 만들어 붙여두면 사악한 기운과 잡귀가 침범하지 못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러한 사자의 상징성으로 인...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선현이나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는 곳. 사당은 제사를 드리는 의례 공간으로 가족 차원에서는 가묘(家廟), 국가 차원에서는 종묘(宗廟)라고도 한다. 또한 서원이나 향교를 비롯한 학문 공동체나 지역 사회에서도 제사를 드리는 의례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에 전래된 주자학과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조선시대...
-
조선 중기 공주 지역의 정치와 사상의 흐름을 주도한 양반 지식인 세력. 공주 지역은 지리적으로 호서 지방의 중앙에 위치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비중이 더욱 심원하다. 공주 지역은 오랜 역사를 지낸 고도일 뿐만 아니라 고려 말 조선 초 이후로는 유서 깊은 유향으로서 청주, 충주 등과 더불어 호서 사림의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계룡산과 금강을 배경으로 천험의 지형...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남아 있는 절 터. 사지(寺址)는 과거 완전한 형체를 갖춘 사찰이었으나 기둥을 포함한 사찰의 상부구조가 멸실되고 기단, 초석, 적심시설 등 하부 구조만 남아 있는 사찰의 터를 말한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는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사지(寺址)가 남아 있다. 백제시대 공주에는 흥륜사, 대통사, 수원사, 옹산사 등이 창건되어 있었던 것...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산정리 오얏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공주시 신풍면과 유구읍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신풍면 산정리가 있다. 산정리 고분군은 산정리 3구 쇠실의 북쪽에 있는 산의 동남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 산정리 고분군은 1986년 문화재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당시는 주민의 전언과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는 고분 석재를 기초로 고분군...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산학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 터. 장기면 산학리의 쌍봉산 중턱에 동향으로 있다. 산학리 사지는 산의 경사를 깎아 약 5m 높이로 축석한 2단의 대지 형태이다. 이곳에는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초석형 괴석과 다수의 기와편 및 자기편, 그리고 인화분청자편이 산포되어 있다. 산학리 사지의 면적은 약 165㎡ 정도로, 이 일대를 ‘고제암(...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 있는 선돌. 공주시에서 남동 방향으로 13.2㎞ 정도 가면 상신리 입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상신초등학교 못 미쳐 거리 오른쪽에 상신구곡정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이 음식점의 오른쪽에 상신리 선돌이 서 있다. 석재는 화강암이며, 규모는 높이 245㎝, 하단부 너비 63㎝, 상단부 너비 24㎝, 두께 35㎝로 위쪽이 뾰족한 첨형에...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학문 연구와 선현제향(先賢祭享)을 위하여 설립된 조선시대 교육 기관. 서원은 주로 조선 중기 이후에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 운영 기구이다. 서원의 명칭은 당(唐)나라 현종 때 서적 편수처이던 여정전서원(麗正殿書院)·집현전서원에서 유래하였고 제도로 정해진 것은 송(宋)나라에 들어와서이다. 특히 주자가 도학연마의 도...
-
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조선시대 절 터. 공주시 옥룡동과 소학동에 걸쳐 있는 해발 314m의 월성산 동쪽 기슭에 있다. 소학리 사지 내에는 조선시대의 기와편과 함께 사찰의 건축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많이 산포되어 있으며, 사역(寺域) 중앙부에는 남북으로 축대석, 또는 담장으로 보이는 석축이 있다. 이들 유구 및 지형으로 미루어...
-
충청남도 장기면 송문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절 터. 1974년 백제시대의 금동관음보살입상이 출토되었던 지역이다. 주변에서 고식(古式) 기와편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들 기와편 중에는 불에 탄 흔적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사찰이 화재를 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쪽으로 야산이 중첩적으로 전개되고 남쪽으로 넓은 농경지가 전개되는 지역으로, 앞면에 대교천이 흐르고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단종의 영혼과 세조에게 항거한 충신 열사의 혼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사우. 공주에서 대전 방면으로 32번 도로를 따라가면 16㎞ 거리에 박정자 삼거리가 있다. 여기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약 4㎞를 가면 동학사가 있는데, 숙모전은 동학사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숙모전은 억울하게 죽은 단종과 사육신, 금...
-
충청남도 공주시 상왕3동에 있는 성암(醒菴) 이철영(李喆榮)[1867~1919]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사우. 숭의사는 초려 이유태 선생의 9세손이었던 이철영의 항일 행적과 덕행을 기리고, 제향하기 위해 세워진 사우이다. 숭의사의 건립이 처음으로 발의된 것은 1968년 3월로, 당시 공주향교의 전교 정인상 등 공주 유림 51명이 각 향교와 서원에 통문을 돌리고...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신영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 터. 사곡면 신영리 하안영마을에서 서남쪽으로 약 200m 지점인 4부 능선상의 완만한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면적은 약 990㎡이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사역(寺域) 내에는 당시의 구조물로 보이는 축대 및 우물 자리가 남아 있고, 주위에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초에 이르는 기와편 및 자기편들이 산재...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오층석탑. 탑은 고대 인도 산스크리트어인 스투파(Stupa)를 한자로 음역하면서 솔도파(率堵波), 솔탑파(率塔婆)라 하다가 탑파(塔婆), 탑이라는 줄임말로 부르게 되었다. 스투파의 원래 뜻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묘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사원의 중심에 탑을 하나 세워 불사리를 봉안하였으나 나중에는 탑을 두...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평산(平山).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19세손으로 영의정에 증직된 신화국(申華國)과 첨정 벼슬을 지낸 윤양정(尹讓貞)의 딸 파평윤씨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또한 충주전투로 유명한 충장공(忠莊公) 신립(申砬)[1546~1592]이 셋째 형이며, 둘째 형 신급은 피난 중 왜군을 만난 어머니가 벼랑에서 투신하자 그 뒤를 따라 뛰어내려 모친을...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신흥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 터. 이인면 신흥리 안넌축골 건지산 북향 계곡 내에 있다. 사역(寺域) 내에서는 1구의 석불이 남아 있을 뿐 사찰과 관련된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사역 내에서는 많은 기와편이 출토되고 있어 사찰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기와편은 청해파문이 시문된 회청색의 경질와편이 대부분이고, 부분적으로...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신흥리 안너추골에 있는 거석 기념물. 신흥리 선돌은 신흥리 입구의 삼거리에서 안너추골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15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는 도로의 오른쪽 논둑에 위치한다. 공주시에서 남서 방향으로 7.6㎞ 정도 떨어져 있다. 안너추골은 남쪽·서쪽·북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동쪽만이 들로 연결되는 자루 형태를 하고 있는 지역으로 매우 아늑한...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쌍대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 터. 약 1,652㎡ 규모로 추정되는 사역(寺域)에서 발견된 유물로는 기와편과 더불어 약간의 석재가 있다. 석재는 장대석으로 비교적 정제된 것으로 현재 마을 입구의 장승석에 사용되고 있다. 기와는 청해파문이 시문된 조선시대의 일반적 기와편들이다. 쌍대리 사지는 수습 유물을 통해 조선시대에 운영된 사찰이 있었던...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이괄의 난 당시 인조는 공주로 파천하여 공산성 내에 머물게 되었다. 당시 인조가 머물던 곳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이괄의 난이 평정되자 이 소식을 들은 인조가 기뻐하며 자신이 머물고 있던 쌍수에 정3품의 품계를 하사하셨다. 이 유지를 기념하기 위해 관찰사 이수항이 1734년(영조 10년)에...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안영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 터. 탄천면 안영리의 서남쪽에 있는 탑산골 계곡에 있다. 사역(寺域)의 중앙 부분에는 자연석을 포개어 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 석축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불탑(佛塔)이라 부르며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지명과 관련하여 볼 때 탑지로 추정된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남아 있던 탑이 외부로 반출되었고, 마...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연평부원군 이귀의 신도비. 이귀[1557~1633]는 연안이씨로,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모집하였고, 양곡을 거두어 개성으로 운반하여 서울 수복전에 공로를 세웠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623년(광해군 15)에는 김류(金瑬), 신경진(申景禛) 등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영규대사의 임진왜란 당시 행적을 기리는 비. 영규대사 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인들의 침략과 약탈을 참지 못하고 승병장(僧兵將)이 되어 승려 수백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영규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騎虛)이고, 속성은 박씨이며, 본관은 밀양으로 전해지고 있다. 본래 휴정대사의 수제...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말기의 대방 건축. 조선 후기의 사찰에서는 강당과 대중방을 겸하는 건축물이 나타난다. 특히 한양 근교의 사찰에서 많이 보이는 건축 형태인데, 이를 대방 건축이라 한다. 건물 가운데 불단을 두고 법회와 강론, 염불 등을 행하기도 하는 커다란 승방 기능을 하기도 한다. 대방에 붙여 작은 방을 두거나 근처에 요사채를 두기도 한다. 따...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말기의 법당. 공산성 북쪽에 위치한 영은사의 정면 중심에 있다. 사찰 전체가 북향을 하고 있어 대웅전 역시 북향이다. 영은사는 조선 전기인 1458년(세조 4)에 처음 창간되었다고 하나 사찰의 연혁과 관련된 자세한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영은사에는 대웅전을 대신하여 원통전이 있으나 이 건물은 조선 말기...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아버지는 오한영(吳漢英)이고, 어머니는 공산이씨이다. 평소 효성이 남달라 부모 섬기기를 지성으로 하였다. 병든 어머니를 위해 매일 어머니의 인분을 맛보아 병세를 확인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어머니에게 먹여 여러 날 목숨을 연장시켰다. 1782년(정조 6) 뛰어난 효행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 터. 사역(寺域)에 해당되는 대지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윗단은 면적이 약 661㎡이며,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편이 많이 남아 있다. 사역의 아랫단은 평지를 이루고 있는데, 연고 없는 무덤들이 있다. 옥성리 사지는 사역 내로 추정되는 범위에서 확인된 기와편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소규모의 사찰이 있...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절 터. 의당면 요룡리에서 두만리로 넘어가는 요룡리 오룡동마을과 동쪽으로 인접한 산막골 계곡 상단부에 있다. 사역(寺域)으로 추정되는 범위는 약 331㎡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곳은 절 터로 전해지고 있지만 특별한 유구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사역 내에서 소수의 백자편이 확인되었다. 요룡리 사...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가마 터. 요지(窯址)는 토기·질그릇·오지그릇·도자기·기와·벽돌·숯 따위를 구워내는 시설을 뜻한다. 공주 지역에도 이와 같은 요지 유적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백제의 왕도였던 공주에서는 왕실을 비롯한 민간인들이 사용하는 그릇과 기와 등을 다량으로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령왕릉은 구운 벽돌을 이용해 축조...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우공로의 무덤 앞에 세운 비석. 우공로(禹恭老)는 본관이 단양으로 공주의 토착 성씨이다. 장자 우현손은 충청병마절도사를, 차남 우석손은 재령군수를, 삼남 우종손은 안주판관을 각각 역임하였다. 이렇게 단양우씨는 조선 말기에 많은 인물을 배출한 사족 집안이다. 우공로 묘비는 단양우씨의 후손들이 선조인 우공로의 행적을...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있는 집성촌. 1920년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우성면의 반촌리·동곡리·목동리·귀산리·내산리에서는 만경노씨, 상서리·방문리에서는 함평오씨, 방흥리·신웅리에서는 보성오씨, 옥성리·대성리·봉현리에서는 김해김씨, 보흥리·옥성리에서는 단양이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1. 만경노씨 『만경노씨족보』에 의하면 만경노씨의 시조는 고려시...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충현서원 입구에 있는 송시열의 추향기가 적혀 있는 비석.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자리한 충현서원의 입구 정면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중 정면 좌측에 있는 것이 우암송선생추향기비이다. 이 비에는 충현서원에 주자(朱子)와 이존오(李存吾), 이목(李穆), 성제원(成悌元), 김장생(金長生),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 터. 사곡면 운암리 상원사계곡을 형성하는 산의 칠부 능선에 있다. 운암리 상원사지는 3단의 축대석을 쌓아 조성되어 있는데, 전체 면적은 약 991㎡에 불과하다. 사역(寺域) 내에는 2동의 암자형 신축 건물이 있으며, 뒤편으로 약 30m의 거리를 두고 6기의 부도가 안치되어 있다. 수습되는 유물은 기와...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절 터. 공주시 웅진동 오약골 금강변 곰나루 부근의 낮은 구릉상에 있다. 금강이 북에서 남으로 휘어 돌아가면서 남쪽으로 시야가 트이는 것으로 보아 남향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웅진동 사지는 탑골이라 불리며, 1930년대만 해도 석탑이 있었다고 한다. 웅진동 사지의 남쪽으로 약 50m의 거리를 두고 큰샘이라...
-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월성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봉수대. 월성산 봉수대는 논산 노성산에서 보내는 봉수를 받아 정안면 북계리 고등산 봉수대로 보내고 있다. 월성산 봉수대의 석축은 남북 직경 33m, 동서 직경 13m로, 남북이 긴 타원형의 형태이며, 둘레는 80m에 이른다. 또한 석축의 남쪽에는 봉수대로 출입하기 위한 문지가 남아 있고, 북쪽으로는 건...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장. 본관은 풍천.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이다. 아버지는 임수성(林守成)이다. 1559년(명종 14)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信黙)의 제자가 되었으며, 3년 뒤 승과에 합격하여 많은 유생들과 교유하였다. 1575년(선조 8)에는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휴정을 찾아가서...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아버지는 윤수(尹脩)이며,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숙부 윤건(尹建)에게 양자로 입계하였다. 부인은 동래정씨(東萊鄭氏)로 공주목사(公州牧使)를 역임한 정유순(鄭惟醇)의 딸이다. 칠원윤씨는 본래 정산(定山)[현 충청남도 청양군의 옛 지명]에서 대대로 세거하고 있었다. 그 후 정확한 사연이나 시기는 알...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분(伯奮), 호는 용서(龍西)이다. 아버지는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을 역임한 윤전(尹烇)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윤효지(尹曉之)의 딸이다. 윤원거는 1635년(인조 13)에는 성균관 재생으로 들어갔으며, 이때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묘종사운동에 참여하여 그...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윤원거의 묘. 공주시 계룡면소재지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6㎞를 가다 보면 유평리 계룡초등학교가 나온다. 계룡초등학교를 지나 논산 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50m를 가면 영규대사 묘 입구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300m 들어가면 유평리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파평윤씨 묘소 중 가...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곡리에 있는 거석 기념물. 이곡리 선돌은 공주시에서 남서 방향으로 10.8㎞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곡리에 위치한다. 이인면소재지에서 공주-부여 간 국도 40호선을 따라 약 1㎞ 남짓 지나면 오른쪽으로 이곡리로 들어가는 소로가 나 있다. 이 길은 이인에서 금강으로 넘어가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다. 이 소로를 따라 2㎞ 정도 더 들어가면 도...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 전주(全州). 덕천군(德泉君)의 13대손이며, 아버지는 이면달(李勉達)[1793~1877]이며, 어머니는 보성오씨(寶城吳氏)로 오종헌(吳宗憲)의 딸이다. 공주 지역의 전주이씨들은 덕천군의 후손들로 덕천군의 손자인 상산군(商山君)의 장남 이요년(李堯年)의 아들인 진주목사 이몽경(李夢慶)[1538~1624]부터였다. 원래 이들은 양주 지역에...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평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이덕사와 이태연의 묘비. 이덕사와 이태연은 한산이씨 집안으로 부자간이다. 이덕사의 묘비는 1666년(현종 7년)에, 이태연의 묘비는 1725년(영조 1년)에 각각 세워졌는데, 특히 이덕사는 우암 송시열의 장인으로, 사위인 송시열이 직접 찬서(撰書)하였고, 이태연 묘비는 권상하(權尙夏)가 찬서(撰書)하였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이목과 아들인 이세장과 관련된 유적. 이목(李穆)[1471~1498]은 반포면 충현서원에도 제향된 인물로 조선 전기 호서의 사림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옹(仲雍), 호는 한재(寒齋),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19세로 진사에 합격하였으며, 1495년 25세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탄금(彈琴), 호는 사포(沙浦)이다. 성호 이익(李瀷)과 『택리지(擇里志)』를 저술한 이중환(李重煥)을 배출한 여주이씨 집안의 종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상홍(李尙弘)이다. 이상홍은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사위이다. 이지천은 1598년(선조 31) 형인 풍곡(楓谷) 이지화(李知和)[1573~16...
-
고려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 낙향하여 살던 충신.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1342년(충혜왕 복위3)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임숙(林淑), 어머니는 유씨(劉氏)이다. 부인은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최유(崔濡)의 딸로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맏이는 임모(林摹)로 수사(水使), 둘째는 임목(林穆)으로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 셋째는 임서(林叙)로 충의교위좌군사직(忠毅...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문신. 19세기 한말 대표적인 성리학자로서 충청남도 연기·공주 일대에서 크게 활약한 임헌회(任憲晦)[1811~1876]는 많은 관직들을 사양하고 성리학 특히 주기론(主氣論)을 주장한 인물이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며, 자신의 문하에 간재(艮齋) 전우(田愚) 등이 있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에 있었던 집성촌. 부안임씨가 연기와 공주 일원에 뿌리를 내린 시기는 고려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후기에 공조전서로 봉직하던 임난수가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맞이하여 신하 된 도리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충절을 지키기 위해 낙향한 곳이다. 당시 임난수는 제천리의 이웃 마을인 연기군 남면 양화리에 터를 잡았고 이후 현재까지 양화리...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세거 성씨. 정안면 석송리에 가장 먼저 정착한 성씨는 전주이씨라고 한다. 처음 마을에 입향한 사람은 무림군의 후손인 이영춘(李營春)으로, 평안도 벽동군수를 지낸 인물이다. 정확한 입향 사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영춘의 묘는 의당면 중흥리에 있으며, 다른 후손들도 대부분 공주 지역에 묘가 있다. 정안면 석송리에 정...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언평(彦平), 호는 포신(逋臣) 또는 포옹(逋翁)이다. 생부는 홍주목사 정효안(鄭孝安)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이다. 우의정을 지낸 종숙(從叔) 정분이 후사 없이 죽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정효안이 자신의 장남인 정지산을 정분의 계자로 입양시켰다. 어려서부터 학문이 깊어 이름을 떨치더니 1445년(세종 27) 사마시에...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정치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 터. 사역(寺域)은 약 5,289㎡에 이르는 비교적 넓은 지역으로, 2단의 대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하단 사이에는 약 4m 높이의 축석이 있고, 상단은 약 661㎡의 평탄면으로 금당 터로 추정된다. 유물로는 각종 석재와 기와편이 발견되었다. 석재는 건물에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장대석과 노반석 및 기단 갑석(甲石) 등...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의 서문 입구에 모아 둔 공적비 중의 하나. 제민천 영세비는 공산성 서문 입구에 있는 43개의 비석들 가운데 하나이다. 제민천 영세비는 공주의 제민천과 제민천에 놓였던 교량의 중수에 대한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별하기 때문에 그 역사적인 의의를 지닌다. 제민천은 금학동의 남쪽 지막골에서 발원하여 공주시내를 관통하여...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평양(平壤). 아호는 윤(胤), 자는 거경(巨卿)·종견(從犬), 호는 송산(松山)이다. 할아버지는 시중(侍中) 조인규(趙仁規)이며,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조덕유(趙德裕)이다. 어머니는 오의(吳懿)의 딸이다.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조준(趙浚)의 동생이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여러 절의 주지를 역임하다가 30세가 넘어 환속...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보흥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인 송산(松山) 조견(趙狷)을 모신 사당. 공주시에서 청양으로 가는 국도 36호선을 따라 15분 정도 달리다 보면 우성면 보흥리가 나온다. 보흥리 보적골 경덕산업 옆에 있다. 원래 조견을 제향한 사당은 정절사(旌節祠)와 송산사(松山祠)로서, 양주 지역에 있었으나, 후손들이 공주로 이거하면서 사당을 함께 이전한...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특정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이 가진 신앙 체계. 충청남도 공주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도 또는 충청남도의 중심지로서 문화나 행정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지녀왔다. 따라서 종교적으로도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높은 종교적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다. 특...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하봉리 충렬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주유씨 집안의 효자 및 열녀 세 사람의 정려. 진주유씨의 삼효열 정려는 1722년(경종 2)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죽은 유취장(柳就章)의 아들 유선기, 유취장의 처 전주이씨, 유선기의 처 경주이씨 등 3인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해 명정이 내려졌다. 공주시청에서 웅진로를 타고 약 1.4㎞ 정도...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신흥암 뒤에 있는 자연 석탑. 자연스럽게 생긴 높은 바위가 마치 석탑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불교적인 전설과 결합되면서 천진보탑이라는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 천집보탑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한 후 인도 아소카 왕이 구시나가라국에 있는 사리탑에서 부처의 사리 8곡(斛) 4두(斗)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를 시방 세계에...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 터. 계룡산 비로봉 아래의 산중턱 길 옆 남매탑이라 부르는 쌍석탑 주변에 위치한다. 현재 사역(寺域)으로 추정되는 곳은 남매탑(청량사지 칠층석탑, 청량사지 오층석탑)과 그 앞쪽의 빈터, 그리고 탑 오른편 지역인데, 남매탑의 앞쪽에 금당 터가, 석탑의 앞에서 거북이 모양의 주초석 20여 매가 수습되었고, 탑의 옆...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하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형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사우. 공주시에서 장기면 방향으로 국도 36호선을 따라 30여 분 달리다 보면 장기면 하봉리에 도착하게 된다. 충렬사는 하봉리에 들어서면 하봉저수지를 지나 마을회관 뒤 구릉에 있다. 유형 장군의 후손들은 충민공 유진동(柳辰仝), 충경공 유형(柳珩), 금사 유충걸(柳忠傑...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김해(金澥)와 아들 김경원(金慶遠)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2.5㎞ 정도 가면 연미산이 있으며, 이 산을 지나면 도로 오른쪽으로 우성면 신웅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다시 2.5㎞ 정도 더 가면 현재는 폐교된 청산초등학교가 나오는데, 학교 직전 다리에서 왼...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노숙의 정려. 공주에서 천안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2㎞ 정도 가다가 목천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해서 길을 따라 3㎞ 정도 더 가면 우성면 동곡리가 나온다. 동곡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동곡리 조왕골이 있는데, 충신 노숙 정려는 이 마을 가운데에 있다. 구체적인 명정 과정이나 중심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충신 신할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백제큰다리를 건너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약 19㎞를 가다 보면 신풍면과 사곡면의 경계에 들어서게 된다. 경계를 지나 다시 1.5㎞ 더 가면 냉정리와 영정리의 경계가 나오고,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서 예산 쪽으로 100m정도 더 가면 도로 왼쪽으로 신할의 사적비가 보...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송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유지걸의 정려. 충신 유지걸 정려는 1618년(광해군 10) 명나라의 요동 지방을 공격한 후금을 정벌하고자 조선의 요동 정벌군으로 형인 유효걸 대신 종군하여 끝까지 후금군에 대항하다 죽은 진주유씨(晉州柳氏) 유지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796년(정조 20)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공주시에서...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및 효자 정분·정지산의 정려. 공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국도 32호선을 타고 14㎞ 정도 가다 보면 사곡면소재지가 나온다. 호계리는 면소재지에서 지방도 629번을 따라 북쪽으로 0.5㎞ 떨어진 곳에 있다. 1746년(영조 22) 정분이 복관(復官)된 이후 1804년(순조 4)에 명정을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 사송정에 있는 여말선초 학자 이명성과 이명덕의 학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 이명성(李明誠)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끝까지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절개를 지킨 고려 유신인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이명덕(李明德)은 여말선초 문신으로 예문춘추관, 좌부대언 등을 지냈고 세종이 즉위하자 이조참판, 병조참판 등을 역임...
-
1603년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된 충청도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관청. 충청감영은 공주 지역의 유리한 지리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1603년(선조 36)에 공주 지역에 설치되어, 1932년 대전 지역으로 충청남도 도청이 이전될 때까지 있었다. 현존하는 많은 조선 후기의 문서들은 조선시대 충청감영으로의 공주 지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유적에 대한 훼손 탓에 본래의 모습...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충헌공 윤전(尹烇)의 사우. 공주시 계룡면소재지인 유평리의 계룡초등학교를 지나 논산 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50m쯤 가면 영규대사의 묘소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충헌공 윤전 사우는 그 길을 따라 300여m 정도 들어가면 유평리 중앙에 있다. 충헌공 윤전 사우는 인조 때 세자시강원 필선을 지낸...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충청도 최초로 세워진 사액 서원. 공주시청에서 대전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8㎞ 달리면 공암이 나온다. 대략 27분여의 시간이 소요되며, 충현서원은 마을의 중앙에 있다. 충현서원은 고청 서기에 의해 건립되었다. 서기는 출신적인 한계를 딛고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인물로, 노년기에 이곳에 정착...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충현서원에 있는 서원 사적비. 충현서원 사적비는 충현서원(일명 공암서원) 안에 있는 서원 사적비로, 1712년(숙종 38) 연천의 임장서원에서 주자의 화상을 모사해와 신판 뒤에 봉안한 과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임진왜란 때 충현서원이 소실되는 과정 속에서 주자 화상 또한 불타 없어졌다. 이후 중건되었으나 주자의 화상 대신...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충현서원의 유적. 1581년(선조 14) 학자 서기(徐起)[1523~1591]가 주자(朱子)를 추모하기 위해 ‘박약재’라는 이름으로 처음 서원을 세웠다. 이후 이존오(李存吾)·성제원(成悌元)·이목(李穆)의 위패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복원하고, 1624년(인조 2) 조헌(趙憲)을 추가 배...
-
공주시 장기면 대교리에 있는 정려로 김종서의 충절과 김승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 공주시 장기면 대교리에 있는 이 정려는 김종서(金宗瑞)[1390~1453]의 충절과 아들 김승규(金承珪)[?~1453]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04년(순조 4)과 1747년(영조 23)에 각각 명정을 받아 건립된 것으로 김종서 장군 묘역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여러 층으로 또는 높고 뾰족하게 세운 건축물. 탑은 높이가 나비나 길이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높은 건조물을 말한다. 주로 감시나 방어 등의 군사적 목적, 천상(天上)세계에 대한 희구를 나타내는 종교적 목적, 권력이나 위엄의 상징, 기념·전망·관측·통신, 종탑이나 시계탑 등을 목적으로 축조되었으며 나무·돌·벽돌·콘크리트·철강 등 다양한 재료가 축조...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탑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절 터. 해발 355m의 천방산을 주산으로 하여 정남향으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역(寺域)으로 보이는 주변의 논과 밭에서 약간의 기와편이 산재되어 있지만 초석 등 건물과 관련 있는 유구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현재 논으로 조성되어 있는 곳에서 탑재석(塔材石) 2매가 발견되는데, 2매 중 1매는 양쪽 우주(隅柱)를...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 터. 계룡면 향지리의 동북향에 있는 형지산의 서남 기슭에 있다. 약 1,322㎡의 평지가 사역(寺域)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유구는 없으며, 약간의 기와편이 산포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이전의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아울러 곡간에 형성된 사역 내에 있는 작은 하천은 축석이 이루어져 있고 곳곳에 돌무더기가...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성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효자 황춘억의 정려. 공주에서 부여로 가는 국도 40호선을 따라 17㎞ 정도 가다 보면 탄천면소재지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부여 방면으로 500m 정도 더 가면 성리에 도착하게 되는데, 도로변 왼쪽에 효자 황춘억 정려가 있다. 1742년(영조 18) 효행으로 통선랑사헌부지평(通善郞司憲府持平)에 증직된 후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