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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1083
한자 忠臣
영어음역 Chungsin
영어의미역 Loyalist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집필자 변경원

[정의]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 서울특별시 구로 지역과 관련된 충신.

[개설]

충신은 나라에 이로운 여섯 유형의 신하를 의미하는 육정신(六正臣)[성신(聖臣), 양신(良臣), 충신(忠臣), 지신(智臣), 정신(貞臣), 직신(直臣)]의 하나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를 이르는 말이다. 전통 시대 당시 현 서울특별시 구로 일원도 충과 효를 으뜸으로 삼아 국가 위기 때에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충절을 지킨 충신의 표상으로 알려진 인물들이나 유적들과 관련이 많은 지역이며 그 구체적인 현황은 다음과 같다.

[내용]

전통 시대, 특히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당시 현 서울특별시 구로 지역과 관련된 충신으로는 노준경, 노숭, 안경공, 여계, 유순정, 권협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노준경은 고려 말의 충신이자 문신으로서 노숭의 아버지이다. 1343년 원나라 사신 타적(朶赤)이 충혜왕을 원나라로 압송하려고 하자, 김영후와 함께 왕을 호위하다가 살해되었다.

노숭(盧嵩/盧崇)[1337~1414]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으로 고려 공민왕 때 청요직(淸要職)을 거쳤으며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한양윤(漢陽尹)으로서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攻臣)에 책록되어 의정부참찬, 검교우의정 등을 지냈다. 청렴성과 탁월한 재주를 인정받아 태조에게 발탁되었으며 1395년(태조 4) 개성유후(開城留後)를 거쳐 1397년(태조 6) 경기좌도관찰사가 되었다. 노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예순이 넘는 나이에도 아침저녁으로 노모의 진지상을 직접 들고 들어갔으며 노모가 94세로 세상을 떠나자 매우 애통해 하며 울부짖다가 쓰러지기도 하였다.

안경공(安景恭)[1347~1421]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으로서 1365년(공민왕 14) 사마시에 급제한 뒤 1372년(공민왕 21) 산원을 거쳐 사헌부규정이 되고 1376년(우왕 2) 의영고부사로 문과에도 급제하였다. 1382년 경상도 안렴사로 있으면서 합주에서 사노들이 일으킨 난을 진압하였고, 1388년(우왕 14) 예조판서에 올라 불교를 배척하는 데 앞장섰다. 1392년 좌대언으로 조선 건국에 참여하여 중추원도승지에 제수되고 개국3등공신이 되었다. 현 구로구 개봉1동 백사리에 묘가 있다.

여계(呂稽)[?~1421]는 고려 말~조선 초 병조판서를 지낸 여칭(呂稱)[1351~1423]의 아들이자 조선 초의 문신으로 태종 때에 호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421년(세종 3)에 세상을 떠났으며 1428년(세종 10)에 현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동 산 6-3호 함양여씨 묘역에 묘소가 마련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하연(河演)[1376~1453]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대사헌으로서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업을 닦았으며, 1396년(태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면서 벼슬길에 올랐다. 1423년(세종 5) 대사헌으로서 불교의 7종파를 선(禪)·교(敎) 2종(宗), 36본산으로 통합하고 혁파된 사원의 토지와 노비는 국가로 환수시킬 것을 건의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1445년 좌찬성이었을 때 70세가 되어 궤장을 받았으며 이어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449년 영의정이 되었다. 현 서울특별시 구로구 천왕동 지역에 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유순정(柳順汀)[1459~1512]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업을 닦았으며 무예에도 능했다. 1506년(중종 즉위년) 박원종, 성희안과 함께 중종반정을 일으켜 정국공신 1등에 책봉되어 청천부원군에 봉해졌다. 1507년 이과 등이 견성군을 추대하려는 역모를 꾸미자, 이를 처리한 공으로 정난공신 1등에 다시 봉해졌다. 1510년(중종 5) 제포의 왜인이 변란을 일으키자 도체찰사가 되어 모든 사건을 총괄했으며, 다시 경상도도원수가 되어 삼포왜란을 평정하였다. 무덤은 현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동 안오류골에 있다.

권협(權悏)[1553~1618]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자 안동권씨 가운데 최초로 구로구 궁동에 정착한 인물로 무덤이 구로구 궁동 정선옹주 묘역 내에 있다.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춘추관의 관직을 거쳤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장령으로 있으면서 서울 사수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는 고급사(告急使)로 명나라에 건너가 병선과 군량을 원조 받는데 성공하고 돌아와서 호조참의에 올랐으며 이 공으로 선무공신 3등에 책봉되고 길창군에 봉해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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