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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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渾 |
영어음역 | Kang Hon |
이칭/별칭 | 사호(士浩),목계(木溪),동고(東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임경희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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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강인범(姜仁範) |
어머니 | 성주여씨(星州呂氏) |
아내 | 삭령최씨(朔寧崔氏)|박씨(朴氏) |
성별 | 남 |
생년 | 1464년 |
몰년 | 1519년 |
본관 | 진주강씨 |
자 | 사호(士浩) |
호 | 목계(木溪)|동고(東皐) |
시호 | 문간(文簡) |
상훈 | 정국공신(靖國功臣) |
대표관직 | 진천군|찬성사|이조판서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호(士浩), 호는 목계(木溪)·동고(東皐). 강우덕(姜友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집의(執議) 강숙경(姜叔卿)이고, 아버지는 정략장군(政略將軍) 강인범(姜仁範)이다. 어머니는 성주인(星州人) 여씨(呂氏)로 호군(護軍) 여인보(呂仁甫)의 딸이다. 부인은 삭령최씨로 예조참판(禮曹參判) 웅(雄)의 딸이다.
[생애]
강혼(姜渾)은 연산군과 중종 대에 명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1483(성종 14)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동시에 합격하고, 1486년(성종 17)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498년(연산군 4)에 무오사화가 일어났을 때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라는 이유로 곤장을 맞고 유배되었으나 얼마 뒤에 풀려났다. 연산군의 총애를 받던 궁인 애희(愛姬)가 죽자 궁인애사(宮人哀詞)와 제문을 지어 왕의 총애를 받고 도승지에까지 올랐다.
중종반정(1506년)이 일어나 반정의 주역인 박원종(朴元宗) 등이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영의정이던 유순(柳洵)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고, 이후 반정에 가담하였다. 반정에 가담한 공훈으로 병충분의결책익운정국공신(秉忠奮義決策翊運靖國功臣)의 공신호를 받고 진천부원군(晉川府院君)에 봉해졌다.
그 후에 대제학·공조판서를 거쳐 1512년(중종 7)에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 되고, 이어 우찬성·판중추부사에까지 이르렀다. 시문에 뛰어나 김일손(金馹孫)에 버금갈 정도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명리를 지나치게 탐했다는 평을 들었다.
[저술]
저서로 『목계일고(木溪逸藁)』가 있다.
[묘소]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중촌리 반야동 진주강씨 선영묘역에 있다.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이 지은 비명(碑銘)이 남아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간(文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