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
전라남도 진도군 지역에서 불리는 신민요. 「도라지타령」은 조선후기에 생긴 신민요로 세마치장단에 의한 5음음계 구성이며, 「창부타령」과 비슷한 선율형이다. 리듬이 경쾌하고 부드러워 서정적 느낌을 준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신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바구니 반식만 차노라/ 애해야 애해야 애해야/ 애하야난다 디하라/ 몽당 내사랑 이로세 「도라지타령」은 신민요의 하나...
-
전라남도 진도군 지역에 전해지는 여성들의 대표적인 방안 놀이이자 유희요. 「둥덩애타령」은 「진도아리랑」과 더불어 진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민요이다. 진양조로 부르는 다소 느린 「둥덩애타령」과 중모리 혹은 자진모리로 부르는 「둥덩애타령」이 있다. 「둥덩애타령」은 전라도의 서부 지역에서 여성에 의해 ‘물레방’이나 정월대보름, 추석 등에 집단적으로 불려졌다. 목화솜을 타는 활을 창호...
-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불리는 유희요(遊戱謠). 「산아지타령」은 선후창으로 불리는 유절형식의 민요로 「진도아리랑」과 매우 유사한 민요이다. 전라도 동부 지역에서는 논매는 소리로, 전라도 서부지역에서는 유희요로 불리고 있다. 「산아지타령」과 「진도아리랑」의 메기는 소리의 사설과 가락은 거의 일치하며 받는 소리의 사설과 가락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산아지타령」은 대개 중모리로 부르지...
-
신청의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해 1년에 2회 마을을 도는 걸궁굿. 신청(神廳)[전라도와 경상도에 있던 무당과 악공의 연합 단체]은 무악을 비롯한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창우들의 단체이며, 걸궁은 각 마을의 가정마다 굿을 연주해 주고 돈이나 쌀을 걷는 걸립농악을 말한다. 농악대의 구성은 집사 1명, 영기 2명, 농기 1명, 쇄납 1명, 쭝방울 1명, 무동 2명, 꽹과리 3명, 징 2명,...
-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불리는 잡가(雜歌). 육자배기는 전라도의 대표적인 민요이다. 보렴·화초사거리·흥타령·개구리타령·새타령·성주풀이 등과 함께 남도잡가에 포함된다. 육자배기라는 이름은 한 장단이 6박(진양조 장단)인데서 유래하였다. 현재는 민요 육자배기와 잡가 육자배기가 공존한다. 민요 육자배기의 연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8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잡가...
-
진도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전라남도 일원에서 유희요로 즐겨 불려지고 있는 민요. 아리랑이 한국의 민요를 대표한다는 점에 대해 누구나 이의가 없을 줄로 안다. 한국인의 정서에 밀착된 아리랑의 예술성은 우리의 삶을 모두 용해시킨 원천적인 자아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중 「진도 아리랑」은 가히 한국의 민요, 또는 남도 민요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전국적으로 분포한 아리랑 중의...
-
여성들이 혼자서 일을 하거나 쉬면서 흥얼거리는 신세 한탄의 노래. 흥그래타령은 흥글소리라고도 하며 시집간 여성들이 밭매기나 길쌈을 할 때, 친정어머니를 그리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흥글흥글 소리를 한다고 하여 흥그래타령이라고 하는데, 노래라기보다는 읊조리는 소리같기도 하고 흐느끼는 소리 같기도 하다. 꺾는 음이 많이 섞인 짙은 육자배기조 선율에 슬픔과 한이 가득 담겨 있다. 흥그래타...
-
조선 후기에 간행된 『여지도서』의 진도군에 관한 항목. 1757년(영조 33) 홍양한(洪良漢)이 제안하여 왕명에 따라 홍문관에서 팔도 감사에게 명을 내려 각 읍에서 읍지를 올려 보내도록 하여 1765년(영조 41)까지 편찬을 완료하였다. 대부분 읍지의 호구조의 기준 연도가 1759년인 점으로 볼 때, 1760년 이후에 수집된 읍지들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의 편찬...
-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진도의 현황이 기록된 읍지. 1791년 간행한『전라도읍지』를 보면 전라도 내 군 기록을 모두 읍지(邑誌)라는 항목에서 다루고 있다. 1871년 간행한『전라남도 진도부읍지(全羅南道 珍島府邑誌)』에서도 진도부읍지라 했고『호남읍지』류도 모두 읍지라 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중기인 1923년에 간행한 군지도『중증진도읍지(重增珍島邑誌)』라 하였다. 다만『진도읍지』의 서문...
-
과학적인 지도 제작 측면에서 볼 때 현대지도와 구별되는 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의 고문헌과 벽화 등을 통하여 고대 지도의 윤곽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지도가 제작되기 시작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였다. 현존하는 지도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1402년(태종 2)에 김사형·이무·이회 등이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
-
1791년부터 1794년까지 진도군수를 지낸 조선후기 무신. 정조 연간에 장연현감,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 선전관, 진도군수, 금위영 낭청을 역임하였다. 순조 연간에는 공청도 수군절도사를 지냈다. 다산 정약용과 교유하였다. 구강은 제223대 진도군수인데, 진도군수로 있던 1793년(정조 17)에 흉년이 심하게 들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전라도 전역에 번(番)의 정지, 대동(大同)...
-
말(음성언어)로써 전해지는 민간의 지식 총체. 구비전승이란 문학적 성격을 지닌 구비문학과 비문학적 성격의 말로 된 생활기술지식을 총칭하는 말이다. “한 사람의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진다.”는 아프리카 속담도 있듯이, 글로 쓰인 지식이 책에 담겨 도서관에 있는 데에 반해 말로 이루어진 지식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의 형태로 보관된다. 구비(口碑)라는 말 자체가 각각 말과...
-
매년 정월 대보름에 덕병마을에서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동제를 모셔오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음력으로 정월 14일 제반 준비를 끝내고 저녁부터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까지 마을사람들이 합심하여 마을신들께 제사를 올린다. 전라도에서 동제를 부르는 가장 일반적인 이름은 당산제(堂山祭) 또는 당제(堂祭)이다. 그러나 이 역시 지역에 따라 구별이 되는데, 내륙지역은 당산제라고 부르...
-
일제강점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역사.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진도의 역사는 민족사의 고난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진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적 침략이 일찍부터 시작된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진도가 목포·해남에 인접한 다도해의 요충지로서 풍부한 농·수산물의 생산지인 때문이다. 이런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대해 진도민의 저항 또한 거세었다. 또한 3·1운동 당...
-
여말선초에 왜구의 침략을 피해 전라남도 진도지역 주민이 해남 금산(金山)으로 이주한 사건. 여말선초 왜구가 창궐했을 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진도 또한 끊임없는 왜구의 침입을 받았다. 이에 진도군민의 생존대책의 자구책을 찾고 후일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1350년경 진도군민 전체가 해남 금산으로 이사하면서 군치소도 함께 옮겼다가, 1437년 진도로 다시 돌아온 사건이다. 고려 말부...
-
조선 중기의 무신. 제59대 진도군수로 부임하여 1553년(명종 8)부터 1554년(명종 9)까지 재임하였다. 아들은 김호(金琥)이고, 증손은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한 김종수(金宗洙)이다. 진도군수로 있던 1554년(명종 9) 6월에 흑산도에서 왜인을 잡아 참하고 그 배를 나포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상을 받았다. 1555년(명종 10) 5월 군관으로 있다가 왜구의 침입이 심한 전라도...
-
조선 후기의 무신. 1736년(영조 12)~1739년(영조 15)의 3여 년간 제184대 진도군수로 재임하였다. 본관은 안동. 할아버지는 김광국(金光國)이다. 아버지는 이인좌의 난 진압의 2등 공신 언성군(彦城君) 김중만(金重萬)이다. 진도군수로 재임 중인 1738년(영조 14)에 전라도 남부 지방의 수령 등과 연명하여 흉년이 들어 심각한 상황임을 전하고 사창(社倉)에서 백성들에게...
-
전라도와 경상도 남서부, 충청남도 일부 지역에서 전승되어오는 잡가. 이병기는 처음에 사설시조를 잡가로 지칭하였다가, 후에는 민요·속요·타령 등을 통칭하는 명칭으로 잡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또 김사엽은 잡가는 항간에서 잡되게 부르는 소리로 광대라는 직업적 가수에 의하여 창작되고 성행한 것이 일반에게 전창되어 내려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떤 규정이든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
-
고려 후기의 무신. 1270년(원종 11) 원종이 몽고와의 화평 교섭에 의하여 출륙환도(出陸還都)를 결정하고 삼별초의 명단을 압수하였다. 이때 노영희는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로서 배중손과 함께 궐기하였다. 이들은 승화후 왕온을 왕으로 옹립하고 관부를 설치하여 반몽고, 반개경정부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항전을 위하여 근거지를 강화도에서 진도로 옮겼다. 진도에 근거지를...
-
가축을 방목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초지, 건물, 목책 등을 설치해 놓은 지역. 조선시대의 목마는 교통·군사·농경, 외교상의 교역품, 식용, 그리고 말가죽·말꼬리·말갈기 등의 일용품 등으로 이용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마정(馬政)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였다.『예기(禮記)』에서 ‘나라의 부를 물으면 목마의 수효로 대답한다.’라고 할 만큼, 전통시대 목마는 국가의 부강을 평가...
-
무속의식인 씻김굿에 사용되는 음악. 무악은 무속의식에 사용되는 모든 음악, 즉 무녀가 부르는 무가, 악사들의 악기연주, 장구반주 등을 모두 포함한다. 악기는 장구와 징이 기본적으로 사용되며 피리와 대금, 아쟁 등의 선율악기가 추가된다. 선율악기 연주는 즉흥선율로 이루어지는데 이를 ‘시나위’라고 한다. 그리고 무녀의 노래에 맞게 ‘청’을 바꾸어 음고를 맞춘다. 또한 무당이 손에 들고...
-
각 지방마다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여러 가지 전통놀이. 민속놀이는 의례를 중심으로 하는 의례적 놀이와 겨루기를 중심으로 하는 놀이로 나눌 수 있다. 전통적인 민속놀이들이 거의 사라진 현대에는 의례에 속한 민속연희도 민속놀이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전라남도의 남도문화제나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민속놀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의례와 연희 전통들이 소개되는 경향에 기인하는 것으로...
-
조선 후기의 문신. 1797년(순조 7)에 도총도사(都總都事)를 역임하였고, 이듬해에 낭청(郞廳), 비랑(備郞)을 지냈다. 1808년(순조 8)~1810년(순조 10)까지 제234대 진도군수를 역임하였다. 진도군수 재직 시절 조도면 주민 차돌금 등 6명이 표류하여 일본에 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건이 있었다. 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조치를 소홀히 하였다 하여 1810년 초에 조사받...
-
민중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전승되어 온 노래. 민속음악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민요는 일반적으로는 예술음악과 대립되는 말이지만, 예술음악의 모체가 되기도 한다. 대개 농업과 어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제례(祭禮)나 노동을 할 때 부르기 시작한 노래로서 특정한 창작자가 없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민중의 생활감정을 소박하게 반영하고, 때로는 국민성·민족성을 나타내기도...
-
고려후기 삼별초를 이끌었던 장군. 배중손이 역사에 뚜렷이 부각되는 것은 삼별초의 대몽항전 이후부터이며, 그 이전의 경력은 자세하지 않다. 왕정복고파와는 달리 대몽항전의 지속을 주장하였던 임연(林衍) 부자 계열에 속하는 무인으로, 임연 부자의 몰락 후에 대몽 강경파의 선봉에 서서 비타협적 항전을 계속한 인물이다. 배중손은 서반의 장군인 동시에 가장 유력한 삼별초의 지휘관이었던 까닭에...
-
고려 무신정권기에 특수부대였던 삼별초가 몽고의 간섭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란. 무인정권(武人政權) 말기 최우가 집권하여 도적이 횡행하자, 이들을 잡기 위해 용사를 선발, 경찰부대를 조직하고 이를 야별초(夜別抄)라 하였다. 그 뒤 인원이 늘고 기구가 확대되어 좌별초·우별초로 나누어져 편성되었다. 이후에 몽고군에 잡혔다가 탈출해온 군사와 장정들이 새로 신의군이라는 별초부대를...
-
영양소를 함유한 식품을 적절히 섭취하여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행동. 좁은 의미의 식생활은 즐겨먹는 음식의 종류와 조리법만을 말하나, 넓은 의미로는 식품의 종류, 이를 조리하는 방법, 조리기구, 음식, 식사예절 등 음식을 먹기 위한 모든 행동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식생활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형태로 식재료와 조리법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지리적, 기후적...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쌍계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동종. 조선 중기인 1648년에 쌍계사가 세워진 후 1720년에 주조된 범종이다. 쌍계사 동종의 종정부는 단용의 용뉴와 반구형의 천판을 갖추고 있다. 종신부에 상대, 유곽, 보살상이 표현되어 있다. 상대에 뾰족한 앙련과 그 아래에는 범자 15자가 양각되어 있다. 종신 중앙에는 4면에 유두가 돌출한 4좌의 유곽이 배치되어 있다...
-
어류를 잡거나 기르는 데 사용하는 도구. 현재 전라남도 진도군의 주요 산업은 농업이지만 과거에는 조도군도뿐 아니라 체도(體島) 전체가 반농반어업을 생업으로 삼던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진도가 농업 중심으로 비춰지는 것은 수많은 간척이 있고 난 이후이다. 옛날에는 복잡하게 얽힌 리아스식 해안과 천혜의 자원이었던 갯벌 때문에 소만 어업과 갯벌 어업이 생업의 중심이었다. 즉, 간척이 심화...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의 여귀산에 있는 봉수대의 터. 봉수(烽燧)는 횃불과 연기로 변방의 정세를 중앙에 알리던 제도였다. 조선시대 봉수는 전라도에 43개가 있었는데 진도에만 여귀산, 굴포, 삼당산, 첨찰산 등 다섯 곳이 있었다. 이를 통해 정부에서 진도의 경계에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알 수 있다. 삼당산봉수와 굴포봉수는 여귀산의 보조봉수로서 여귀산봉수에 연락했고, 여귀산봉수...
-
진도의 삼별초정권이 조운로(漕運路)를 장악하자 개경정부의 재정상태는 곤핍을 극하게 되었다. 당장 시급한 군량(軍糧)조차 제대로 맞춰서 대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하루 빨리 진도 를 되찾는 것이 개경정부 존립의 관건이었던 셈이다. 원나라의 입장에서도 삼별초와 남송의 동맹을 방지하고 또한 일본을 정복하려는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도 를 점령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8...
-
삼별초는 반개경정부(反開京政府) 그리고 반몽고(反蒙古)의 노선을 표방하며 거사하였다. 1270년(원종 11) 6월 초하루의 일이었다. 앞서 같은 해 5월 23일에 재상들이 회의에서 개경으로 환도할 것을 결정하자 삼별초는 그에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킬 속셈을 처음 드러냈었다. “재추(宰樞)가 모여 옛 서울로 돌아갈 것을 의논하고 날을 정하여 방(榜)을 붙이니, 삼별초가 딴...
-
진도에 도착한 삼별초는 곧바로 새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도성인 용장성(龍藏城)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둘러싼 용장산성(龍藏山城)의 안쪽, 즉 현재의 용장리 일원이 그곳이다. 여기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변의 고인돌 등으로 미루어 늦어도 청동기시대 즈음에 주민이 거주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후 삼국을 거쳐 고려와 조선에 이르도...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있는 공원. 삼별초(三別抄)는 고려 무신 정권의 특수 부대이다. 이들은 몽골의 잦은 침략에 맞서 고려의 정규군보다 더 강한 전투력으로 활약하였으나, 1270년 원종의 개경 환도 명령과 삼별초 해산령, 몽골과의 강화를 반대하며 자주 국방의 기치를 내걸고 대몽 항쟁을 벌였다. 그 결과 한때는 영호남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진도를 비롯한 전라도 및 경상도...
-
어떤 지역에 유배된 사람들이 유배생활 중에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형성된 중앙문화와 비교되는 지역문화. 유배문화란 어느 지역에 유배되어 온 사람들이 유배생활 중에 지역주민들과 교류하고 그들을 훈육하면서 중앙의 수준 높은 문물을 전해주어 발전된 지역문화를 말한다. 반대로 유배인 스스로가 유배지역의 토착문화나 민속, 예술 등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학문이나 경륜, 예술적 자질들을 발전...
-
조선후기 진도군수를 역임한 관리. 1817년(순조 17)에 약 6개월 간 제243대 진도군수를 역임하였다. 진도군수 재직시 호서와 호남 지역이 풍작임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대동미를 제대로 상납하지 않았다는 죄로 충청남도 지역과 전라도 지역 수령 34명과 함께 파직되었다....
-
조선후기 진도군수를 역임한 관리. 1861년(철종 12)부터 1863년(철종 13)까지 제273대 진도군수를 역임하였다. 1861년(철종 12)에 진도군수로 부임한 이래 각종 부과를 무리하게 실시하여 군민들의 원성을 받았다. 이에 진도군 고군면 석현리 주민들이 주동이 되어 민란을 일으켰다. 이듬해 조정에서는 진도군수를 조존욱(趙存昱)으로 교체하였다. 유정로가 진도군수로 악정을 일삼...
-
소리를 갖가지 형식으로 결합하여 나타내는 시간예술. 진도지역의 고유한 예술문화가 담겨있는 음악으로는 민요, 농악, 무가, 잡가, 판소리, 시나위, 산조, 삼현육각 등을 들 수 있다. 속담에 ‘진도에 와서 다섯 가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진도가 섬이라 여느 섬처럼 문화예술이 미비한 줄 알고 다섯 부문에서 함부로 자랑하다가는 망신당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다섯 가지는 문자·그림...
-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조선 중기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이 일어난 뒤 남해안 지방에서 왜변이 빈발해지자, 조선 조정에서는 군국기무(軍國機務)를 장악하는 비변사(備邊司)라는 합좌기관(合坐機關)을 설치하여 이에 대비하였다. 하지만 선조 때의 지배계급은 당파를 중심으로 분열하여 서로 반목, 질시만 하고 있었다. 이와 같...
-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군거본능에 따라 마을을 형성하게 된다. 주거지 선택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은 토지로부터 보장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정주농업이 가능한가의 여부일 것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살기 좋은 곳의 조건으로 지리,생리(生利),인심,산수를 들고 있는데, 생리가 바로 정주농업의 조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땅이 기름져야 하고, 다음으로 배와 수레, 사람과 물자가...
-
1) 개관 시장은 물자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영역(market), 또는 그러한 상호작용이 행해지는 장소(marketplace)를 말한다. 구체적인 장소를 지칭하는 공간적인 측면에서의 시장은 저자, 장시, 장문, 장터, 장, 시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정기시장을 장시라고 지칭한 경우가 많았으며, 지방에 있는 시장은 향시라고 하였다. 장시란 시장 중에서 일주일이나 순(旬, 열흘)같이...
-
일제강점기 진도 출신의 목사이자 신학자. 1901년 진도군 임회면에서 태어나 1945년에 향년 45세로 타계하였다. 전라도가 배출한 최초의 신학자로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적 기독교 신학의 정립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27년에 감리교 신학대학교를 졸업하였고, 미국으로 건너가 1929년 개럿 신학교와 1931년에 노스웨스턴 신학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감리교 신학대학교와 협...
-
국가의 권력을 획득·유지하고 국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고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모든 활동. 진도지방에서는 신석기 때의 유적이 발견된 적은 없지만 인근의 서남해 도서지방인 신안군의 대흑산도, 소흑산도, 우이도, 하태도, 완도군의 고금도, 여천군의 돌산도 등과 내륙에 가까운 지역인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두모마을 등에서 발견된 조개더미(패총)로 보아 진도지방에서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
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창녕. 호는 호정(湖亭)이다. 진도 입도조(入島祖) 조희직(曺希直)의 23세손이다. 아버지는 조준승(曺準承)이고 어머니는 박혜숙이다. 부인은 밀양박씨이다. 아들 조인환(曺寅煥)이 있다. 1863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모장군(禦侮將軍) 전라도 우수영우후를 지냈다. 1916년 4월 26일에 향년 54세로 타계하였다. 진도군 고군면 지수리 서...
-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행해지는 강강술래의 여흥놀이 중 하나. 강강술래는 주로 진도를 비롯해 해남·완도·무안 등 전라남도 해안 일대에서 성행하던 민속놀이로서,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만의 집단가무였다. 추석이나 정월 대보름, 백중 같은 명절날 밤에 마을의 넓은 마당에서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며 춤을 추는 원무가 기본 형태이다. 여기에 중간 중간 여러 가지 여흥놀이가 들...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금갑리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수군진(陣). 금갑진성은 조선시대 남해와 서해를 잇는 주요 해상교통로에 위치하였으며, 왜구를 막는 전략상의 요충지로 조선 수군만호가 지휘하는 수군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성벽은 돌로 쌓은 석성이며, 축조된 시기는 1485년에서 1499년 사이로 추정된다. 현재 잔존하고 있는 성곽은 성의 서측부와 북측부이다. 금갑진이 위치한 진도는 남...
-
진도읍성은 1440년(세종22) 진도고읍성에서 현재의 진도읍으로 진도군의 터전을 옮기면서 축조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진도고읍성에서 현재의 진도읍성으로 치소를 옮기게 된 이유는 세종 때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하 삼도를 비롯한 함경도, 평안도의 읍성축조를 관장한 최윤덕의 건의에 따른 것이다(『진도군지』(미간행) 참고). 진도읍 성내리에 있는 산성으로 통일...
-
진도읍성은 1987년 1월 15일에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 자료 143호로 지정되었다. 이 성은 1440년(세종 22)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의 진도읍성은 성내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군면 고성리에 있었다. 고성리에 있던 진도읍성은 백제시대에 처음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운 읍성이 조성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이곳은 진도의 치소(治所)로서 기능을 했다...
-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위망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진주강씨는 고구려 때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지만 기일세조(起一世祖)는 고려 중엽 사람 강계용(姜啓庸)이다. 그의 10세손이 사평공(司評公) 강학손(姜鶴孫)[1455~1523]으로 무오사화 때 전라남도 영광에 정착해 전라도 일대의 중조(中祖)가 되었다. 강학손의 아버지는 세조 때 형조판서를 지냈고 익대공신에 오...
-
1860년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을 3세 교주인 손병희가 1905년에 개칭한 종교. 동학(東學)은 1860년 최제우(崔濟愚)[1824~1864]에 의해 창도된 신흥종교로 서학(西學)에 대칭하는 이름이다. 당시의 정세는 어린 헌종이 즉위하여 정권다툼이 극에 달했고 유교와 불교는 부패하여 백성을 구제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간섭으로 국운이 위기에 처해 있는 가운...
-
삼한시대 마한의 54소국(小國) 중 한 나라. 『삼국지(三國志)』「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는 우리나라 고대 삼한의 여러 소국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이들 나라 이름은 당시의 중국 상고음(上古音)에 따라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중국 고대의 북방음은 현행 우리 한자음에 가까우므로 이들 나라의 위치 비정에 많은 도움이 된다. 초산도비리국의 ‘초(楚)’는 중국 고대음이 ‘tsiwo’...
-
진도지역에서 특별히 생산되는 물품. 진도지역에서 유명한 특산물로는 미역, 김, 구기자, 대파, 울금, 흑미, 홍주 등을 들 수 있다. 1. 미역 진도미역은 조선시대부터 대표적인 진상품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1530년(중종 25)에 발간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진도의 토산품 중 하나로 미역을 꼽고 있다. 인근 완도에서 일찍부터 김발이 시작되었지만 갯벌이 발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