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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유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690
한자 松海遺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집필자 박세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60년연표보기 - 『송해유집』 간행
성격 시문집
저자 노문규
권책 4권 1책
행자 12행 29자
규격 22.5×15.3㎝[반곽(半郭)]
어미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

[정의]

전라도 광주 지역 출신으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활동한 문인 노문규(盧汶奎)[1850~1935]의 시문집.

[개설]

『송해유집(松海遺集)』은 전라도 광주 일곡리(日谷里)에서 태어난 향촌 문인 노문규의 시와 문장을 모아 엮은 문집이다.

[저자]

노문규의 자는 응삼(應三), 호는 송해(松海)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850년(철종 1)에 전라도 광주 일곡리[현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의 조선 후기 명칭]에서 출생하였다. 편지로 간재(艮齋) 전우(田愚),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등과 교유를 나누었다. 향교의 유사를 여러 해 동안 맡아 수행하였고, 향약을 만들어서 관찰부주사에 올랐다. 그러나 나라의 세태가 기울어진 것에 크게 낙심하여 사직을 결심하였는데 오히려 영암군수를 맡기려 하자 고사하고 기어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7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1935년에 풍질(風疾)을 앓다가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는 노문규가 당시의 어지러운 세상을 비관하여 자신의 종적을 숨겨 지내던 송해당(松海堂)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1960년에 후학들이 시의 원문은 한문으로, 번역은 한글로 기록한 국역 형태로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문집은 석인본(石印本)으로 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에 반곽(半郭) 22.5×15.3㎝이며, 유계(有界)이다. 12행 29자의 주쌍행(註雙行)이며, 어미는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다.

[구성/내용]

『송해유집』은 4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권두에 1960년 고연주(高淵柱)가 쓴 서문이 있다. 1권에는 시 70여 수·부(賦) 3편·찬(贊) 1편, 2권에는 잡저(雜著) 14편, 3권에는 기(記) 5편, 서(序) 4편, 제문(祭文) 7편, 행장(行狀) 2편, 4권에는 부록과 부편(附編)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노문규는 전통 시대와 근대를 관통한 인물로, 그의 문집인 『송해유집』을 통해 역사적 대전환기에 대응하는 향촌 지식인의 사상과 문학 세계를 탐색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광주역사문화자원 스토리텔링(http://gjstory.or.kr)
  • 호남기록문화유산(http://www.memoryho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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