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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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民濟 |
영어음역 | Jeong Minje |
이칭/별칭 | 종여(宗汝)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병철 |
출생 시기/일시 | 177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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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34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
묘소|단소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대방동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연일 |
[정의]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종여(宗汝). 5대조 정사석(鄭思錫)이 진주에서 하동으로 이거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정언장(鄭彦章)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정영(鄭榮)인데 모두 증직되었다. 할아버지는 정홍린(鄭弘麟)이다. 아버지는 정사옥(鄭賜玉)이며, 어머니는 김서량(金瑞良)의 딸인 경주 김씨(慶州 金氏)이다. 부인은 심상윤(沈尙胤)의 딸인 청송 심씨(靑松 沈氏)이며, 3남 2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정민제(鄭民濟)는 1778년(정조 2)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가 죽었는데, 항상 아버지가 살아 있지 않은 것을 탄식하면서 울자 어머니가, “너의 집안은 대단한 가문인데 지금 쇠퇴하여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구나. 부지런히 책을 읽어 집안을 창대하게 하는 것은 곧 네가 맡은 중요한 책임이니, 애미는 다만 이것을 염려할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정민제는 어머니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 감히 명을 어기지 않았으며, 집안일을 돌보며 열심히 공부하였다.
어머니가 병에 걸려 위독하자, 단을 세우고 북극성에 빌며 자신이 대신하기를 기도하였다. 예법에 맞게 몸가짐을 가지고, 법도에 따라 집안을 다스렸다. 남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는 항상 부모에게 효제(孝悌)하기를 권면하였으며, 고을 사람들에게 말할 적에는 충신(忠信)할 것을 자상하게 타일렀다. 이 때문에 고을 사람들이 “한 고을의 길한 선비[一鄕吉士]”라고 칭송하였다. 순조 갑오년(甲午年)[1834] 마흔일곱 살의 나이로 작고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대방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효행으로 통훈대부 사헌부감찰(通訓大夫司憲府監察)에 증직되었다.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이 묘표(墓表)를 짓고, 초계(草溪) 정낙시(鄭樂時)가 효행비명(孝行碑銘)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