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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1415
한자 食生活
영어음역 siksaenghwal
영어의미역 dietary life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집필자 김유나

[정의]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하여 음식물을 먹는 일, 혹은 이와 관련된 생활 자체를 이르는 말.

[개설]

식생활에는 넓게는 음식물 자체와 음식물을 가공하는 조리 방법, 그에 필요한 조리기구, 식기, 식사예절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식생활이란 생존에 필요한 음식을 단순히 섭취한다는 개념을 넘어 기후와 지형, 토질, 생활습관 등의 지역 격차를 반영함으로써 특정 집단이나 지역의 문화상징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따라서 종교나 고래의 민속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한편 음식 재료의 생산이나 유통의 수급 정도에 따라 지역별로 상당한 차이가 나기도 한다. 우리 민족의 경우에는 대체로 대륙에서 유입된 식생활문화가 기본이었으며, 여기에 기후·토질 등의 자연적인 여건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다양한 기호와 양식 등을 발달시키며 고유의 전통을 이어 내려오고 있다.

[변천]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초기 채집경제 시대에는 바다에서 조개류·해조류·생선류 등을 원시적인 방법으로 채집하였다. 여기에 수렵으로 야생짐승들의 고기를 획득하여 식량으로 삼아 오다가, BC 7~6세기(남쪽은 BC 2~1세기) 경 민무늬 토기인이 북방으로부터 이주해오면서 농경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식물을 재배하고, 이를 통해 다채로운 식생활 문화가 발달하였다.

이어 농경이 권장되고 자연적 조건의 영향으로 벼농사가 발달하였으며 곡류를 주식으로 하는 문화가 전파되어 이에 대한 가공법도 발달하였다. 기타 식용작물의 재배와 어업의 발달, 가축의 사육 등은 여러 재료를 사용한 음식이나 이와 관련된 생활의 양상을 다양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국제교류나 전쟁 등으로 인하여 식생활이 변하기도 하였는데, 중국 문화의 수입, 13세기 몽골과의 교류에 따른 북방식품의 유입, 16세기 임진왜란을 계기로 한 남방식품의 전파 등이 시대적 상황과 연관되어 우리의 식생활을 변하게 만든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는 문호개방과 더불어 서양 음식과 문화가 함께 전해져 우리의 식생활은 변천을 거듭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변천을 겪는 동안 우리 식생활 문화 전반의 기본적인 형태가 생성되었는데, 고려 후기 최씨 무신정권시대의 강도(江都, 江華) 문화를 계기로 시작하여, 조선 중기 말경에 더욱 정비되고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1. 상고시대

한반도의 민족 형성 시기, 초기 생활인들의 유적 곳곳에서 보이는 조개더미들은 그들이 원시적 방법으로도 쉽게 채집할 수 있는 굴이나 백합 등의 조개류를 주요 식량으로 삼아 식생활을 영위했음을 의미한다. 유적조사에서 확인된 이들 조개류는 그 종류가 30여 종에 이르며, 여기에 도미·삼치 등의 생선 및 고래·물개의 뼈도 발견되고 있다. 또한 수렵으로 얻은 식량으로는 사슴과 멧돼지가 있으며, 여기에 소와 말도 포함되어 당시의 식생활의 형태를 짐작하게 한다.

이어 빗살무늬토기시대 말경(북부 BC 7~6세기, 남부 BC 2~1세기), 화베이(華北)지방 농경문화권의 민무늬토기인들이 한반도로 들어와 작물을 재배함으로써 원시농경시대가 시작되었다. 최초의 경작물은 피[稗]·기장(黍)으로 보이며, 이어 조·보리·콩 등이 3~4세기경 백제에 전해졌고, 벼농사(稻作)와 미식(米食)이 전파되기까지 화전법(火田法)으로 경작되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이들 곡물을 주요 식량으로 삼아 식생활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곡물은 생활유적에서 발견된 연석(碾石: 맷돌)으로 낱알의 껍질을 벗기고 혹은 가루로 만들어 같은 유적지에서 발견된 화덕[爐]에 익혀 먹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호옹(壺甕) 등 토기유물로 보아 구워 먹는 방식 외에 끓여먹는 식생활도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부여·옥저·예(濊)·고구려 등 북방의 원시농경시대에는 찜[煮]·구이(灸)의 육류요리법이 발달하였고, 이미 술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에는 소·돼지·말 등을 가축으로 길렀고 양념으로는 소금을 썼다.

2. 삼국시대

3~4세기경 백제에는 벼농사의 기술이 도입되어 고구려·신라보다 앞서 쌀밥이 보편화되었다. 당시 대륙으로부터의 문화유입 경로로 보아 벼농사의 기술도 평안도를 경유하여 전래된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한반도의 북부지역은 강우량·지형·기온 등이 벼농사에 부적당하였고, 보다 환경 조건이 좋은 남부지역에서 빠르게 정착되었다.

이러한 결과 남부의 평야지대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벼농사를 발달시켰고 쌀밥을 위주로 한 식생활을 생겨났으며, 한랭한 관북지방(關北地方)에는 귀리가, 황해도와 평안도에는 소맥이 보급되어 오늘날까지 내려왔다.

곡물을 주식으로 하는 식생활 형태가 정착되면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가 형성되었고, 이와 함께 어업도 식생활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찬류(饌類)도 수조·육류·어류 등으로 다양해졌으며 포·젓갈에 이어, 8세기 초부터는 장·된장 등의 양념용 저장식품이 가공되었고, 꿀과 식용유를 사용하였다. 채소류로는 고구려의 특산품으로 천금채(千金菜: 상추)가 있었고, 7세기경에는 무도 재배되었다.

이보다 앞서 신라에서는 505년(지증왕 6년) 석빙고를 설치해, 겨울에 자연 동결된 얼음을 보관하였다가 여름철 식품의 부패방지를 위해 사용하였고 차가운 음식물을 즐기는 식생활 문화가 생겨났다. 이러한 장빙제도(藏氷制度)는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3. 고려시대

미곡이 생산량이 늘어난 고려에서는 불교와 더불어 차와 함께 먹기에 적당한 다식(茶食)·유밀과가 유행하였다. 또한 우유소(牛乳所)를 국가상설기관으로 설치하여 우유·낙소(酪酥)를 신하에게 사여했고, 또한 1097년에 발행하기 시작한 주화의 통용을 권장하고자 서울[개성(開城)] 좌·우 주점, 각 지방에는 주식점을 관설(官設)하였는데, 이것이 공설주점의 시초이다.

고려가 원나라에 복속되면서 교류가 잦아지고 식생활도 변화하여, 소주·상화(霜花: 만두)의 제조법이 전래되었고 포도주·설탕·후추 등이 유입되었다. 전래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두부의 기록도 고려 말에 나타난다. 이 밖에 이규보(李奎報)의 시에 오이·가지·무·파 등에 대한 조리법이 보여 짠지·동치미 등의 김치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도 고려의 식생활 형태는 거의 답습되었고, 16세기 말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호박과 고추가 전해졌다. 고추는 일반조미에 사용되거나 고추장의 재료가 되어 찬류에 변모를 가져왔고, 감자·고구마·옥수수가 들어와 구황작물로 귀하게 여겨졌다. 17세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김치류가 발달되고, 배추통김치는 19세기를 전후해서 질 좋은 배추의 재배가 이루어지면서 시작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설날에 시작하여 동지로 끝나는 절기음식과 계절마다 바뀌는 시식(時食)으로서 식생활의 여유와 멋을 더하였으며, 여기에 지방 특유의 향토음식이 발달하였다.

[의의와 평가]

일반적으로 식생활은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 경제, 문화, 지리적 요인 등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각 지역과 민족, 개개의 가정에서는 고유의 식습관이 형성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농경문화가 발달하여 쌀을 주식으로 삼았으며, 여기에 콩류나 야채류를 곁들이는 채식위주의 식생활을 영위해 왔다. 그런데 1970년대 산업화 이후 우리의 식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 식품의 소비와 패턴이 서구화되는 경향을 강해졌으며, 식품산업의 발달과 편의를 추구하는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인스턴트 가공식품을 비롯한 패스트푸드(fast food)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러한 식생활의 변화에 따라 이미 선진국에서 문제시 된 바 있는 비만과 각종 성인병에 대한 염려를 낳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자국에서 생산된 식품의 소비를 외면하고 막대한 외화를 들여 식량을 수입해 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한편 농어촌 및 일부도시 저소득층에서는 영양부족 문제가 보고되기도 하며, 식생활과 직결되는 농수산물의 생산과 유통이 계획적이지 않아 경제적 손실도 생겨나게 하는 등 다양한 관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식생활을 단순한 문화현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경제의 구조나 국제관계 등에 의해서도 크게 변화하는 만큼 항상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연구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또한 음식은 우리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이와 관련된 식생활 문화는 지역이나 민족의 대표성을 획득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식생활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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