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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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弘度 |
영어음역 | Ha Hongdo |
이칭/별칭 | 중원(重遠),겸재(謙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태남 |
[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중원(重遠), 호는 겸재(謙齋). 아버지는 하광국(河光國)이며, 어머니는 강양이씨(江陽李氏)로 이광우(李光友)의 딸이다.
[생애]
1593년(선조 26)에 출생하여 1666년(현종 7) 73세로 별세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상을 정성껏 치렀으며, 옛 성현과 같이 되겠다는 큰 뜻을 가지고 스스로 몸가짐을 엄숙히 하였다. 촌부(村婦)들의 경박한 행동이 있으면 노복을 시켜 한 우물을 먹지 못하게 하였고, 이웃사람 중에 도리에 어긋나는 죄를 진 자가 있으면 그곳을 지날 때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광해군의 실정을 비판하였고, 인조반정 후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학문에만 힘썼다.
[활동사항]
12세에 이미 성균관의 유생이 되어 동료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광해군의 실정을 개탄하여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에 돌아와 영귀당(詠歸堂)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오로지 경사(經史)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1662년(현종 3) 어사 남구만(南九萬)이 안계(安溪)로 그를 방문하여 앞서 조정에서 있었던 예론(禮論)을 토의한 후 그의 해박한 학식에 감탄하여 왕에게 아뢰어 후한 상을 내리게 하였다. 그는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당시의 역법(曆法)을 수정하기도 하였다.
[저술]
문집으로 『겸재집(謙齋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모한재(慕寒齋)에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