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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로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1769
한자 李學魯
영어음역 Yi Hakro
이칭/별칭 성숙(性叔),후은(後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최소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장
아버지 이정봉(李禎鳳)
출신지 경상남도 영천
성별
생년 1867년연표보기
몰년 1933년연표보기
본관 벽진(碧珍)
성숙(性叔)
후은(後隱)
추서 건국포장|애국장

[정의]

조선 말기의 의병장.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성숙(性叔), 호는 후은(後隱). 경상북도 영천 출신. 고려삼중대광 개국원훈 이총언을 시조로 한 벽진이씨(碧珍李氏)의 후손이며, 이정봉(李禎鳳)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907년 조선 군대의 강제해산 이후 전국 각지의 의병봉기가 확대될 무렵, 경상남도 산청에서 의병을 일으켜 박동의(朴東儀)를 의병장으로 하고 이학로는 부장(副將)이 되어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1908년 8월에 독립하여 의병대장이 되었는데, 의병장 허위(許蔿)의 명령을 받고 서울에서 온 서병희(徐炳熙) 등과 합세하여 의병 18명을 거느리고 경상남도 산청군 두량골[斗量谷]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

그 뒤에도 곳곳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치렀으며, 1909년 1월부터 6월까지 일본인의 집을 습격하거나 군자금 등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도 펼쳤다. 경상남도 함안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1909년 6월에는 의병 30여 명을 이끌고 칠원헌병주재소를 습격하였고, 창원·의령·고성·진주 등지에서 일본인 상점을 습격하였다.

같은 해인 1909년 겨울, 경상남도 함안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고 지리산으로 들어갔으나 얼마 후 붙잡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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