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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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駕山倉 |
영어의미역 | Gasan Storehous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편세영 |
[정의]
조선시대 진주목 사천군 장암리에 설치된 조창(漕倉).
[제정배경 및 목적]
경상도는 1403년(태종 3) 조운 영역에서 제외된 뒤로 경강선(京江船)의 주요 활동 지역이었다. 그러나 항로가 험하여 해난사고가 많았고, 사선(私船) 선가(船價)의 지급도 막대하였다. 또 왕권을 확립하려고 여러 제도 개혁을 추구하던 영조는 세곡 운송제의 문제점을 조운 기능의 강화로 해결하려고 관선조운제(官船漕運制)를 복구하고자 하였다.
[제정경위]
1760년(영조 36) 경상도관찰사 조엄이 호남 조창의 사례를 본받아 좌창(左倉)인 마산창과 함께 설치하였으며, 1765년 밀양에 삼랑창(三浪倉)을 설치함으로써 경상도 남부지방 20개 고을이 조운 영역에 포함되었다. 적재량이 1천 석인 조선(漕船) 20척이 확보되었으며, 선박 1척마다 조졸(漕卒) 16명이 배치되었다.
[담당직무]
진주·곤양·하동·단성·남해·사천·고성의 북서면과 의령의 남서면 등 8읍의 세곡인 전세와 대동미를 수납, 보관하고 있다가 5월 15일 안으로 경창(京倉)에 상납하였다. 경창까지의 운송항로는 사천만을 출발하여 노량해협을 지나서는 마산창의 항로와 같았다. 세곡 가운데서도 대동미가 대부분이어서 마산창과 더불어 선혜청에서 주관하였으며, 진주목사가 수납을 감독하였고 적량첨사(赤梁僉使)가 운송을 책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