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271
한자 梁秀雅
영어공식명칭 Yang Sua
이칭/별칭 양지하,한국의 피카소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허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0년연표보기 - 양수아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9년 - 양수아 일본 가와바타화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40년 - 양수아 일본 도쿄 국옥화랑 '신창생파창립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40년 - 양수아 일본 도쿄 국옥화랑 '백어회전'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47~1955년 - 양수아 목포사범학교, 문태고등학교, 목포여자고등학교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48년 - 양수아 중국계 미국인 화가「동경문 초청전」에 강용운과 비구상 작품 찬조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48년 12월 - 양수아 국내 최초 추상화 작품 개인전
활동 시기/일시 1956년 - 양수아 광주사범학교 재직
몰년 시기/일시 1972년연표보기 - 양수아 사망
출생지 전라남도 보성군
학교|수학지 가와바타화학교 - 일본 도쿄 분쿄구
학교|수학지 국옥화랑 - 일본 도쿄 긴자
활동지 목포사범학교 - 전라남도 목포시
활동지 문태고등학교 - 전라남도 목포시 용당로 138[용당동 183]
활동지 목포여자고등학교 - 전라남도 목포시 청호로 34[대성동 40-1]
활동지 광주사범학교 - 전라남도 광주시
활동지 광주 미국공보원 - 전라남도 광주시
성격 화가|교사
성별
대표 경력 목포사범학교 교사|문태고등학교 교사|목포여자고등학교 교사|광주사범학교 교사

[정의]

일본 유학 중 서양화를 받아들이고 8.15광복 직후 귀국하여 전라남도 목포와 광주 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 추상화가.

[개설]

양수아(梁秀雅)[1920~1972]는 전라남도 광주시로 옮겨가기 전인 1947년부터 1955년까지 목포사범학교, 문태고등학교, 목포여자고등학교에 재직하며 창작 활동을 하였다. 6.25전쟁이 끝난 뒤 1953년에는 '양수아 양화연구소'를 개설하여 제1회 전시회를 여는 등 제자와 다수의 문하생을 양성하고 교육하였다. 특히 1940년대 말 실험적인 조형성을 보인 비정형의 드로잉 작품들은 1950년대 비정형 회화와의 연관성을 유추하게 한다.

8.15광복 전후 양수아 작품의 표현주의적 특성은 거친 붓질과 강렬한 색채 표현에서 비정형의 방식으로 변모한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1950년대부터 1972년 사망할 때까지 추상에 대한 탐색을 거친 뒤, 물질성과 신체의 제스처(gesture)가 배어나오는 비정형 회화를 본격적으로 추구함으로써 한국 앵포르멜(informel)의 선두주자로 평가받는다.

[활동 사항]

양수아는 12세였던 1931년 일본 시모노세끼[下關]로 건너가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일본 제국주의 아래 공립중학교를 거쳐 1939년에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를 졸업하였다. 당시 삽화가 미야모토 사부로[官本三郞] 문하에 들어갔던 양수아는 일본 필명으로 여러 잡지와 출판물에 삽화를 게재하였다. 가와바타화학교를 졸업한 1년 뒤인 1940년에는 도쿄[東京] 긴자[銀座] 국옥(菊屋)화랑에서 「신창생파창립전(新創生派創立展)」을 개최하였고, 다음 해에는 「백어회전(伯漁會展)」에도 참가하였다.

20대 청년기에 태평양 전쟁의 징용을 피해 중국 베이징과 만주로 이동하면서 근대 격동기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8.15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온 양수아는 1948년부터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같은 해 강용운과 함께 광주 미국공보원에서 열린 중국계 미국인 화가 「동경문(董景文) 초청전」에 비구상 작품을 찬조 출품하였다. 12월에는 한국 서양화가로서 추상화 작품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양수아의 개인전은 8.15광복 후 국내에 소개된 최초의 비구상 작품인 동시에 국내 첫 비구상 작품 전시회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1953년 '양수아 양화연구소'를 개설하였고, 1956년에는 전라남도 광주시로 이주하여 광주사범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양수아는 호남의 1세대 추상화가로서 가난과 소외, 격동기의 역사적 삶 속에서 앵포르멜 회화를 구현하였다. 1972년 사망한 뒤에도 그 영향력은 광주 화단의 제2세대로 구성된 추상화가 단체인 '에뽀크[Epoque]'의 활동으로 이어져 광주 현대미술의 지평을 확장시켰다.

[저술 및 작품]

1940년대 중반에 제작된 작품으로 「따진다·질투」, 「질투」, 「불만」 등이 있다. 1950년대 제작된 작품으로 「작품」, 「사랑」 등이 있다. 1960년대에는 「자화상」, 「태동」 등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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