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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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남동리에 있는 고막뫼에 관한 전설. 「고막뫼 전설」은 진도군에서 전승되고 있는 「지심뫼 전설」이나 「이음바위 전설」과 유사한 ‘산 이동’과 ‘산 멈춤’이란 모티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섬 지방에서 주로 구전되어 내려온 거인 설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고막뫼는 오늘날 진도읍 남동리 남쪽에 있는 두리두리한 섬 등 같은 산을 말하는데, 현재의 남동리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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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사정리 망적산에 있는 용샘에 얽힌 이야기. 용샘은 진도읍의 주산인 망적산[철마산, 해발 295m] 산정에 있는데, 현재는 물이 나오지 않은 채 흔적만 남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일이었는데, 어느 날 망적산 산정에서 갑자기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폭음이 들리더니, 순식간에 산등만큼 커다란 청룡 한 마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는 진도읍의 서북쪽으로 있는 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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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설치한 조선 전기의 수군진. 전라수영(全羅水營)은 영산강 하류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왜구를 방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조정에서는 1423년(세종 14) 전라수영을 목포(木浦)로 옮겼다. 그리고 목포의 병선은 황원(黃原)의 남면 주량(周梁)[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으로, 수영의 병선 3,4척을 매달 윤번으로 진도의 서쪽 소가포(所可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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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임회면 남동리에서 백동리로 넘어가는 동령재 좌우 논밭에 3기가 흩어져 있다. 남동리 고인돌군은 1968년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에서 남해안 도서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고학적 조사 결과를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처음 알려졌다. 그 후 1979년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와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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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 남동리에서 동령개로 넘어가는 약 1㎞ 지점, 도로 좌측에 1기의 선돌이 있다. 1979년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에서 실시한 지표조사 시에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그 후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재조사하였다. 현재의 상태는 밑부분이 지표에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는 알 수 없으나, 현 높이는 90㎝, 최대 폭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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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남쪽에 위치하는 남밖다리에 있는 동네라 하여 남동이라 하였다. 또 다른 유래로 조선 시대 남도포영이 있었으므로 남도개·남도포·남도·남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850년 경 평산신씨가 처음으로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이후 김해김씨가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임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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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남동리(진도읍)는 진도읍성 남문이 있던 곳으로 남문거리 또는 남문동이라고 한 데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 1400년 경 김해김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그 후 밀양박씨와 전주이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부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남상리, 남하리, 남산리 일부를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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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있는 공원. 임회면 남쪽의 남밖다리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남동리(南洞里)라 하였으며, 남동소공원은 남동리에 있는 공원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2004년 5월부터 10월까지 국가지정 사적 제127호인 진도 남도진성 주위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건립한 공원이다. 진도대교에서 18번 국도를 따라 임회면 남동리 방향으로 가다 18번 국도에서 갈라진 비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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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남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산(南山) 아래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남산리(南山里)라 부른다. 1824년 경 이천서씨인 서성화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그 후 밀양박씨와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남산리의 일부가 남동리와 포산리에 각각 병합되었다. 문마산[109m]과 남산(南山)[243m] 사이의 산록 완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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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쌍정리에 속하는 행정리. 논 가운데 말샘이 있었기 때문에 두정(斗井)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의신면에서 남문거리로 가는 길과 군내면, 고군면에서 남문거리로 들어오는 삼거리 길로 삼거리로 불리었고 돌벅수가 있어서 벅수거리라고도 불리었으며 장사 들독이 있었다. 1470년 경 양천허씨와 청주양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1700년경에 다른 성씨들이 들어와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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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원래 명칭은 서망(鼠望)으로, 쥐가 앞의 쌀섬[白米島]을 바라보며 어떻게 건너갈지를 생각하는 형세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후에 마을 이름에 쥐를 의미하는 서(鼠)자를 쓰는 것은 좋지 않으며, 마을의 위치가 서쪽이니 발음이 같은 서(西)로 바꾸어 서망(西望)이 되었다 한다. 1750년경 평산신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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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돌로 구축한 방어시설의 총칭. 성(城)과 성곽(城郭)은 엄밀하게는 다르다. 성(城)은 내성(內城)만을 의미하고 성곽(城郭)은 내·외성을 통칭한다. 성곽은 거주 주체에 의해 도성(都城)과 읍성(邑城)으로 나누어진다. 지형에 의해서는 평지성(平地城), 평산성(平山城), 산성(山城)으로 나누어진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국경성(國境城), 해안성(海岸城), 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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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의 가장 중요한 생산 기반 시설은 상가이다. 상가는 성서리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진도읍 내의 상권은 역사적으로 보면, 성서리에서 남동리와 쌍정리 등으로 확장되었다. 철마광장의 남쪽 경계선에서 남동리의 중심부로 도로가 관통되기 이전만 해도 성서리가 진도읍 상권의 주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도읍 상권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준 것은 버스터미널의 위치와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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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조선시대 진도군의 관아가 있던 성안을 법적으로 성내리라 하며, 성안을 동·서로 나누어 그 동쪽을 성동리(城東里)라 하였다. 1792년경 청주한씨의 입향 후 김해김씨·밀양박씨·전주이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진도읍성 안의 중심지로 형성되었다. 성동리는 1980년대까지 진도읍의 중심지였으나 남동리가 신흥시가지로 개발되면서 활기를 많이 잃었다. 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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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속하는 면(面). 임회면은 법정리 13개, 행정리 37개를 관할하고 있다. 법정리로는 석교리(石橋里)·삼막리(三幕里)·용호리(龍虎里)·고정리(高亭里)·사령리(巳嶺里)·명슬리(鳴瑟里)·봉상리(鳳翔里)·상만리(上萬里)·죽림리(竹林里)·백동리(白洞里)·굴포리(屈浦里)·남동리(南洞里)·연동리(蓮洞里)가 속해 있다. 또한 임회면에는 유인도 1개와 무인도 10개가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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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있는 석성. 진도 남도진성 자리는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진도를 떠나 제주도로 향하기 직전까지 마지막 항전을 벌였던 유적지로서 진도 남도진성은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현재의 진도 남도진성은 조선시대에 재축성한 것으로 짐작된다. 1964년 6월 10일에 사적 제127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남동리를 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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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있는 상하수도와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는 기관. 진도 군민에게 깨끗하고 안정적인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한 부서로 고도 정수처리시설과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수돗물 생산 공급 체계를 갖추고 있다. 진도군 상하수도사업소는 진도 군민의 제한급수에 따른 생활불편 해소를 위하여 정상급수 공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수돗물 아껴 쓰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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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와 남동리 및 쌍정리의 경계도로는 한동안 진도읍에서 가장 넓은 중심도로였다. 그러나 철마광장에서 남동리로 큰 도로가 연장 관통되고, 남동리 일대에 외곽 도로가 개설되면서 중심도로의 기능은 많이 감소되었다. 성내리 주택가 지역은 옛 길이 남아 있고 노후된 가옥들이 있어 차량 통행을 저해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교통이 편리한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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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뿐만 아니라 주변 마을인 남동리, 쌍정리 등에 다양한 업종의 상가들이 개업해 있고, 진도군에서 가장 큰 진도읍 매일시장이 인접해 있어서 생산한 상품들은 이곳을 통해 판매 및 유통하고 있다. 농업 생산물의 판매 유통은 다른 농촌마을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성동리에서 생산되는 주요 농산품은 쌀, 구기자, 배추, 대파 등인데, 자급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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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의 인접마을인 교동리 275번지에 향교가 있으며, 역시 인접마을인 남동리에 진도천주교회와 통일교회가 있다. 한편 성내리에는 진도교회(감리교)와 진도중앙교회가 있다. 그리고 인접마을인 쌍정리에는 원불교 진도교당이 있다. 성동리는 약 30가구가 장로교계 기독교인이고, 3가구 정도가 감리교계 기독인이다. 불교는 10여 가구인데, 진도읍에 소재한 영룡사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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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읍은 진도군의 중심지이고 성내리는 진도읍의 핵심지이다. 본래 진도읍은 1437년(세종 19)에 부내면이 되었다가 1873년(고종 11)에 진도면으로 개칭되었고,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행정개편이 있었지만 성내리는 읍성의 안쪽에 있다 하여 처음부터 성안 또는 성내로 불렸다. 법정동은 성내리이지만 행정동은 진도초등학교가 있는 성동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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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진도의 치소였던 진도읍성이 있던 곳이 성내리인 관계로 이곳에는 진도의 법과 행정, 그리고 공공기관들이 모여 있었다. 진도군의 발전과 더불어 진도읍이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지방기관들과 각종 공공기관들이 인근 마을인 쌍정리, 남동리, 교동리 등에 신 청사를 건립하여 이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내리에는 여전히 진도군의 법과 행정을 시행하는 다수의 공공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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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진도군청 진도군의 행정업무를 총괄하고 시행하는 진도군청은 성내리 64-1번지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이곳으로 진도군청이 신축, 이전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이전하기 전의 청사는 현 ‘소전미술관’이 있는 성내리 63-1번지에 있었다. 이곳에서 진도군의 자치 업무가 개시된 것은 1437년(세종 19)에 해진군(海珍郡)으로부터 진도군이 분리되고, 진도읍성으로 이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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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진도경찰서 진도경찰서는 1910년 9월 16일 목포경찰서 진도주재소가 설치되면서 창립되었고, 1922년 5월 8일에 진도경찰서로 승격되었다. 경찰서 청사는 진도군 객사터였던 성내리 50번지에 있었는데, 약 30평 규모의 일본식 목조건물이었다. 이 청사는 1966년에 12월 17일 2층으로 된 콘크리트조 건물로 개축되었다. 그러다가 2001년 6월 22일에 지하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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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그 역할과 기능이 다소 약화되었으나, 성내리는 진도군 경제의 중심이었다. 오늘날에도 철마광장 주변과 과거 철마광장으로 진입하던 주요 도로의 주변에는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이렇게 상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이후까지만 해도 철마광장에서 남강모텔이 들어서 있는 쪽이 진도시장이었다. 이곳에 있던 시장이 남동리로 이주한 것이 196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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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에 있는 행정리. 예전에는 ‘팽목구미’라 하여 나무가 울창한 바닷가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 뒤 구미라는 말이 탈락되고 ‘팽목’으로 정착되었다. 일설에는 팽목리에 속한 도리섬에 오래 전에 팽나무가 많이 있어서 팽목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1600년경 김해김씨가 시거하였고, 이후에 전주이씨가 입촌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임이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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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포리와 남산리의 이름을 따서 포산리라 했다. 1480년경 창령조씨 조윤문의 둘째 아들 조극인(克仁)이 서외리에서 포산리로 분가 이주한 것을 시작으로 1500년경 밀양박씨·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군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죽엽리, 포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