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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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冥曺植 |
영어의미역 | Jo Sik (a.k.a. Nammye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동민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선비정신에 관한 설화.
[채록/수집상황]
남명 조식 설화는 1622년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이 완성한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처음 실렸으며, 전통문화연구회가 2001년에 편찬한 『어우야담』에 국역하여 다시 수록하였다.
[내용]
남명 조식은 두류산(현 지리산)의 산천재(山天齋)에서 성리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명망이 높았고, 이에 여러 차례 임금이 벼슬을 내려 등용하려 하였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조식이 탕춘대(蕩春臺) 북쪽과 무계동(武溪洞) 남쪽에서 한양(漢陽)으로 간 적이 있었다. 마침 남명의 인품을 사모하던 여성위(礪城尉: 왕의 사위에게 주는 품계)가 그걸 알고 술 한 잔을 올리고 싶어, 장의문(藏義門) 소나무 숲 속에 장막을 치고 남명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여성위는 길가에서 공수(拱手: 공경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오른손 위에 왼손을 포개어 잡음)하고 서 있었고, 하인은 말 앞에서 기다리게 했다. 그러나 남명은 여성위가 높은 지위의 사람임을 알고, 말에서 내리지 않은 채 술에 취한 것처럼 하면서 ‘이렇게는 어른을 맞이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여성위의 술을 받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렇게까지 속세의 권위에 대해 초탈한 조식의 모습이 여성위의 눈에는 아득히 천 길 높이 나는 봉황 같이 보였다고 한다.
[모티브 분석]
남명 조식의 고고한 선비정신에 대한 일화는 많지만 기본 모티브는 명종에게 올린 단성소(丹城疏)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단성소에서 남명은 양반 관료의 부정부패와 지방 서리들의 횡포를 지적하고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 것을 주장했다. 또한, 대비 문정왕후가 생각은 깊으시나 깊은 궁궐 속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명종은 선왕의 대를 이은 외로운 한 아드님에 불과하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옳은 일이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직한 선비정신이 남명 조식 설화의 바탕에 깔려 있다.
[의의와 평가]
남명 조식 설화는 세상 모든 권세 앞에 초연한 남명 조식의 고고한 모습을 통해서 선비 정신의 참모습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소재 경상대학교와 남명학연구원 등에서 남명 조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