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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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爛發 |
영어음역 | Gim Nanbal |
이칭/별칭 | 예지(禮之),둔옹(遯翁)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길찬 |
출생 시기/일시 | 176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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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38년 |
추모 시기/일시 | 1923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
사당|배향지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정의]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예지(禮之). 호는 둔옹(遯翁).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이며, 김상용(金商鎔)의 5대조이다. 김상용(金商鎔)은 1975년에 성균관장이 주는 효행 표창을 받았다.
[활동 사항]
김난발(金爛發)[1767~1838]은 1767년(영조 43)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자신의 허벅지를 잘라 나온 피를 마시게 하여 6개월을 더 연명하게 하였다. 이윽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를 살았는데, 그의 효성에 감복한 호랑이가 그를 지켜 주었다고 전하며, 이 소식에 나라에서 쌀과 고기를 내렸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진주군지(晉州郡誌)』와 『삼강록(三綱錄)』에 효행이 등재되었으며, 노역을 면제받았다. 지역 사람들이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백원정(百源亭)을 지어 그의 효성을 칭송하였다. 1923년에는 유림에서 비석을 세웠는데, 비문은 하봉수(河鳳壽)가 지었고, 행장은 양주택(梁柱澤)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