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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0189
한자 伽倻
영어의미역 Gaya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문옥상

[정의]

서기 전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유역과 남해안 지역에 존재하였던 소국들의 연맹체.

[개설]

가야는 자체적인 역사기록을 남기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각종 문헌에 따라 여러 가지로 표기되고 있는데, 가야(伽倻·加耶·伽耶), 가라(加羅·伽羅·迦羅), 가락(駕洛·伽落), 구야(狗耶·拘耶), 임나(任那) 등이 그것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한반도 남쪽에서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 삼한(三韓)의 부족국가들이 고대국가로 발전하면서 백제와 신라, 그리고 가야연맹으로 성장하였다. 가야연맹은 변한 12국가 연맹체가 김해지방을 중심으로 42년경에 6가야로 발전하였으나, 통일된 고대국가의 정치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가 동서쪽에서 팽창하는 신라와 백제에게 영속되거나 정복되어 6세기 중반 562년에 멸망하고 만다.

6가야의 명칭과 중심지는 문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오나, 대체로 본가야(本伽耶)[김해] 또는 금관가야(金官伽耶)[김해]·아라가야(阿羅伽耶)[함안]·대가야(大伽耶)[고령]·성산가야(星山伽耶)[성주]·소가야(小伽耶)[고성] 그리고 고령가야(古寧伽耶)[진주]로 정리되고 있다.

가야시대는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는데, 기원 전후기부터 3세기까지를 전기가야시대, 4세기부터 6세기까지를 후기가야시대라고 하며 전기에는 낙동강 하류의 본가야[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후기에는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연맹체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고령가야와 진주]

6가야 중 고령가야의 위치에 대하여 『삼국유사』에는 함창(咸昌)[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으로 나와 있어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병도(李丙燾) 박사의 설이나 『한국사통론』(변태섭, 삼영사, 1986)에는 지금의 진주로 정리되어 있다. 함창을 고령가야의 중심지로 보는 이유는 변한 12국을 이은 가야의 강역의 넓이로 보아 지금의 함창을 중심한 지역에 성립된 가야로 보아야 타당하다는 것이고, 진주를 고령가야의 중심지로 보는 견해는 진주의 옛 이름 거열(居列)이 고령과 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판단의 근거로 들고 있다.

이 시기의 진주지역 유적으로는 진주 옥봉 고분군(경상남도 기념물 제1호), 가좌동 고분군, 중안동 고분군, 신당리 죽산고분군, 우수리 유적, 내동리 고분군, 엄정동 고분군, 무촌리 고분군, 평촌리 고분군 등이 있다. 이러한 유적과 발굴된 유물을 통하여 살펴보면 진주지역은 위치상 요충지이기 때문에 수장급의 정치체제가 있었다고 보이며, 이후로도 계속하여 경상남도 지역의 교통·문화·행정의 중심지로 자리하게 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6.29 2011년 한자(문) 재검토 작업 대표항목명 가야 한글항목명 가야시대 한자항목명 伽倻 ->대표항목명 가야 한글항목명 가야 한자항목명 伽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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