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441 |
---|---|
한자 | 河拱辰 |
영어음역 | Ha Gongj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편세영 |
[정의]
고려 전기의 문신.
[활동사항]
본관은 진주. 994년(성종 13)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고, 1009년(목종 12) 중랑장(中郞將)이 되었다. 목종이 병들어 자리에 눕자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庾方), 중랑장 탁사정(卓思政) 등과 함께 목종이 거처하는 궁궐 주변을 지켰으며, 얼마 후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郞中)이 되었다.
1010년(현종 1) 동서계(東西界)에 있을 때 임의로 군대를 동원하여 동여진(東女眞)의 촌락을 치다가 패한 일이 드러나 유배당하였지만, 거란이 침범해 들어오자 풀려났다.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고영기(高英起)와 함께 군사 20여명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피난 중이던 현종을 뒤따라가 양주에서 거란군의 철수교섭을 자청하여, 국왕의 사절로 적진에 들어가 거란 군대를 철수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거란에 볼모로 잡혀가 거란 왕에게 신임을 받았으나 탈출을 꾀하다가 실패하여 양가(良家)의 딸을 아내로 맞아 살면서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거란 왕은 온갖 악형과 회유로 신하가 될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심한 모욕적인 말로 응대하여 거란왕을 크게 격분시킴으로서 살해되었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상훈과 추모]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郞)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