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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194
한자 劉福燮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5년 4월 5일연표보기 - 유복섭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5일 - 유복섭 피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유복섭 4월 30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6월 언도받고 상고
활동 시기/일시 1919년 6월 12일 - 유복섭 고등 법원에서 상고 기각으로 투옥
몰년 시기/일시 1949년 8월 31일연표보기 - 유복섭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 - 유복섭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유복섭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활동지 유복섭 활동지 - 전라북도 군산시
성격 독립 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1919년 3월 5일 유복섭은 전라북도 옥구[현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영명 학교에 재학중 학생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군산 장날인 3월 6일을 기해 독립 만세 운동을 펴기로 계획하였으나 사전에일본 경찰에 발각되었다. 유복섭은 만세 운동을 계획한 동료들이 연행되자 학생 예수교 신자 부근 주민 등 오백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군산 시내를 시위 행진하고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등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

[활동 사항]

유복섭은 1919년 영명 학교 재학 당시 학생 대표중의 한 사람으로서 영명 학교 교사인 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박연세(朴淵世) 등과 함께 3월 6일 군산 장날을 기하여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을 벌이기로 협의하였다. 이들은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만드는 등 만세 시위를 준비를 하다가 일본 경찰이 사전에 알게 되면서 동지들이 연행되었다. 이에 만세운동을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3월 5일 결행하였다. 기독교 학생 회원들과 부근 주민 등 오백여 명을 규합, 군산 시내로 진출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고 군산 경찰서 앞에서 구속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3월 31일 광주 지방 법원 군산 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공소하여 4월 30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다시 상고하였으나 6월 12일 고등 법원에서는 기각되어 투옥되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3권(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1)
  • 국가 보훈처 공훈 전자 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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