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7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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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雜誌 |
영어음역 | japji |
영어의미역 | magazine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수덕 |
[정의]
특정 제호(題號) 아래 각종 원고를 수집,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기적으로 편집·간행하는 정기 혹은 비정기 간행물.
[개설]
잡지와 신문은 체계와 기능면에서 다르다. 일반적으로 잡지는 일정한 주기(주, 월, 계절 등)에 따라 간행되며, 신문의 경우 매일 발행되는 차이가 있다. 또한 신문은 시사·경제·문화·스포츠 등의 사회 전반의 신속한 정보전달을 위주로 한다고 할 때, 잡지는 특정 분야에 한정되어 보다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전문 정보를 취급한다고 할 수 있다.
잡지의 종류는 크게 주간(週刊)·월간(月刊)·계간(季刊)·연간(年刊) 등의 간행 간격에 따라 나눌 수 있으며, 보통 그 주기가 짧은 것일수록 대중적이고 시사적인 특징이 있다, 계간이나 연간(年刊)의 경우는 학술적·자료적(資料的)인 성격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용별(內容別)로는 일반대중(종합)·생활·여성·아동·문예지 등이 대표적이다. 각 전문분야별 잡지(전문지)가 있고, 홍보지 가운데에는 기업과 상품의 광고 및 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PR지가 있다.
월간으로 발행되는 문예지나 종합교양지 등은 주로 국판이고, 여성지·아동지 등의 월간과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오락지에 해당하는 주간은 4·6배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화보잡지의 경우 국배판이나 타블로이드판을 취하고 특수교양지나 가이드의 성격을 띤 잡지의 경우는 4·6판 또는 포켓판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잡지는 신문이나 단행본과 마찬가지로 인쇄된 문자·그림·사진 따위를 소재로 하여 구성되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이지만, 단행본과는 달리 정기적으로 수년에 걸쳐 간행된다는 특징이 있고, 한편 신문에 비하여 발행 간격이 길기 때문에 신속한 정보의 전달이 어렵다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여러 정보전달 매체 중에서 잡지는 정보의 신속전달을 제외한 보다 전문적인 의견(논의)의 전달과 특정 분야의 오락성 제공이라는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변천]
1. 광복과 한국전쟁(1945년~1953년)
광복 직후부터 1948년 정부수립 당시까지, 각 분야에 걸쳐 우후죽순처럼 잡지가 쏟아져 나왔다. 이는 일제강점기 동안 억눌려 있던 우리 민족의 사회 문화적 관심이 분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948년 5월 10일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이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당시의 좌익계열의 잡지는 자연히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당시 잡지는 새롭게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까다로운 절차로 인하여 자금이 부족하거나 후원기관이나 인물이 없는 경우, 잡지의 성격이 사회 분위기와 맞지 않는 등의 이유로 많은 군소잡지가 정비·도태되었다.
그간의 다양한 잡지들은 전쟁의 기간 동안 제대로 발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6·25전쟁에서부터 5·16군사정변까지, 즉 1950년 6월부터 1961년까지의 약 10년의 기간은 잡지계가 수난(受難)과 발화(發花), 그리고 성장(成長)의 보람을 함께 맛본 격동기의 시기로 여겨진다.
한국전쟁 중 1·4후퇴 후에는, 경상남도 부산에 정착한 잡지인들에 의하여 『희망(希望)』, 『자유세계(自由世界)』, 『자유예술(自由藝術)』, 『새벗』, 『리더스 다이제스트』 등을 발행하기 시작하였고, 경상북도 대구에서는 육군종군작가단에 의하여 『전선문학(戰線文學)』이 창간되었다. 이 기간의 잡지들은 정기적으로 간행되기 힘들었으며, 다루는 내용도 대부분 전쟁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2. 한국전쟁 이후(1953년~1960년)
1953년 가을 정부의 환도와 함께 잡지인들은 새로운 결의와 희망을 가지고 다시 잡지문화의 부흥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피난지였던 부산에서 창간된 『사상』이 『사상계(思想界)』로 개제하여 본격적인 학술종합지로 새 출발을 하였고, 『문화세계(文化世界)』, 『문화춘추(文化春秋)』 등에 이어 반공통일연맹(反共統一聯盟)의 기관지인 『현대공론(現代公論)』 등이 종합지로서 등장하였다.
1954년에 『새벽』이 창간되어 날로 더해가는 자유당 독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월남문인(越南文人)들에 의하여 『문학예술(文學藝術)』이 창간되어 발표무대가 좁았던 문인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 후 잡지계는 더욱 활기를 띠어 다양한 여성지, 대중오락지, 종합지 또는 평론지가 잇달아 발행되었다. 1955년 1월에는 『현대문학(現代文學)』지가 화려하게 등장하였고, 그 밖에도 『자유문학(自由文學)』『문예(文藝)』『문학인(文學人)』『한글문예』『문학평론(文學評論)』, 그리고 1954년에 창간된 『시작(詩作)』을 비롯하여 다양한 시 전문지가 나타났으며, 『시나리오 문학』까지 등장하는 다양성을 보였다.
한편, 경제·법률·의학·교육·과학·외교·종교 등 각 분야에 걸쳐 학술지 또는 전문지가 출현하는 호황을 누렸다.
3. 군사정권기의 잡지(1960년대~ 1980년대)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1980년까지의 약 20년간은 우선 5·16군사정변과 함께 군정이 시작되면서, 4·19혁명 이후에 창간된 모든 정기간행물의 발행이 취소됨에 따라 잡지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신규 발행허가역시 매우 까다로웠기 때문에 잡지계는 부득이 정돈·정비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군정이 차차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소멸하는 잡지가 있는 반면, 새로 창간되는 잡지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지성(知性)』, 『세대(世代)』 등의 종합잡지와 주로 정부관서와 사회단체에서 발행하기 시작한 전문지들이 그것이다.
잡지가 본격적으로 창간되거나 재창간 되기 시작한 것은 제3공화국이 수립된 직후부터였는데 1964년 말기까지 무려 100여 종의 새로운 잡지가 창간되었다. 1980년 7월을 기준으로 정기간행물과 관련된 통계에 의하면 잡지 형태의 정기간행물은 모두 1,434종, 총 발행부수 500만 부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한편, 1980년 7월 31일 정기간행물에 대한 일대 정비가 단행되어 총 172개의 잡지가 정부에 의하여 등록이 취소되었다. 발행인의 부실과 기사를 빙자한 금품 요구, 광고와 판매에 따르는 강요 행위 등의 비위가 없던 것은 아니나, 공권력에 의한 대량의 폐간은 위헌적인 요소가 다분했다.
4. 현재의 잡지(1990년대 이후)
이러한 규제가 1987년 6·29선언 이후 점차 줄어들었고, 칩거하던 잡지인들이 모여들면서 다수의 잡지가 창간되었다. 또한 과거에 사라진 역사가 깊은 잡지들은 몇몇 뜻있는 인물들에 의해 재창간되기도 하였다.
1987년 제137회 정기국회 본회의는 언론기본법의 폐지에 따른 정기간행물 등록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률 제2조 제8항은 잡지를 정치·경제·사회·문화·시사·산업·과학·종교·교육·체육 등 전 분야 또는 특정분야에 관한 보도·논평 및 정보 등을 전파하기 위하여, 월1회 이하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제책된 간행물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로써 한국 잡지사(雜誌史)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언론에 대한 검열과 통제가 보다 자유로워지면서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잡지들이 등장하면서 출판문화의 영역은 더욱 다양해지고, 전문성이 더해져 현재 잡지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현황]
경상남도 진주지역의 잡지로는 1935년 『영남춘추』와 『중앙공중보』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언론과 출판에 대한 통제와 검열이 심하였기 때문에 잡지역시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1970년대 중반 문예정신사에서 무크지를 발행하였으며, 1980년대 이후 문화와 생활정보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종 기획물 및 홍보를 위한 잡지들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문예·문학 동호인들에 의한 잡지가 발행되기도 하였는데, 1987년 조직된 진주문학동호회의 경우 연 1회 이상 문예지 성격의 회지인 『문학진주』를 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