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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686
한자 市場
영어의미역 market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집필자 김동민

[정의]

상품을 사고 파는 거래장소.

[개설]

시장의 개념은 학술적으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어 가격이 결정되는 장소 또는 메커니즘이라 정의된다. 시장의 개념은 다양하게 사용되며 자본주의사회에서 그 종류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구체적인 특정한 장소에 있는 중앙도매시장, 증권거래소, 상품거래소 등은 구체적 시장이라 한다. 소매시장이나 공설시장도 포함되지만 이 경우는 보통 시장이라 한다. 그리고 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교환 또는 매매가 이루어진 장소를 장이라 한다.

그러나 경제가 고도화되고 통신기술의 진보나 신용거래가 발달한 현대에는 오히려 특정한 장소에 제약받지 않는 추상적 시장이 많다. 국내시장, 국제시장, 세계시장의 경우와 또 거래대상에 따른 생산요소시장과 생산물시장, 그룹별 금융시장, 노동시장 등도 시장의 범주에 속한다. 현대의 구체적 시장은 국내시장이나 세계시장 등의 추상적 시장을 배경으로 그 영향 아래서 구체적인 거래를 하고 있다.

[변천]

언제부터 진주에 장시(場市)가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없어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예부터 남쪽의 웅부거읍(雄府巨邑)으로 일컬어져 온 진주는 부근 고을의 물화집산지였던 지리적 여건에 따라 물자교환을 담당하였던 보부상들이 몰려들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가 건국한 뒤 진주는 중국의 후당(後唐)과 독자적으로 조공미(朝貢米) 교역을 할 정도로 경제력이 컸으며, 지방에 장시 역시 고려시대에 이미 생겨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하등의 설비는 없었지만 일정한 장소나 가로(街路)에서 여러 보부상과 인근 주민들이 모여 물자를 교환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조선시대에 장시가 발전한 시기는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으로 피폐해진 전후 복구과정에서 장시의 기능이 더욱 활발해 졌다. 진주성대첩과 계사순의(癸巳殉義: 1593)가 있었던 진주에도 전쟁 피해로 인한 부족한 물자조달과 복구를 위하여 장시가 발전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1770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와 1809년(순조 9)에 심상규(沈象奎), 서영보(徐榮輔) 등이 편찬한 『만기요람(萬機要覽)』을 참고하면, 당시 전국의 고을 수는 330여 개로 한 고을에 평균 3개의 장시가 있었던 데 반해 진주에는 10개의 장시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이미 18세기에 이르러 진주지역에 10개의 장시가 있었다고 하는 것은 당시의 행정구역이 그 만큼 넓기도 하였지만 진주에 장시가 형성된 시기가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진주에 있었던 10개의 장시로는 진주장을 비롯하여 소촌장(召村場: 문산), 수곡장(水谷場), 안간장(安磵場: 미천), 창선장(昌善場: 남해 창선, 당시 지명 창선목장), 조창장(漕倉場: 당시 지명 부화곡(夫火谷)), 반성장(班城場), 마동장(馬洞場: 대평), 북창장(北倉場: 대곡), 말문장(末文場: 삼천포) 등이었다. 지금의 행정구역상으로 보면, 진주, 문산, 수곡, 반성, 미천, 대평, 대곡 등 7개 장시가 있었던 셈이다.

『만기요람』이 편찬된 21년 뒤인 1830년에 서유구(徐有榘)가 엮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의하면, 대야장(大也場: 하동 북천), 문암장(文岩場: 하동 옥종), 엄정장(嚴亭場: 금곡)이 새로이 개설된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창선장, 소촌장, 수곡장, 안간장, 조창장 등 5개 장시는 빠져 있다. 이는 조사과정에서 누락된 것으로 추측된다. 수곡장의 경우만 보더라도 1862년의 통우통사건이라고 부르는 진주민란, 즉 진주농민항쟁의 시발지로 유명하다.

대한제국 시기에 진주의 시장분포는 진주시장을 비롯하여 금동어(金冬於)[금곡] 시장, 수곡시장, 반성시장, 설매곡(雪梅谷)[대곡] 시장, 문산시장, 안간시장 등이 있었으며, 장날은 진주시장이 2일과 7일, 금동어시장이 1일과 6일, 수곡시장이 1일과 6일, 반성시장이 3일과 8일이었으며, 문산시장, 설매곡시장, 안간시장은 동일하게 4일과 9일이었다. 이외에도 마동장, 문암장, 대야장, 말문장 등이 있었으나 마동장의 경우 조선 말기에 폐지된 것으로 보이며, 문암장, 대야장, 말문장은 190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각각 하동과 사천으로 이속되었다. 1895년에는 진주지역에서 최초의 관치(官治)시장이었던 중앙시장이 개설되었다.

해방 이후 진주 시내에는 중앙시장천전시장(1948년 5월 12일에 개설) 그리고 옥봉청과시장 등이 있었으며, 중앙시장천전시장이 경상남도 서부의 중심시장으로서의 기능을 했다. 특히 중앙시장은 1938년에 이미 이용면과 규모면에서 전국 시장 중 서열 5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번성하였다. 1950년대에는 진주지역에 공설시장으로 중앙시장, 천전시장, 서부시장(1956년 3월 5일에 개설), 가축시장(1958년 7월 5일에 개설) 등이 있었다. 중앙시장만 755개의 점포로 규모가 컸지만 천전시장서부시장은 규모가 작았다. 천전시장, 서부시장, 옥봉청과시장은 정기시장이었다. 1960년대에는 공설시장과 사설시장을 합쳐 총 9개의 시장이 있었다. 1960년대 진주지역의 시장현황을 살펴보면 (표 1)과 같다.

(표 1) 시장 현황(1960년대)

자료: 『백이십년사』(진주상공회의소, 2006)

이후 1982년부터 2002년까지의 시장현황을 살펴보면, 1982년에는 상설시장이 2개, 일반시장이 7개였으며, 1983년에는 상설시장이 2개, 일반시장이 5개였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는 상설시장의 경우, 각각 2개, 1개, 1개, 7개, 9개로 그 수가 증가하였으며, 1989년과 1990년에는 상설시장은 없어지고, 사설시장인 일반시장이 각각 10개를 차지했다. 1991년부터는 정기시장과 일반시장으로 나누어 집계를 하고 있는데, 1991년부터 2002년까지의 시장현황을 살펴보면 (표 2)과 같다.

(표 2) 1991~2002년까지의 시장 현황

자료: 『백이십년사』(진주상공회의소, 2006)

[현황]

2011년 현재 진주지역의 시장분포 현황을 보면, 재래시장 12개, 상가 10개, 대형마트(할인점) 3개, 백화점 1개 등 총 26개의 시장이 분포하고 있다. 재래시장과 상가는 문산읍, 금곡면, 일반성면, 지수면, 대곡면, 미천면, 칠암동, 봉안동, 상봉서동, 상대1동, 이현동, 초장동에 각 1개, 상대2동, 평거동에 각 2개, 중앙동, 강남동에 각 3개씩 분포해 있다. 백화점은 중앙동에 1개, 대형마트(할인점)는 성지동, 상대2동, 하대1동에 각 1개씩 분포해 있다.

2004년 현재 진주지역의 시장현황을 살펴보면 2003년도 거의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표 3)과 같다.

(표 3) 시장분포 현황(2004년)

자료: 『통계연보』(http://stat.nongae.net/html/index.asp)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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