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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랑실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727
한자 滄浪實蹟
영어공식명칭 Changnangsiljeok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백지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57년연표보기 - 『창랑실적』 간행
소장처 고려대학교도서관 - 서울 성북구 고려대로22길 6-7[안암동5가 126-16]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소장처 전남대학교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33[용봉동 300]지도보기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490-8]
성격 시문집
저자 고경리
편자 고정진
간행자 고정진
권책 3권 1책
행자 10행 19자
규격 32.5×20.6㎝
어미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

[정의]

조선 중기의 학자 고경리의 시문집.

[저자]

고경리(高敬履)[1559~1609]의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척(而惕), 호는 창랑(滄浪)이다. 아버지는 진사 고계영(高季英)이며, 어머니는 양응기(梁應箕)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591년(선조 24)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광해군이 즉위한 후 집권한 대북세력(大北勢力)이 서인 학통을 공격하자 최영경(崔永慶)을 죽이고,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종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곤경에 빠져 있던 정철(鄭澈)과 성혼(成渾)을 두둔하는 상소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이 상소에서 선현으로 이름 높은 이언적(李彦迪)을 제외하였다는 이유로 대북세력에 의하여 상소는 불태워지고, 사림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종신금고에 처해졌다. 1676년(숙종 2) 광주(光州)에 건립된 운암사(雲巖祠)에 제향되었으며, 지평에 추증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창랑실적(滄浪實蹟)』은 1857년(철종 8)에 후손 고정진(高貞鎭)이 편집·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창랑실적』은 3권 1책의 목판본으로, 고려대학교도서관, 규장각, 장서각, 전남대학교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창랑실적』은 권1에 부(賦) 1편, 시 1수, 소(疏) 2편, 서(書) 5편, 잡저 2편, 박광일(朴光一)의 유고발문(遺稿跋文), 권2에 부록으로 만시 13수, 제문 4편, 행장·유사·묘표·묘지명·운암사봉안문(雲巖祠奉安文)·춘추향축문(春秋享祝文) 각 1편, 창랑정제영(滄浪亭題詠) 3편, 소사전말(疏事顚末) 6편, 증직사전말(贈職事顚末) 2편, 증직교지·분황고유문(焚黃告由文)·감회설(感懷說) 각 1편, 권3에 세계와 연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창랑실적』은 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고경리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당시의 정치 사회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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