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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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希孟 |
영어음역 | Kang Huimaeng |
이칭/별칭 | 경순(景醇),사숙재(私淑齋),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문량(文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수덕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의 아들이며, 조선 전기 문신 강희안(姜希顔)의 동생이다.
[생애]
1424년(세종 6) 태어나 1447년(세종 29)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종부시주부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1450년 예조좌랑에 이어 돈령부판관을 역임하였고, 1453년(단종 1) 예조정랑이 되었으며, 1455년 세조의 등극에 공을 세워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1463년(세조 9) 중추원부사로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4년 부윤으로 어제구현재시(御製求賢才試)에서 차석,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서 3등, 등준시(登俊試)에서 차석을 차지하였다. 이후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빈객이 되었으며, 예조판서·형조판서를 지냈다. 1468년(예종 1)에는 남이(南怡)의 옥사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으로 진산군(晉山君)에 책봉되었다. 이어 1471년(성종 2)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봉되었다. 또 이 해에 지춘추관사로 신숙주 등과 함께 『세조실록』과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후에도 『경국대전』·『동국여지승람』·『국조오례의』 등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이어 돈령부판사·우찬성 등을 거쳐 1482년 좌찬성에 이르렀으나 이듬해 별세하였다.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로서 경사(經史)와 전고(典故)에 통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맡은 일은 완벽하게 처리하면서도 겸손하여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또한 민요와 설화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고, 소나무·대나무 그림과 산수화를 잘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저술]
『금양잡록(衿陽雜錄)』과 『촌담해이(村談解頤)』가 있다.
[작품]
현재 일본에 있는 「독조도(獨釣圖)」가 강희맹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