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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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運昌妻李氏事蹟碑 |
영어음역 | Jeong Unchang Cheo Yissi Sajeokbi |
영어의미역 | Monument for Virtuous Lady Yi, Jeong Unchang's Wife |
이칭/별칭 | 열부 정운창 처 이씨 사적비(烈婦鄭運昌妻李氏事蹟碑)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금곡리 구계마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고정은 |
성격 | 효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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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1936년 |
관련인물 | 정운창 처 이씨 |
높이 | 252㎝ |
비두너비 | 69㎝ |
비두두께 | 51㎝ |
비두높이 | 28㎝ |
비두재질 | 백색 화강암 |
비좌너비 | 54㎝ |
비좌두께 | 37㎝ |
비좌높이 | 9㎝ |
비좌재질 | 백색 화강암 |
너비 | 37㎝ |
비신두께 | 19㎝ |
높이 | 115㎝ |
비신재질 | 백색 대리석 |
비문찬자 | 구연하(具然夏)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금곡리 구계마을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금곡리 구계 부락에 있는 열녀 정운창 처 이씨의 행적을 기념하는 효열비(孝烈碑).
[건립경위]
병든 남편을 정성껏 간호한 정운창 처 이씨의 효열을 기념하기 위하여 정운표의 주도 하에 1936년에 세워졌다.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금곡리 구계마을 건너편 도로변에 서쪽을 향해 세워져 있다.
[형태]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15㎝, 폭 37㎝, 두께 19㎝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금석문]
비의 제목은 ‘열부정운창처이씨사적비(烈婦鄭運昌妻李氏事蹟碑)’로, 비문은 구연하(具然夏)가 지었는데 비문의 서자와 각자는 알 수 없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운창 처 안릉이씨는 시집오기 전부터 효녀로 이름이 높았는데, 정씨 집안에 시집온 후에도 남편과 늙은 시아바지를 정성껏 모셨으며, 남편의 전실(前室) 소생의 세 딸을 사랑으로 보살폈다. 가난하고 궁핍했지만 남편과는 죽음도 함께 하자고 말한 사이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남편이 병을 얻어 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는 등 그 할 바를 다하였다. 남편은 병을 이기지 못하고 후사를 이어달라는 말과 병든 시아버지와 딸들을 부탁한다는 세 가지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씨는 남편과의 약속대로 시아버지와 세 딸들을 잘 보살폈고, 집안의 조카를 양자로 들여 후사를 이었다. 남편과의 약속을 지킨 이씨는 어느 날 목욕재계를 하고 나서 “죽은 남편의 세 가지 부탁이 어제와 같이 귓전에 생생한데, 이미 그 가르침은 받들었고, 아들은 집안일을 맡길 만하니 나는 장차 남편에게 돌아가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라고 하였는데, 듣는 이가 없어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는데, 그날 밤 운명하니 그때 나이가 27세였다.
[현황]
비석 주위에 시멘트벽을 쌓아 보호하고 있다. 비문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한 안릉이씨의 효열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비석은 옛 선조들의 효열사상을 잘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