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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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俊秀妻金海金氏孝烈碑 |
영어음역 | Kang Junsu Cheo Gimhae Kimssi Hyoyeolbi |
영어의미역 |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Lady Kim from Gimhae, Kang Junsu's Wif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산 6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노재경 |
성격 | 효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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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조선 말기 |
관련인물 | 김해김씨 |
비두너비 | 80㎝ |
비두두께 | 55㎝ |
비두높이 | 41㎝ |
비두재질 | 백색 화강암 |
비좌너비 | 80㎝ |
비좌두께 | 60㎝ |
비좌높이 | 15㎝ |
비좌재질 | 백색 화강암 |
너비 | 50㎝ |
비신두께 | 18㎝ |
높이 | 145㎝ |
비신재질 | 백색 대리석 |
비문찬자 | 이태문(李泰文) |
비문서자 | 김우곤(金友坤)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산 6번지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에 있는 김해김씨의 효행과 열행(烈行)을 기리는 비.
[건립경위]
김해김씨의 손자 김위중(金渭中)이 할머니의 효행과 열행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마을 동쪽 입구 지방도변에 남향하여 있다.
[형태]
사각형의 받침돌에 높이 145㎝, 폭 50㎝, 두께 18㎝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금석문]
비문은 풍화로 인하여 몇 글자는 알아보기 힘들다. 비의 제목은 “효열부진양강준수처김해김씨지비(孝烈婦晋陽姜俊秀妻金海金氏之碑)”로, 비문은 이태문(李泰文)이 짓고 김우곤(金友坤)이 썼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해김씨는 사인(士人) 강준수에게 시집을 갔다. 평소 성품이 순하고 민첩하여 며느리와 아내의 도리를 다했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 구씨가 학질에 걸려 병석에 누웠다. 며느리 김씨는 백방으로 조약을 하였고, 시어머니의 똥을 맛보며 병의 차도를 살피고, 지성으로 하늘에 기도를 드렸다. 정성스런 병간호 덕에 시어머니는 완쾌되어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얼마 후 남편이 또 괴질에 걸려 명이 경각에 달렸다. 이때 김씨가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목숨을 건졌으나, 이후 백약을 처방하여도 남편의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의원이 남편의 병에는 인육(人肉)이 효험이 있을지 모른다고 말하자, 김씨는 자기 넓적다리를 도려내어 구워서 남편에게 올렸다. 남편은 다시 살아나 16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남편이 죽은 후 아들을 잘 키워 집안의 대를 잇게 하였으니, 김씨는 며느리와 아내와 어머니의 도리를 다했다. 이에 인근 사람들이 김씨의 효열을 칭찬하자, 김씨는 “음식으로 시부모를 봉양하는 것과 공경하고 경계하며 남편을 섬기는 일은 며느리와 아내의 일상적인 직분일 뿐인데 이를 효열(孝烈)이라 합니까?”하며 사양해마지 않았다고 한다.
[현황]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비각을 세워 비를 보호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해김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비석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선조들이 며느리의 도리와 아내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힘쓴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