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
-
조선 전기 남효온이 구미 지역의 금오산 등지를 지나며 지은 한시. 남효온은 조선시대의 생육신으로 자는 백공(伯恭), 호는 최락당(最樂堂)·추강(秋江)·행우(杏雨)·벽사(碧沙)이다. 김종직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김굉필·정여창·김시습 등과 가까이 지냈다. 세조에 의하여 물가에 이장된 단종의 생모 현덕 왕후의 소릉(昭陵)을 복위하기 위해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실의에 빠져 각지를...
-
1510년(중종 5) 이행이 구미 지역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 이행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다.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창택어수(滄澤漁水)·청학도인(靑鶴道人)이다. 갑자사화 때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유배되었으나, 기묘사화 후 입조(入朝)하여 대제학,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지냈다. 1634년 간행된 이행의 문집 『용재집(容齋集)』 중 권7에 1510년 이행이...
-
1852년(철종 3) 장복추가 구미 지역의 금오산을 유람한 후 지은 유람기. 장복추(張福樞, 1815~1900)는 조선 후기의 예학자이자 당시 최고의 학단을 이끈 교육자이다. 자는 경하(景遐), 호는 사미헌(四未軒)이다. 장복추는 경상북도 예천 지역에서 출생하였지만 본관이 인동으로 경상북도 구미 지역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금오산유록」은 장복추가 1852년 8월 탑동(塔洞)에...
-
1602년(선조 35) 노경임이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의 냉산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 노경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홍중(弘仲), 호는 경암(敬菴)이다. 1591년(선조 24)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교리(校理)·지평(持平)을 지냈다. 노경임은 정인홍(鄭仁弘, 1535~1623)을 간사한 인물이라고 장현광(張顯光, 1554~1637)에게 보고하였는데, 후에...
-
조선 말 곽종석이 구미 지역 출신인 길재를 추모하여 지은 한시.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은 구한말의 학자로 자는 명원(鳴遠), 호는 면우(俛宇)이다. 저서에 『면우선생문집(俛宇先生文集)』이 있다. 「야은굴」은 『면우선생문집』제3권에 전하는 한시로, 통일신라 말기의 승려 도선(道詵, 827~898)이 참선한 후 득도했다는 ‘대혈(大穴)’이라 불리는 곳을 배경으로 하여 야은...
-
조선 전기 권우가 구미 지역 출신인 길재의 유상(遺像)에 붙인 찬(贊). 찬(贊)이란 원래는 신명(神明)에게 바치는 글이었지만 점차 변하여 인물·서화(書畵)·문장 등에 대한 잡찬(雜贊)과 남의 죽음을 애도하고 고인의 덕을 찬양하는 글인 애찬(哀贊), 그리고 『사기(史記)』·『한서(漢書)』 등을 비롯한 역대 사서의 책 끝에 그 책에 수록된 인물에 대한 포폄(褒貶)을 적은 사찬(史贊)...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과 해평면에서 채미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미정은 1986년 10월 15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26일 명승 제52호로 변경되었다. 고려 후기의 충신이자 학자인 길재(1353~1419)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 채미정을 건립하였다. 길재의 호는 야은(冶隱)·금오산인(金鰲山人)이다....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 정자 이름은 길재가 고려가 망한 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은거 생활을 한 것을 중국의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이름을 지은 것이다. 구미 채미정 뒤에는 숙종의 어필 오언절구(五言絶句)가 보존되어 있는 경모각과 유허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정면 3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