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130 |
---|---|
한자 | 河溍 |
영어음역 | Ha Jin |
이칭/별칭 | 진백(晉伯),태계(台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판도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양. 자는 진백(晉伯), 호는 태계(台溪). 대사간 하결(河潔)의 후손이다.
[생애]
1624년(인조 2) 진사에 급제하였고, 163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으나 부모봉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았다. 1636년 병자호란이 터지자 의병장에 추대되어 상주지방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성태동의 집으로 되돌아왔다. 효성이 지극하였고 관후한 성품으로 직언을 잘 하였다.
3년 상을 마친 뒤에 병조의 낭관(郞官)이 되었고 정언, 헌납, 지평 등 청직을 두루 거친 뒤 어머니의 상을 입어 벼슬길을 떠났다. 효종 즉위년인 1649년에 다시 지평 벼슬에 올라 김자점의 전형을 논박하고 물러났다. 그 뒤 다시 지평(持平), 장령(掌令), 집의(執義) 등에 연이어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 삼아 끝내 취임하지 않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4「문과조(文科條)」와 『증보 진양속지(晋陽續誌)』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저서]
저서로는 태계집(台溪集) 4권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남도 하동의 종천서원(宗川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