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이후 진도에 세거해 온 성씨. 신라 종성(宗姓)인 김씨(金氏)의 후예로, 송악(松嶽)에서 태봉국(泰封國)을 세웠던 궁예(弓裔)의 6세손 이종금(李宗金)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이종금은 1010년(고려 현종 원년) 거란의 40만 대군이 침략하였을 때 강감찬(姜邯贊)의 휘하로 들어가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1018년(현종 9) 3차로 재침해 온 거란의...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루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식의 집.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이르는 말이다. 누각(樓閣)은 성문 위에 지은 집이나 전망이 좋은 곳에 2층 형으로 지은 전망대를 이른다. 정자(亭子)는 휴게를 위해 지은 집이다. 누정 중에는 숙소인 원(院)의 기능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진도지역의 경우 1923년에 나온 『중증진도읍지』에 보면 11개의 누정 이...
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기축옥사는 동인과 서인의 당쟁으로 정여립(鄭汝立)[1544~1589]의 모반을 조작해 동인(東人)들을 숙청했던 사건이다. 이때 동인계의 실권 배후 인물이 광산이씨 이발(李潑)[1544~1589]이었기때문에 그의 형제와 어머니와 아들 등 삼족이 죽임을 당하는 참화를 입었다. 본관은 광산. 아버지는 이길(李洁)이다. 이길은 1589년의 기축옥사로 형인 이발(...
음양오행설을 바탕삼아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진도는 울돌목이라고 불리는 명량해협을 사이에 두고 육지부와 떨어진 섬이다. 이런 섬의 원격성이 진도의 고유한 문화적 속성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한때 진도는 10만이 넘는 인구를 부양할 정도로 농업 생산성이 높았으며, 섬이면서도 유난히 농경문화의 요소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풍수지리 역시 농경문화의 한 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