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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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에 있는 강상현(姜尙鉉)의 처 성성순(成聖順)의 효행을 기리는 비. 일제 강점기에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에 거주하는 창녕 성씨 성성순은 16세에 강상현과 혼인하여 가난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 몸이 불편한 남편과 고령의 시할머니, 홀아비인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 효행을 현창하여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자, 성씨 부인의 시아버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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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에 있는 강상현(姜尙鉉)의 처 성성순(成聖順)의 효행을 기리는 비. 일제 강점기에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에 거주하는 창녕 성씨 성성순은 16세에 강상현과 혼인하여 가난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 몸이 불편한 남편과 고령의 시할머니, 홀아비인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 효행을 현창하여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자, 성씨 부인의 시아버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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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정원항의 문집. 정원항(鄭元恒)[1823~1905]의 자는 형칠(亨七), 호는 교재(嘐齋)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거주하였다. 1915년에 정원항의 외손 하영태(河泳台)가 유고를 모아 『교재집(嘐齋集)』을 간행하였다. 서문은 하겸진(河謙鎭)이 쓰고 발문(跋文)은 정규영(鄭奎榮)과 하영태가 썼다. 3권 1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이며, 표제(表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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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이일해의 문집. 이일해(李一海)[1905~1987]의 자는 여종(汝宗), 호는 굴천(屈川)이다. 하겸진(河謙鎭)의 문인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 거주하였다. 1988년에 이일해의 아들 이재(李材)가 부친의 글을 모아 『굴천집(屈川集)』을 간행하였다. 서문(序文)은 없고 발문(跋文)은 이재가 썼다. 4권 2책[상·하]의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이며,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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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하응로의 문집. 하응로(河應魯)[1848~1916]의 자는 학부(學夫), 호는 니곡(尼谷)이다. 성재(性齋) 허전(許傳)[1797~1886]의 문인이다. 1934년에 하응로의 손자 하우선(河禹善)이 조부가 남긴 글을 모아 『니곡집(尼谷集)』을 간행하였다. 서문은 김황(金榥)이 쓰고 발문은 하겸진(河謙鎭)이 썼다. 4권 2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이며, 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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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이교문이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에 있던 봉황대를 찾아가 읊은 한시. 「등봉황대(登鳳凰臺)」는 조선 말의 문인 학자 지재(止齋) 이교문(李敎文)[1878~1958]의 문집 『지재유고(止齋遺稿)』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이교문은 하동 지역을 여행하면서 악양의 봉대리에 있었던 봉황대(鳳凰臺) 유허를 찾아갔는데, 봉황대는 보이지 않고 물가에 풀만 우거진 것을 보고서 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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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 주포마을에 있는 개항기 때 정자. 참봉을 지낸 이수희(李壽熙)[1874~?]가 장수(藏修)[학문을 할 때 조금도 변함없이 열심히 한다는 의미]하던 곳이다. 이수희의 자는 태원(泰元)·천로(天老), 본관은 재령(載寧)이며, 하동 옥종에서 거주하였다. 벼슬은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을 지냈다.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회봉(晦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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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조공근(曺公根) 이하 4대를 모시기 위해 세운 재실. 하동군 횡천면의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대부분 조선 초기에 평양감사와 이조판서를 지낸 충익공 조문택의 후예이다. 충익공의 후예인 조숙(曺淑)은 홍문관응교를 지낸 뒤 회양부사 등 다섯 고을을 거치면서 치적이 매우 높았으며, 조숙의 작은아들 조원우(曺元佑)가 하동의 입향조로서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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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조공근(曺公根) 이하 4대를 모시기 위해 세운 재실. 하동군 횡천면의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대부분 조선 초기에 평양감사와 이조판서를 지낸 충익공 조문택의 후예이다. 충익공의 후예인 조숙(曺淑)은 홍문관응교를 지낸 뒤 회양부사 등 다섯 고을을 거치면서 치적이 매우 높았으며, 조숙의 작은아들 조원우(曺元佑)가 하동의 입향조로서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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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최경병의 문집. 최경병(崔瓊秉)[1865~1939]의 자는 영호(永好), 호는 수당(修堂)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서 살았다. 『수당집(修堂集)』은 1939년에 간행되었으며,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이 없어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8권 4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이며, 표제(表題)와 판심제는 수당집(修堂集)으로 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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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재령(載寧). 고조할아버지는 주화헌(輳龢軒) 이정모(李廷模)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소파(蘇坡) 이희곤(李熙坤)이며, 할아버지는 매당(梅堂) 이수안(李壽安)이다. 아버지는 정산(晶山) 이현덕(李鉉德)이며, 어머니는 하한철(河漢徹)의 딸인 진양 하씨(晉陽河氏)이다. 전처는 정석기(鄭奭基)의 딸인 진양 정씨(晉陽鄭氏)이며, 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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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상덕(尙德), 호는 청천(晴川). 고려조 통례문지후(通禮門祗侯) 정신(鄭侁)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정함수(鄭檻壽)이며, 할아버지는 애당(愛塘) 정치도(鄭致道)인데, 효성으로 인해 사헌부감찰에 증직되고 정려가 내려졌다. 이때 정치도의 형 정치덕(鄭致德)과 동생 정치행(鄭致行)도 동시에 증직과 정려가 내려져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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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효자 정원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원철(鄭源喆)은 본관이 진양(晉陽)이며, 자는 응원(應元)이고, 호는 모헌(慕軒)이다.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의 후손이다. 정원철 효행비(鄭源喆孝行碑)는 정원철의 효행을 기릴 뿐 아니라 인륜이 무너지는 세태에 그의 행적을 보여 줌으로써 효도가 백행(百行)의 근본임을 알리기 위해 19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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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효자 정원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원철(鄭源喆)은 본관이 진양(晉陽)이며, 자는 응원(應元)이고, 호는 모헌(慕軒)이다.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의 후손이다. 정원철 효행비(鄭源喆孝行碑)는 정원철의 효행을 기릴 뿐 아니라 인륜이 무너지는 세태에 그의 행적을 보여 줌으로써 효도가 백행(百行)의 근본임을 알리기 위해 19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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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아직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규모가 작은 속읍(屬邑)이 적지 않게 존재하였다. 태종 대에는 이런 고을들을 두세 개씩 통합하여 수령을 파견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동현과 남해현은 이미 수령이 파견되어 있는 고을이었지만, 1414년(태종 14) 8월 두 고을을 합쳐 하남현(河南縣)으로 개칭하였다가 이듬해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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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정기식의 문집. 정기식(鄭基軾)[1884~1958]의 자는 상덕(尙德), 호는 청천(晴天)이다. 회봉(晦峰) 하겸진(河謙鎭)의 문인이다. 정기식은 평소 내면에 힘쓰느라 남긴 글이 적기도 하지만 지은 글도 남에게 자랑하기 싫어하여 버린 것이 많기 때문에 집안에 남아 있는 글이 적었다. 이에 장남 정두용(鄭斗鏞)이 1968년 원근에 흩어져 있는 글을 모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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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윤여(潤汝), 호는 월촌(月村).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하진희(河晉熙)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하의일(河義一)이며, 할아버지는 하덕광(河德廣)이다. 아버지는 하석흥(河錫興)이고, 어머니는 강주우(姜周祐)의 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전처는 윤택귀(尹宅龜)의 딸 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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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진주에서 이름난 마을을 꼽을 때 “첫 번째가 안계(安溪)요, 두 번째가 원당(元堂)이요, 세 번째가 사월(沙月)이다.”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안계마을이 진주목(晉州牧)에 속했기 때문에 진주의 으뜸가는 명촌(名村)으로 일컬어졌던 것이다. 안계마을이 그런 명성을 얻은 것은 풍경이 수려하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곳이기 때문이다. 『옥종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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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와 학맥에 관해 서술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적 범위를 어디까지로 제한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유학자의 정의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위의 두 가지 범위와 기준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하동의 유학자를 규정하였다. 첫째, 시간적 범위는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은 조선의 건국으로부터 그 운명이 다하는 시점인 개항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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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자도(子導). 호는 담헌(澹軒).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1603~1651]과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하재원(河在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하상호(河相灝)이며, 할아버지는 니곡(尼谷) 하응로(河應魯)[1848~1916]이다. 아버지는 사와(士窩) 하재도(河載圖)[1869~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