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0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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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魚得江 |
영어음역 | Eo Deukgang |
이칭/별칭 | 자유(子游),관포(灌圃),혼돈산인(渾沌山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임경희 |
성격 | 문신|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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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어문손(魚文孫) |
아내 | 진주강씨 강인범(姜仁範)의 딸|나주나씨 나빈(羅彬)의 딸 |
성별 | 남 |
생년 | 1470년 |
몰년 | 1550년 |
본관 | 함종 |
자 | 자유(子游) |
호 | 관포(灌圃)|혼돈산인(渾沌山人) |
제향 | 갈천서원(葛川書院)[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갈천리 1146] |
대표관직 | 군수|교리|대사간|상호군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함종(咸從). 자(字)는 자유(子游), 호는 관포(灌圃)·혼돈산인(渾沌山人). 아버지는 훈도(訓導)를 지낸 어문손(魚文孫)이다. 할아버지는 별장(別將) 어효원(魚孝源), 증조할아버지는 교도(敎導) 어변질(魚變質)이다. 처는 진주강씨 강인범(姜仁範)의 딸과, 나빈(羅彬)의 딸인 나주나씨가 있다.
[생애]
1470년(성종 1)에 태어났다. 1492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495년(연산군 1)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곡강군수(曲江郡守) 등을 거쳐서 1510년(중종 5)에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1518년에는 헌납(獻納), 1521년에는 교리가 되었고 1529년에 대사간(大司諫)이 되었다. 1549년(명종 4)에 상호군(上護軍)으로 사직한 뒤 벼슬을 하지 않고 진주로 내려가 살다가 1550년에 죽었다. 문장을 잘한다는 평이 있었으며, 특히 농담과 수수께끼를 잘하였다고 한다.
과거에 오른 후로 여러 번 외직을 청하고, 성품이 담백하여 물러가기를 좋아하였다. 벼슬하는 데 뜻이 없어서 조정에서 좋은 벼슬로 불러도 모두 나가지 않았다. 조그만 집을 산수 사이에 지었는데 가족들과 함께 거처하지 않고, 아이 종 하나만을 데리고 조석으로 밥을 지어 먹었으니, 살림살이가 중의 것처럼 담박하였다.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 옆에 방 하나를 만들어서 현판을 ‘우애(寓愛)’라 붙이고 명절이나 기일에 제사 드리는 장소로 하였다.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이 두 절구의 시를 지어 그 행적을 기록하였다.
[저술]
저서로는 『동주집(東洲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남도 고성의 갈천서원(葛川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