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4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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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河敬復墓 |
영어음역 | Ha Gyeongbok Myo |
영어의미역 | Tomb of Ha Gyeongbok |
이칭/별칭 | 贊成襄靖公晋陽河敬復之墓(찬성양정공진양하경복지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 산 59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노재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8월 2일 - 진주 하경복 묘 경상남도 기념물 제53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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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주 하경복 묘 경상남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묘 |
양식 | 사각 석조분 |
건립시기/연도 | 조선시대 |
관련인물 | 하경복(河敬復) |
관련인물 | 하경복(河敬復) |
높이 | 160㎝ |
지름 | 정면 396㎝|측면 518㎝ |
비문찬자 | 유치명(柳致明)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 산 59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기념물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에 있는 하경복의 묘.
[개설]
하경복(河敬復)[1377~1438]은 본관이 진주로, 1402년(태종 2)에 무과에 급제하여 사복시부정(司僕侍副正)을 지냈고, 1410년 다시 무과중시에 급제한 후 함경도 경성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국경 수비에 힘썼다. 이후 함경도절제사 등을 지내며 15년간 변경지역 수비에 만전을 기하였으며, 만년에 경상도병마절제사를 지냈다. 성품이 너그럽고 활을 잘 쏘았으며, 조선 초기 국방 강화에 큰공을 세웠다.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위치]
묘소는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 산 59번지 원계마을과 구태마을을 연결하는 농로와 조금 떨어진 구릉에 있다. 신도비는 묘역 하단에 동남향하여 있으며, 백색 화강암제의 대형 귀부와 일석의 비신 및 이수를 갖추고 있다.
[형태]
사각장방(四角長方)의 탑형으로 된 석조분은 묘 뒤편에 이중의 곡장(曲墻)을 갖추고 있다. 봉분 중앙에 상석과 4각 향로석, 문인석, 장명등이 있고, 상석 오른편에 묘표가 서 있다. 묘표는 비좌와 일석(一石)의 비신 및 관석을 갖추고 있다. 봉분 앞 좌우에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무인석과 석마(石馬)가 서 있는데, 봉분 바로 앞에 있던 묘표는 좌대만 남아 있고 비신은 없다.
장명등은 높이 200㎝로, 좌대는 십이면에 십이지신상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위에 복련문(覆蓮文) 좌대를 다시 얹고, 그 위에 쌍사자가 석등을 받치는 형태이다. 전체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추고 있으며, 사방으로 화창(火窓)을 냈다.
신장 약 128㎝, 폭 약 40㎝의 아담한 문인석이 봉분 양쪽에 가까이 서 있고, 그 앞에는 신장 약 215㎝, 폭 약 64㎝의 웅장한 무인석이 서 있다. 무인석은 수염과 부리부리한 눈이 잘 조각되어 있으며, 장검을 두 손으로 모으고 서 있다. 무인석은 1986년에 개수하면서 새롭게 만들어 세운 것이다.
신도비는 묘역 하단에 동남향하여 있으며, 백색 화강암제의 거대한 귀부와 오석으로 만든 일석(一石)의 비신과 백색 화강암제 이수(螭首)를 갖추고 있다. 비좌는 화강암 장대석 바닥 위에 화강암 장대석으로 2단의 4각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귀부를 얹어 웅장한 모습을 보인다. 건립연대는 1986년이다. 비문은 앞뒤 양면에 있으며, 비신 앞면 상부의 전서는 “議政府贊成事諡襄靖河公神道碑銘(의정부찬성사시양정하공신도비명)”이다. 이수는 발가락이 세 개인 쌍룡(雙龍)이 여의주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조각하였는데 후면도 같은 형태이다. 몸통의 비늘과 괴수·뿔 등의 조각이 사실적이다. 비의 총높이는 421㎝로, 비좌 높이 87㎝, 비좌 앞 너비 304㎝, 비좌 옆너비 302㎝, 비신 높이 247㎝, 너비 91㎝, 두께 51㎝, 이수 높이 87㎝, 너비 122㎝, 두께 82㎝이다.
[금석문]
묘표 비신의 비문은 앞뒤 양면에 있는데, 앞면에 세로 한 줄로 “贊成襄靖公晋陽河公之墓(찬성양정공진양하공지묘)”라 새겨져 있다.
신도비 비문은 앞뒤 양면에 있으며, 비신 앞면 상부의 전서(篆書)는 “議政府贊成事諡襄靖河公神道碑銘(의정부찬성사시양정하공신도비명)”이다. 비문은 이우성(李佑成)이 찬(撰)하고 하한진(河漢鎭)이 서(書)하였으며, 김응현(金膺顯)이 전(篆)하였다.
[현황]
1983년 8월 2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1986년에 전면적인 개보수작업을 하여 봉분과 봉분 앞의 각종 조형물, 묘표·신도비 등이 잘 관리되고 있다. 다만 묘표는 오랜 세월 풍화로 몇 곳은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다. 신도비 옆에는 안내문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