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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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抛毬樂舞 |
영어의미역 | Jinju Dance with Balls |
이칭/별칭 | 포구락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무용과 민속극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산 171-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덕 |
[정의]
경상남도 진주 지방의 교방에서 추어지던 일종의 놀이춤.
[개설]
원래 「포구락무」는 궁중에서 행했던 춤과 노래 중 하나로 공을 구멍에 던져 넣는 놀이를 표현한 것이다. 진주포구락무는 채구(彩毬)를 구문(毬門)의 풍류안(風流眼)에 던져 넣는 놀이를 음악과 무용으로 형상화한 궁중정재가 진주권번에서 지역화 된 춤으로서 고종[재위 1863~1907] 때 진주부사를 지냈던 정현석의 『교방가요』에서 비롯되었다.
[구성]
진주포구락무의 춤사위는 염수족도, 한삼평사위, 쌍어리, 외향무, 내향무, 이수고저, 절화무, 팔수무, 회수무, 대수무, 농구무로 이루어진다.
구성 인원은 시대와 장소, 그리고 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구성되는데, 무용수 외에 악사 7명(박 1, 대금 1, 피리 2, 해금 1, 북 1, 장고 1)과 창자 2명으로 구성된다.
[형식]
중앙에 있는 포구문을 중심으로 나뉜 두 편의 대결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여러 가지 장단에 따른 갖가지 모양의 춤을 두 편이 갈라서 춘다.
[가사]
창사는 구호치어(口號致語)와 삼대사(三臺詞), 동천경색사(洞天景色詞), 양행화규사(洋行花窺詞) 등을 부른다.
[내용]
여러 무용수들이 구문(毬門)을 설치한 뒤 일제히 절한다. 풍악이 울리면 좌·우 순서로 한 쌍씩 차례로 마주서서 주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다가 오른손에 갖고 있는 포구(抛毬: 용알을 상징하는 공)를 던져서 구문의 풍류안(風流眼)에 넣으면 지화자를 부르고 명중시킨 사람이 나아가 앉으면 봉화(奉花)가 꽃을 머리에 꽂아준다. 만약 풍류안에 포구를 넣지 못하면 봉필(奉筆)이 벌로 얼굴에다가 먹물로 점을 찍는다.
차례대로 공을 던져 승부를 결정하고 나면 전원이 포구문을 돌면서 지화자를 부르고 자리로 되돌아간다. 창자(唱者)가 나와 선비가를 부르면 무용수들은 춤을 추며 후렴을 받는다. 전원이 수장창(收場唱)을 부르며 퇴장한다.
[옷차림]
원래 몽두리(기녀나 무당이 입는 옷)에 화관(춤추고 노래할 때 쓰는 모자)을 쓰는데, 진주포구락무에서는 궁중포구락무에서 입던 몽두리, 화관, 그리고 죽간자가 없어지고 간소화 되었다.
[악기 및 도구]
악기로는 박, 대금, 피리, 해금, 북, 장고가 사용된다. 도구로는 구문(毬門)이 설치되고, 작은 공이 포구로 사용되며, 그 외 먹물과 붓과 종이 등이 사용된다.
[현황]
진주포구락무는 정재(呈才)가 지방 교방(敎坊)으로 하강하면서 의상, 도구, 절차 등이 변화한 것인데 화관, 몽두리, 죽간자(竹竿子)가 없다든가 상벌의 방법과 개수장(開收場)의 창사(唱詞), 세령산(細靈山)의 반주 등은 진주포구락무만의 특징이다.
1991년 12월 23일에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으며 주로 의암별제 기간에 공연된다. 현재 진주포구락무의 예능보유자로는 정금순(鄭今順)이 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궁중가무가 진주지역 교방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민속적 요소가 가미되어 진주지역의 특색 있는 놀이로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