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여지지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있는 나루. 1656년에 간행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진도 우역(郵驛) 항목에 녹진나루 이용자들을 위한 녹진원(鹿津院)이라는 여행객 숙소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지형이 사슴의 뿔처럼 생겨서 녹진리(鹿津里)라 하였으며, 녹진나루는 녹진리에서 유래하였다. 진도군 군내면의 북동쪽에 위치하며 해남군과 마주보고 있다. 녹진나루 앞에는 물살이 거센 울...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있는 산. 망금산은 망금 뒤에 있는 산으로 진도의 관문산이다. 산의 높이는 115m이다. 산정부에 가로 30m, 세로 20m의 토성이 축성된 흔적이 있다. 백제 이후 바다 물목을 지키는 군대 주둔지였다. 충무공 이순신이 진도를 남도(南道)의 요충(要衝)이라 하였고 조선 선조 때 판중추부사 윤두수가 진도를 "가장 중요한 관방지역(最爲緊關之地)"이라 한...
-
석가모니를 교조로 삼고 그가 설한 교법(敎法)을 종지(宗旨)로 하는 종교. 진도의 불교는 오래 전부터 이 지역민들의 신앙이 되어왔으나 오래된 사찰은 대부분 폐찰되었다. 해방 이전에 건립된 사찰로는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있는 쌍계사(雙溪寺)가 유일하고, 그 외에는 폐사지에 남아 있는 유구(遺構)와 암벽에 조각된 불상을 통해서 흔적만이 확인되고 있다. 1.쌍계사 쌍계사는 진도군 의신...
-
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과 『사상마을지』를 기본 자료로 하여 작성하였고, 이희춘(남, 사상마을 새마을지도자) 씨의 도움을 받았다. (골 / 굴) 개락굴 사하리에서 사상리로 가는 중간쯤의 우측 산이다. 옛날에 어린이가 죽으면 이곳에 돌(독)담 장사를 지냈다. 거친들고랑 봉화골 입구 산길 북측 주변을 일컫는다. 굴등 사구지재 올라...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덕수.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공. 아버지는 이정(李貞)이며, 어머니는 초계변씨(草溪卞氏)로 1545년에 서울 건천동(乾川洞)에서 출생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591년 일본과의 관계가 미묘하고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1591년 2월에 정읍현감이던 이순신을 진도군수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부임 도중에 완도 가리포수군첨사...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주지(胄之), 호는 망헌(忘軒). 좌의정 이원(李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감 이증(李增)이고, 아버지는 현감 이평(李評)이며, 처는 전주(全州) 이해(李偕)의 딸이고, 어머니는 허추(許樞)의 딸이다. 형으로 이윤(李胤)이 있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68년(세조 14)에 태어났다. 문과 급제 후 검열, 정언 등 주로 삼...
-
전라남도 진도군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지명. 인진도군은 신라의 삼국 통일 후 757년(경덕왕 16) 진도현으로 개칭되어, 무안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백제시대에 인진도군의 치소는 고군면 고성리에 두었으며, 영현으로 도산현(徒山縣)과 매구리현(買仇里縣)을 거느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의 진도군 군명란에 인진도(因珍島)가 나온다....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절터. 이 절터에서 죽림사라고 단정할 만한 유물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구전과 ‘죽림(竹林)’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보아 이곳의 절터를 죽림사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죽림사는 고려시대 때 창건했다고 전하며『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절의 이름이 처음 나타나지만 연혁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 마을 뒤 북서쪽으로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