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8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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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到岳陽-文尙海- |
영어의미역 | Arriving at Akya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정화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6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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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35년 |
성격 | 한시|칠언 율시|유람시 |
작가 | 문상해(文尙海)[1765~1835] |
[정의]
조선 후기 문상해가 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을 유람하다가 악양에 도착하여 지은 한시.
[개설]
「도악양(到岳陽)」은 창해(滄海) 문상해(文尙海)[1765~1835]의 『창해집(滄海集)』에 수록되어 있다. 문상해의 자는 성용(聖庸), 호는 창해,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18세기 말~19세기 초 진주 인근에 살았던 남명연원가(南冥淵源家)의 한 사람으로, 일생 출사하지 않고 재야 지식인으로서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다.
문상해는 특히 만년에 산수자연을 좋아하여 인근의 여러 명승지를 유람하였는데, 『창해집』에 전하는 160수의 한시 중 다수가 기행시에 해당한다. 작품에 나타난 곳만 살펴보아도 지리산[1,915m] 천왕봉, 남해 금산(錦山)을 비롯하여 고성의 무이산, 사천의 와룡산(臥龍山), 금산의 월아산(月牙山) 등으로, 인근의 명산에 올라 곳곳의 유적지에서 감회를 읊었다. 「도악양」은 그중 한 수이며, 창작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구성]
칠언 율시의 구성법에 맞게 전개한 한시이다. 하동군 악양에 위치한 동정호, 군산 등 관련 일화를 두루 가미하여 풍성하게 구성하고 있다.
[내용]
영호분계수상회(嶺湖分界水相回)[영남 호남 나뉜 자리 강물 서로 감도니]
설월한천취경래(雪月寒天取景來)[눈 내린 차가운 달밤 경치 찾아 왔노라]
객극일순방장로(客屐一旬方丈路)[나그네는 열흘 동안 방장산 구경했고]
촌료삼일악양배(村醪三日岳陽盃)[삼 일 동안 악양에서 촌 막걸리 마셨네]
상산죽염애요슬(湘山竹染哀瑤瑟)[상산엔 반죽 남아 비파 소리 애잔하고]
비수운귀억초대(丕峀雲歸憶楚臺)[무산엔 구름 돌아 초대를 회상하네]
종고유인다감고(從古遊人多感古)[예로부터 나그네는 고적 감회 많으니]
불감회포고배회(不堪懷抱故徘徊)[회포를 누를 길 없어 짐짓 배회한다네]
제1~제2구는 섬진강을 기점으로 호남과 영남의 분기점인 하동의 악양 위치를 소개하고, 눈 내린 차가운 겨울날 달밤에 악양을 유람하기 위해 도착하였다는 것으로써 유람 시기를 밝히고 있다. 제3~제4구에서는 작자의 유람 일정과 코스를 밝히고 있다. 작자는 진주 인근의 명승지를 두루 유람하였는데, 이즈음 열흘 동안 지리산을 유람하고 하동으로 길을 잡은 듯하다.
본래 악양은 중국 후베이 성[湖北省]의 한 현(縣)으로, 악양루(岳陽樓)·동정호(洞庭湖)·군산(君山) 등 여러 이름난 유적이 있다. 하동군 악양은 지명의 유래에서부터 중국의 악양과 유사하며, 대표적 유적으로 악양루와 동정호가 있다. 하동군 악양을 지나는 조선 시대 문인들은 이러한 역사와 유적들을 시로 읊어 내었는데, 제5구의 상산(湘山)은 바로 동정호 내의 군산을 일컫는다.
제6구의 초대(楚臺)는 초나라 무산(巫山)의 양대(陽臺)를 말하는데, 옛날 초왕(楚王)이 양대에서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된다는 신녀(神女)를 만나 남녀의 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제7~제8구에서는 제5~제6구에서 인용한 여러 전거(典據)를 통해 유적지를 유람하는 자의 수많은 감회를 표출하고 있다.
[특징]
‘래(來)’, ‘배(盃)’, ‘대(臺)’, ‘회(徊)’의 운자를 썼다.
[의의와 평가]
하동군 악양의 동정호는 조선 시대 선비들이 하동을 유람할 때 반드시 거치는 명소이다. 하동군 악양에는 동정호 외에도 중국 하동을 모방한 하동 고소성(河東姑蘇城)과 한산사(寒山寺), 봉황대(鳳凰臺) 등 수많은 유적이 있으며, 이와 관련한 많은 일화가 전한다.
「도악양」은 조선 후기 인근 지역의 재야 지식인이 하동군 악양을 유람하고, 악양에 얽힌 많은 일화를 회상하며 감회를 표출하고 있는 한시이다. 재야 지식인이 향촌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학문이나 처세에 있어 뚜렷한 가치관과 수양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성향은 흔히 재야 지식인의 거주지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표출되기도 하는데, 거주지의 명승 유람을 통한 기행 작품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향촌의 선현을 존숭하고 이들의 유적지를 유람하고서 흠모의 마음을 표현한다거나, 명승지 유람을 통해 사대부 지식인으로서의 사의식(士意識)을 고취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도악양」은 일생 출사하지 않고 재야 지식인으로 일관하였던 문상해의 작가적 의식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