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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장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529
한자 仁同張氏
영어의미역 Indong Ja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
집필자 김용만

[정의]

장계장금용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시 세거 성씨.

[연원]

인동장씨(仁同張氏) 직제학계는 고려의 개국원훈(開國元勳)인 태사공(太師公) 장정필(張貞弼)을 도시조(都始祖)로 하며, 장계(張桂)를 시조로 한다. 인동장씨 상장군계는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한다. 인동장씨는 이 두 갈래로 나뉜다.

[입향경위]

직제학계의 시조 장계는 장정필의 14세손이며, 1305년(충렬왕 31)에 국학진사(國學進士) 권지도평의록사(權知都評議錄事) 동진사(同進士)에 등과하였고,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거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으며,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지냈고 옥산군에 봉해졌다. 인동현의 남쪽 발영전(拔英田)에 터를 잡았다. 그리하여 인동을 본관으로 정하였다. 옥산(玉山)은 인동의 별호이다. 장계의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성곡동 발영전에 있다. 2세손 장보(張俌), 3세손 장용서(張龍瑞), 6세손 장자원(張自遠)으로 이어진다.

상장군계 시조 장금용은 고려조에서 삼중대광신호위장군(三重大匡神虎衛將軍)을 지냈다. 후손들이 옥산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옥산으로 하여 천년을 이어온 오랜 씨족이다. 조선 말기 옥산이 인동으로 개칭되자 관향을 인동으로 고쳤으나 그대로 옥산을 본관으로 하는 후손도 있다. 장금용의 묘소는 구미시 인의동에 있다. 14세손 장보(張俌)의 자손들은 인동·성주 등지에 살다가 18세 이후로는 예산·진주·하동·원주·상주·무안·은진·공주·서천 등지에 살고 있다. 고려조의 인물로는 장선(張善)·장안세(張安世)·장중양(張仲陽) 등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정승 1명, 왕비 1명, 문과급제자 55명을 배출하였다.

[현황]

인동장씨의 세거지는 여러 곳이다.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남산마을) 일대는 장여헌의 출생지이자 거주지로 그의 후손들인 남산파가 세거했다. 전성기에 100여 호였으나 진평·임동 구획 정리 사업으로 분산되어 지금은 20여 호가 거주하고 있다. 구미시 오태동과 칠곡군 석적면 중리에도 장여헌의 후손 일부가 살고 있다. 오태동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이 태어난 곳이며, 그의 조부와 아버지는 관찰사와 판서를 지냈다. 구미시 황상동에는 죽정(竹亭) 장잠(張潛)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장** 시조 장정필 어른은 인동 장 씨 도시조임은 명백하고 자손이 금룡계니 직제학공 장계니 다투지 도말고 믿어 바라옵컨데 두어른 모두장 장필 할아버지 후손이시니 믿고 따릅시다 201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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