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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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佛像 |
영어음역 | bulsang |
영어의미역 | Buddha statue |
이칭/별칭 | 여래상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집필자 | 고정은 |
[정의]
석가모니의 모습을 회화나 조각으로 만든 상.
[개설]
불상이란 불전 안에 봉안된 부처의 상을 통칭하는 말이다. 불상들은 각기 다른 교리적 배경을 갖고 있는데, 크게 불상·보살상·조사상·신장상 등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진주의 불상]
진주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불상은 보물로 지정된 단성석조여래좌상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용암사지석불, 평거석조여래좌상, 고산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 진주성전암목조여래좌상, 진주응석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있다. 이외에 가좌동 석불입상, 상평동석조여래입상, 진주여고내 석불좌상, 진주성내 불상연화좌대 등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을 몇몇 살펴보면, 먼저 단성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석조여래좌상으로서, 제작경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원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원리 남사들의 폐사지에 묻혀 있던 것이 1957년에 발견되어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으며, 현재는 금선암의 본존불로 봉안되어 있다. 불상의 형식은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좌상이나 전체적으로 손상이 매우 크다. 긴 타원형의 얼굴, 큰 백호, 긴 귀, 나발에 크고 낮은 육계가 특징적이다. 그러나 얼굴 일부분은 시멘트로 보수하여 명확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풍만한 체구에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법의는 편단우견으로 옷주름은 굵고 정연하며, 군의의 일부가 결실되었다. 약 3분의 1 정도 결손되어 있는 광배는 두광과 신광으로 구성된 거신광으로 2줄의 굵은 선으로 구분되어 있다. 두광 내부에는 끝이 뾰족하게 처리된 연화문이 있으나 신광 내부에는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다. 광배의 하단부 양쪽에 공양자상이 배치되어 있다. 대좌는 전형적인 팔각연화좌인데, 상하대석은 연화문 장식이 보이며, 특히 중대석은 모서리에 우주가 표현되어 있고, 각 면에 상이 조각되었으나 현재는 5구만이 남아 있다. 즉, 결가부좌한 상을 중심으로 양 옆에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양손을 합장한 채 앉아 있는 보살상이 협시하며, 그 옆에 신장상으로 추정되는 상이 있다. 전반적으로 손상이 크기는 하나 통일신라 후기에 주로 나타나는 항마촉지인을 결한 약사상의 정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낮은 육계, 당당한 상반신에 비해 잘록한 허리, 전반적으로 안정감 있게 조성되었으나, 결가부좌한 다리 폭이 너무 넓어 비사실성이 엿보인다. 일률적으로 형식화된 옷주름의 표현이나 화려한 광배와 대좌의 중대석에 표현된 제상의 형식 등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용암사지석불은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219[용암길46번길 34-43]에 소재하는데, 지금은 폐사된 용암사터에서 유일하게 출토한 것으로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을 표현한 것이다.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은 어깨까지 내려와 있고, 타원형의 얼굴은 매우 단정하며, 눈가에 어린 미소가 온화한 인상을 북돋아 준다. 두꺼운 옷깃에 사실적으로 표현한 옷주름 선으로 인해 신체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보이는데, 이와 같은 매우 사실적인 특징은 고려 초기에 유행하던 양식으로 당시의 지장보살상의 대표작으로 주목된다.
평거석조여래좌상은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의 신만사 옛 절터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으로 머리 부분을 새로 만들어 매우 생경한 감이 들지만, 불신을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단성석조여래좌상처럼 넓은 어깨,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무릎 폭이 넓어 안정감을 주는 점 등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향해 내리고 왼손은 가슴에 대고 있는데 항마촉지인의 변형된 모습으로 추정된다. 광배에는 덩굴문양과 불꽃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통일신라양식을 충실히 따른 고려 초기의 작품이라고 추정된다.
고산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내리 68에 소재하는 한산사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상이다. 나발에 육계는 봉긋 솟아오른 모습으로, 네모에 가까운 타원형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다. 당당하고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 결가부좌한 다리 폭이 넓어 안정감을 주는 구도로 사실성이 강하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는 비로자나불이 일반적으로 결하는 지권인의 모습을 취한다. 상중하대로 구성된 대좌에는 연꽃문과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잘 계승한 고려 초기의 작품이라고 추정된다.
성전암목조여래좌상은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산 31에 소재하는 성전암의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높이 60㎝, 폭 43㎝의 나무로 만든 조그만 불상으로 전체적으로 매우 양호하다. 머리에는 상투모양의 육계와 중앙계주의 표현이 있으며 이목구비가 단정하다. 손모양은 아미타불의 9품 중에서 하품하생인을 결하고 있다. 옷주름은 양쪽 어깨에서 가슴에 걸쳐 완만한 U자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복장유물을 통해 1644년(인조 22)에 조성된 점을 알 수 있는 점에서 조선 중기의 불상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진주 응석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 741[응석로 435]에 소재하는 응석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데,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왼쪽에 아미타여래, 오른쪽에 약사여래불이 위치한다. 삼세불 사상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에 유행한 도상으로 응석사 삼존불은 복장유물에 의해 1643년(숭정 16)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의의와 평가]
진주지역의 불상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조성되었는데, 주로 통일신라 양식을 잘 계승하여 조성된 고려 초의 불상이 대부분으로, 비사실적인 구도 및 형식화된 표현 등 지방색이 강한 양식적 특징이 엿보인다. 문화재로 지정된 불상 이외에도 작품성은 떨어지지만 민간신앙과 결부된 불상이 다수 남아 있는 점 등은 지역적인 특성이 가미되어 조성된 예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