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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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淸沙月里石造如來坐像 |
영어음역 | Danseong Seokjo Yeorae Jwasang |
영어의미역 | Seated Stone Buddha Statue in Danseong-myeon |
분야 | 종교/불교,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산 3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정의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산청 사월리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7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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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산청 사월리 석조여래좌상 보물 재지정 |
성격 | 석조여래좌상 |
제작시기/일시 | 통일신라시대 |
양식 | 항마촉지인계 석조여래좌상 |
재질 | 화강암 |
대상구분 | 여래상 |
수인구분 | 오른손: 항마촉지인|왼손:원형지물 |
자세구분 | 좌상 |
높이 | 133㎝ |
대좌높이 | 87㎝ |
소장처 | 금선암 |
소장처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산 3 |
소유자 | 국유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의 금선암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불상.
[개설]
원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원리 남사들의 폐사지에 묻혀 있던 것이 1957년에 발견되어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산3에 있는 금선암에 봉안되어 있다.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37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광배, 대좌를 모두 갖춘 좌상으로 전체적으로 손상이 크다. 불상의 두부는 나발로 표현되었으며 육계는 비교적 크고 낮다. 얼굴은 긴 타원형이며, 큰 백호, 긴 귀가 특징이다. 그러나 현재 안면 일부는 시멘트로 보수하여 정확한 원형을 파악하기 어렵다. 목은 짧아 삼도의 표현이 불명확하다. 어깨는 넓고, 전체적으로 풍만한 체구이다. 오른손은 결가부좌한 오른쪽 다리 위에 올리고 손가락 끝을 땅으로 향하게 한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이에 반해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중앙에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놓고 그 위에 원형의 지물이 놓여 있다. 양 다리는 결가부좌하였고, 그 폭이 넓어 안정된 자세이다. 그러나 양 무릎의 폭이 넓어 결가부좌한 다리 전체의 높이가 높으며 군의의 일부가 결실되어 있다.
법의는 편단우견으로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로 이어지는 법의는 정연하게 굵은 주름으로 표현하였고, 이러한 주름의 표현은 왼팔과 오른쪽 다리에서도 볼 수 있다.
광배는 거신광이나 전체의 약 3분의 1이상이 결실되어 있다. 2조의 굵은 선으로 두광과 신광이 나눠져 있다. 두광 안에는 연변의 끝이 삼각형을 이루는 연화문이 있고, 신광 안은 무문이다. 두신광의 외연은 대부분 결실되었으나 일부에는 운문이 보이며 광배의 하단부 양측에는 공양자상이 있다.
대좌는 전형적인 팔각 연화좌이다. 상대석은 앙련을 이루나 대부분이 파손되었다. 중대석은 모서리마다 우주가 표현되었고, 각 면에 상이 조각되었으나 현재는 5구만이 남아 있다. 즉, 정면에는 결가부좌한 상이 있고 그 양 옆에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양 손을 합장한 보살상이 있으며 그 옆면에는 신장상으로 추정되는 상이 보인다. 하대석은 복련좌로 8엽복판연화문이다. 상하대석의 연화문은 그 크기가 거의 같다.
[특징]
전반적으로 손상의 정도는 크나, 통일신라시대 하대 이후에 주로 나타나는 항마촉지인을 취한 약사상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특히 낮은 육계, 넓고 당당한 상반신에 비해 급격히 좁아지는 허리, 결가부좌한 다리의 폭이 넓어 안정감이 나타나나 양 무릎의 폭이 너무 넓어 비사실성을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가지런히 정연된 주름의 표현은 사실적인 것에서 벗어나 형식화되고 있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비교적 결실이 많기는 하나 석굴암 본존, 남산 약수계석조여래좌상, 남산 삼릉계석조여래좌상, 청량사석조여래좌상과 같은 계보를 잇는 편단우견의 전형적인 항마촉지인상이다. 특히 왼손에는 약호로 추정되는 지물을 가지고 있어 약사여래상으로 판단되며 촉지인을 한 약사여래상으로도 그 의의가 크다.
상반신에 비해 부자연스러운 하반신, 일률적이며 형식화된 옷주름의 표현, 화려한 광배와 중대석의 제상의 표현 등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 중 9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