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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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 64번지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곽. 고군면 고성리 고군성지 주변의 지형을 보면, 남쪽은 첨찰산, 죽찰산 등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으로는 진도 용장성이 있다. 동쪽과 서쪽에는 좁다란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동쪽에는 해남 쪽으로 돌출한 원포리를 중심으로 내만된 해안이 형성되어 있는데, 현재 원포리와 내산리 사이에는 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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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장(武將)·정치가. 김방경은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서 대몽항쟁의 주력인 삼별초(三別抄)를 진압했고, 원의 일본 정벌 때 고려군을 이끌고 출정했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본연(本然).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병부상서·한림학사를 지낸 김효인(金孝印)이다. 김방경은 첫 부인으로 박익정(朴益旌)의 딸을 맞이하였다. 기거랑지제고중서사인을 지낸 박익정은 무인 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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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강화도에서는 김통정이 강화 교동면 출신으로 구전되어 오고 있다. 김통정에 관해서는 구전설화가 여럿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탄생설화로는 과부 어머니가 지렁이와 희롱하여 태어났다고 하여 원래 성은 지렁이 ‘진’씨였으나 나중에 김씨로 고쳐 김통정이 되었다고 한다. 김통정은 배중손(裵仲孫) 등과 함께 개경 환도를 반대하여 삼별초를 거느리고 대몽항전을 하였다. 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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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삼별초를 이끌었던 장군. 배중손이 역사에 뚜렷이 부각되는 것은 삼별초의 대몽항전 이후부터이며, 그 이전의 경력은 자세하지 않다. 왕정복고파와는 달리 대몽항전의 지속을 주장하였던 임연(林衍) 부자 계열에 속하는 무인으로, 임연 부자의 몰락 후에 대몽 강경파의 선봉에 서서 비타협적 항전을 계속한 인물이다. 배중손은 서반의 장군인 동시에 가장 유력한 삼별초의 지휘관이었던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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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권기에 특수부대였던 삼별초가 몽고의 간섭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란. 무인정권(武人政權) 말기 최우가 집권하여 도적이 횡행하자, 이들을 잡기 위해 용사를 선발, 경찰부대를 조직하고 이를 야별초(夜別抄)라 하였다. 그 뒤 인원이 늘고 기구가 확대되어 좌별초·우별초로 나누어져 편성되었다. 이후에 몽고군에 잡혔다가 탈출해온 군사와 장정들이 새로 신의군이라는 별초부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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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돌로 구축한 방어시설의 총칭. 성(城)과 성곽(城郭)은 엄밀하게는 다르다. 성(城)은 내성(內城)만을 의미하고 성곽(城郭)은 내·외성을 통칭한다. 성곽은 거주 주체에 의해 도성(都城)과 읍성(邑城)으로 나누어진다. 지형에 의해서는 평지성(平地城), 평산성(平山城), 산성(山城)으로 나누어진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국경성(國境城), 해안성(海岸城), 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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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서 의신면 운림산방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전설에 따르면 고려후기 삼별초의 난 때 영영공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자신의 친형인 왕온을 구해오도록 했다. 영영공은 자신의 친형이 삼별초의 인질로 잡혀가 타의에 의해 왕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왕온은 삼별초가 몽골 및 고려 연합군과 항전하면서 이 고갯길을 넘어 퇴각하는 과정에서 홍다구의 칼에 맞아 죽었고, 이 고갯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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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왕족으로 삼별초에 의해 진도에서 왕으로 추대된 인물. 왕온은 고려 현종의 8대손이다. 청화후 왕경(王璟)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제로 왕서·왕염(王剡)·왕정(王珽)이 있다. 아들은 왕환(王桓)이다. 왕춘(王瑃)·왕희(王禧)·왕기(王祺)가 숙부이다. 승화후(承化侯)에 봉해졌다. 1270년(원종 11) 고려와 몽고가 강화하기로 하고 왕실이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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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왕족. 고려 현종의 9대손이다. 영녕공(永寧公) 왕준(王綧)의 아들이며, 삼별초가 왕으로 추대한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의 조카이다. 형제로는 왕희(王熙)·왕함·왕시·왕화(王和)·왕림(王琳)이 있다. 아들은 왕미이다. 신안후에 봉해졌다. 1270년(원종 11) 삼별초가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여 진도에 웅거하자, 고려 조정은 왕옹을 아우 왕희와 함께 파견하여 삼별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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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왕족. 고려 현종의 9대손이다. 영녕공(永寧公) 왕준(王綧)의 아들이며, 삼별초가 왕으로 추대한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의 조카이다. 형제로는 왕옹(王雍)·왕함·왕시·왕화(王和)·왕림(王琳)이 있다. 아들은 왕형(王珩)·왕구(王玖)이다. 광화후에 봉해졌다. 1270년(원종 11) 삼별초는 반란을 일으키면서 왕희의 숙부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진도를 점령하였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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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삼별초정권이 조운로(漕運路)를 장악하자 개경정부의 재정상태는 곤핍을 극하게 되었다. 당장 시급한 군량(軍糧)조차 제대로 맞춰서 대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하루 빨리 진도 를 되찾는 것이 개경정부 존립의 관건이었던 셈이다. 원나라의 입장에서도 삼별초와 남송의 동맹을 방지하고 또한 일본을 정복하려는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도 를 점령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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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마산리의 동쪽 바닷가 골짜기 이름. 고군면 마산리 선착장에서 홍다구가 용장성에 있는 삼별초를 치기 위해 상륙했다는 다래(茶來)불치에서 벽파 쪽 군직기미와의 사이에 있다. 1894년 이 동네 출신의 동학군 손행권이 동학 의병들을 훈련시킨 곳으로 구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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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삼별초의 항쟁 때 죽은 왕온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고분. 전 왕온의 묘에는 진도에서 있었던 삼별초 항쟁과 관련된 전설이 다음과 같이 전해져 오고 있다. “옛날 삼별초 항쟁 때 왕이 몽고군에게 쫓겨서 왕무덤재까지 왔는데 지금의 논수골에서 일대 격전이 벌어졌다. 격전 중에 싸움을 피해 다녔던 왕온은 몽고장수 홍다구에 의해 사로잡혔다. 왕온을 살리려고 덤볐던 왕온의 아들 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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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원종·충렬왕 때의 부원(附元) 분자. 본관은 남양. 본명은 홍준기(洪俊奇)이며 홍다구(洪茶丘)는 아명(兒名)이다. 몽고명은 찰구이(察球爾)로, 원나라에서 태어나 자랐다. 할아버지는 1218년(고종 5) 몽골에 투항한 홍대순(洪大純)이며, 아버지는 몽골 침입의 길잡이 노릇을 한 홍복원(洪福源)이다. 원나라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세조가 그를 다구라고 불렀다고 한다. 12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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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원나라의 무장(武將) 흔도(忻都)는 홀돈(忽敦)이라고도 한다. 1276년(충렬왕 2) 흔도의 아들과 안평공(安平公)의 딸이 결혼하였다. 1277년(충렬왕 3) 흔도의 아들 기(琪)가 수사공으로 임명되었다. 기는 안평공(安平公)의 딸과 결혼하였으므로 왕실의 예에 준하여 이 관직을 주었으며 또 성을 쓰지 않고 이름만 썼다. 고려 후기 삼별초 토벌과 일본 정벌을 위해 고려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