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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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武珍都督古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노성태 |
[정의]
통일신라시대 전라남도 일대의 15개 군을 관할하던 무주의 치소인 무진주에 있던 성.
[개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확대된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전국을 9주로 나눌 때 전라남도 일대의 15개 군을 관할하는 무주(武州)의 치소(治所)는 무진주(武珍州)[현 광주광역시]였다. 따라서 무진주에는 주의 장관인 도독이 근무하는 성이 축조되었는데, 이것이 무진도독고성(武珍都督古城)이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무진도독고성이 기록되어 있는 문헌으로는 1454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비롯하여 1530년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798년의 『광주목지(光州牧誌)』, 1879년의 『광주읍지(光州邑誌)』 등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무진도독 때의 옛 토성은 둘레가 2,650보이다.”라고만 서술된 반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무진도독고성은 현[광산현]의 북쪽 5리에 있고, 흙으로 쌓았는데 둘레는 3만 2448척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현의 북쪽 5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위치를 알려 주는 것은 1682년의 『동여비고(東輿備攷)』와 1861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등의 지도이다. 『동여비고』는 십신사(十信寺)라는 절 왼편에, 『대동여지도』는 읍성 북쪽 냇가 왼편에 무진도독성을 표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무진도독성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적조」에는 “무진도독고성은 현의 북쪽 5리에 있다. 흙으로 쌓았는데 주위가 3만 2448척이다[武珍都督古城在縣北五里 土築周三萬二千四百四十八尺).”라고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