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5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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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基朝 |
영어음역 | Yi Gijo |
이칭/별칭 | 도원(道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윤모 |
[정의]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도원(道源). 오늘날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이기조(李基朝)[1803~?]는 옛 구로 지역인 부평부의 부사를 지내면서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별군관으로 프랑스 함대와 교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1866년(고종 3) 중국 천진에 주둔하던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면서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조선 정부에서는 풍천부사로 있던 이기조에게 광성진을 수비하게 한 것이다. 이때 이기조는 덕적포를 노략질하던 프랑스 군함 4척을 격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삼화부사를 거쳐 1870년(고종 7) 12월 부평부사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5월 일본에 주둔하던 미국 함대가 통상을 요구하며 또다시 강화도를 침략하는 신미양요가 일어났을 때 부평부사로 재임하면서 조선 정부의 훈령을 받고 침략군의 총 책임자인 로저스(J. Rodgers)를 만나 직접 교섭에 나섰다. 이때 미국 함대의 침공을 비난하며 문책하는 항의문을 발송하는 활동을 벌이는 등 미국 함대를 격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